폭식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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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jwy
넌 어릴 때부터 좀 유별났어.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다. 유독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고집이 셌다고. 감정적이면서 감성적이어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고.


사람 성격이라는 게 스펙트럼과도 같아서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기준 따위는 없지만,

적어도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더 쉽게 상처받고, 또 길을 잃는 것도 같다.


길을 잃는 과정이 인생에서 꼭 필요한 단계일 때도 있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소중한 경험을 체득할 때도 있고, 남들은 별 거 아닌 일로 여기는 사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낄 때도 있고, 만약 내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중요한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예민함을 다른 무언가로 발산하기에, 나는 별다른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그냥 '소심하고 예민한 일반인'의 삶이라는 게 버거울 때가 자주 있다.


눈치를 많이 본다. 전전긍긍을 많이 한다. 담대하지가 못하고 우유부단하다. 모든 일에 후회가 많고 미련이 뚝뚝 남는다. 걱정이 많다. 걱정은 걱정을 낳고 또 다른 걱정을 낳는다. 우울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감상에 자주 빠진다. 그러나 이러한 내 마음을 다른 이에게 쉽사리 털어놓지는 못한다. 그러면 나에게 그 사람이 질려할 것만 같다. 중간에 많은 과정들을 생략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런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섭식이나 음주 따위의 행위로 분출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그리도 겁내고 있는 걸까, 가끔은 생각한다.

그 때 그 때 내가 당면한 걱정들은 물론 조금씩 다르지만 종국에는 비슷하다.


'가치'가 낮은 사람으로 여겨질까 두렵다. 저 사람은 별 거 아닌 사람이야, 손가락질 받을까봐.

그래서 내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을까봐.


그저께는 상담센터에 연락을 해보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음성메세지를 남겨놓았는데 바로 주말이 찾아와서 연락을 되받지는 못했다. 곧 다가올 월요일에는 꼭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3편을 쓰고 난 이후, 구토하는 행위를 하진 않았다. 과식은 습관처럼 했지만, 그래도 운동도 했으니까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다. 오랜만에 달리기도 했고, 헬스장도 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글쓰기도 꾸준히 했고 e북 구독 서비스를 결제했고 사람들을 만나 수다도 떨었다. 종종 술잔을 기울이던 친한 친구에게는 '나 사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당분간 술을 자제해보려고 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말하고 나니 조금 후련한 기분이 들었지만, 살짝 걱정도 된다. 친구가 나를 너무 우울한 사람으로, 같이 있으면 덩달아 힘들어지는 사람으로 여길까봐서다.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휴식을 가지며 이겨내고 싶다.


안좋은 식습관이 쌓이고 쌓여 속은 자주 더부룩하고, 배는 볼록하고, 안색이 탁해도.

그것마저 나의 인생이고 나의 치열한 사투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은 오늘 하루를 무사히 이겨낼 수 있길. 스치는 바람마저 시리고 아플지라도 넘어지지는 말자고. 어떻게든 땅에 붙어있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나는 참 괜찮고 함께할 가치가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정작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글로나마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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