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씨 Aug 16. 2022

어떤 순간 2


그가 생각에 잠겨 있다. 손을 잡고 있지만 어쩐지 내가 손을 놓으면 그대로 놓아버릴 것 같다. 그래서 땀이 나는데도 다시 한번 그의 손을 꼭 쥐어본다. 그 사람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은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물고 있고 나는 어쩐지 불안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다. 아무런 징조도 예감도 없었지만 이미 우리 사이를 흐르는 공기가 답을 말해주고 있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시리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그가 말을 할까 봐 겁이 난다. 오늘은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나아. 그래서 나는 괜히 딴소리를 한다. 나조차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떠들다가 괜히 큰소리로 웃는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웃을 때조차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 심각한 분위기는 그대로다. 어제였다면 같이 크게 웃다가 내 머리를 헝크려 트리거나 눈을 빤히 바라봐 주었을 것이다. 내 손을 다시 한번 꽉 움켜쥐고 사랑하고 있다고 눈빛으로 말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문득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내가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자 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정해진 일과처럼 우리는 나란히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는다. 그의 얼굴에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 스칠 때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날카로운 가시가 가슴을 콕콕 찌른다. 눈치챘다는 걸 들킬까 봐 나는 최대한 표정을 숨겨보려고 하지만 이미 내 얼굴 또한 잔뜩 굳어 있다. 결국 몇 발자국 더 떼기도 전에 그가 발길을 멈춘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해보지만 이미 그의 눈이 너무 슬퍼서 나까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있잖아…….” 그가 말을 하려다가 말고 머뭇거린다. “버스 끊기겠다.” 내가 그의 팔을 잡아끌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할 말이 있어.” 그가 내 팔을 조용히 뿌리친다. “우리…… 헤어지자.”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미안하다고 말한 것 같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누군가 송곳으로 정수리를 내려찍은 것 같다. 피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그의 얼굴이 아득하게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멀게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