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엄마
엄마와 나는 늘 서로 미안해한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래서 전화 속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깃든 고단함을 나의 목소리에서 어려있는 슬픔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이야기하다 보면 울음이 올라올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통화시간은 3분은 넘기지 못한다. 주로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한다.
"어디 갔어?"
"아니 집에 있어."
"김서방은?"
"당직이야."
"그래 추워졌으니깐 옷 따뜻하게 잘 입어 알았지!"
"응 알았어! 엄마는 뭐해?"
"어 밥 먹고 자려고 누웠어."
"엄마 피곤하겠다. 내일도 새벽부터 일해야 하잖아..."
"그래 너도 잘 자고 전화 끊는다!"
"어 엄마도 잘 지내!"
이 몇 마디가 엄마와 나의 전화통화의 대부분의 내용이다. 나는 매일 엄마 생각을 하지 않지만 엄마는 매일 내 생각하시겠지...
엄마와 길게 통화 적도 있었다. 남편과 싸우고 나서 나의 억울한 마음을 풀 곳은 엄마밖에 없었다. 나의 퍼붓는 울분을 들어주고 나의 가장 밑바닥까지 엄마는 감싸 안아 주었다.
"엄마도 그랬어. 너네 아빠도 그랬거든..."
"아빠가 왜?"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결혼 생활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애들 봐서라도 살아야 해! 어떡한다니 정말 흑흑"
그렇게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이 불쌍해서 울었다.
엄마가 살아온 인생과 나의 삶이 마치 동전을 찍어내 같았다.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아셨을 게다. 엄마도 그랬으니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런 엄마의 가슴에 내가 박은 못은 너무도 많은데 더 이상 박힐 곳도 없다.
우울증
'내일 아침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어.
숨을 참아볼까? 그래도 죽어지지 않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모든 것을 내 눈에 앞에서 사라질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래 죽으면서 웃을 수 있을 거야.
아냐 내가 죽으면 엄마는 어떡하지.
엄마를 위해 아무리 죽음을 달콤해 보여도 오늘만은 참자!'
그날 밤 나를 구한 것은 나 자신도 신도 아닌 엄마였다.
너무 일찍 집을 벗어난 이유였을까? 삭막한 객지 생활은 나는 무너지게 했고 나는 고장 나 버렸다. 20대 내내 우울증과 폭식증을 겪었다. 목구멍에 차오를 때까지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심각한 자기혐오에 죽고만 싶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나의 가정환경 탓이 아닌가 하여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슬퍼할 유일한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목을 매달기 위해 올라간 의자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인생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는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었다. 가족들은 말한다. 언니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그래 나도 신기해! 그렇게 죽겠다고 난리를 쳤으니까!'
나에게 엄마는
세상에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없는 사람도 있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사람들도 있다. 엄마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엄마 있다고 자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나에게 마지막 남은 유일한 자랑 같은 거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없고 엄마밖에 자랑할 게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구나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한때 엄마를 미워했다. 하지만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미움은 연민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사랑을 받지 못해 엄마에게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뭐 잘못된 것인가? 그것은 그것대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정을 떼라는 것인가? 세상에는 정상은 없다. 비정상이지만 정상 인척 살아가는 것뿐이다. 내가 엄마에게 애틋한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부터였다. 딸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을 닮는다고 했던가? 나의 인생이 엄마의 인생의 궤적을 비슷하게 따르는 것을 보면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처럼 엄마처럼은 안 살 꺼라라는 생각보단 엄마의 반만 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만큼 열심히 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엄마처럼 열심히 산다면 뭐라도 이뤄낼 거란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만약 엄마의 힘들다고 포기하셨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는 쓰러질 때는 있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것만으로 엄마는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자 엄마를 부러워했다. 사랑이 많아 보이는 엄마도 부러워했다. 하지만 부자라고 딸의 인생의 좌지우지하려는 엄마도 보았고 겉으로는 사랑이 많아 보이지만 자식을 온실 속에 화초처럼 키운 엄마도 보았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 그러나 '완전한 엄마'는 있다. 부족한 환경에 있더라도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완전한 엄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빛으로 채워진 그림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백지이다. 그림은 명과 암 그리고 갖가지 색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명암 표현을 잘해야 명작이 될 수 있다. 엄마는 '완전한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