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경력자 구직과정
회사를 옮기는 것에 대한 장점 하나는 새로운 회사를 찾기 위해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강제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첫 직장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18년 만에 그동안의 일을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하려니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이 정도로 경력자 인터뷰 시 큰 문제가 없어서 기록하려 한다.
미국 건축회사에서의 일반적인 구직과정은
대부분 링크인이라는 사이트를 통하게 된다. 내 경우에는 한 달짜리 프리미엄 혜택을 받는 오퍼가 있어서 신청을 했고 좀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는 혜택이 있었지만 돈을 내고 하라고 하면 그냥 기본 혜택으로 했을 것 같다.
먼저 사이트에서 내가 관심 있는 지역을 선택하면 매일 구직정보를 보내준다. 그리고 관심 있는 회사가 있으면 링크를 통해 회사 사이트로 가서 지원을 한다.
건축회사에서는 레주메, 커퍼레터, 샘필워크를 보통 요구하며 여러 가지 정보를 넣도록 한다.
지원을 하면 1-2주 있다가 HR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한다. 늦은 경우에는 한 달 후에도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과하면 건축가들과 실질적인 인터뷰를 하게 된다. 회사에 따라서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3-4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시간이 내게 처음 겪는 일이었고 내겐 힘든 일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지원하고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 나 스스로 자책하며 잠 못 들던 시간이 있었다.
내게 있어 현실적인 문제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크리티컬 했다. 매달 나가는 생활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미국 살면서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의료보험문제로, 일반적으로 직장의료보험만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아주 비싼 미국의 의료보험에서 직장에서 반정도를 부담해 주지만 개인으로서도 매달 백만 원 이상이 의료보험으로 들어가는데, 직장을 잃었을 경우에 계속 같은 의료보험을 유지하기 위해서 직장에서 부담하는 비용까지 개인이 부담해야 했고 한 달을 연장하는데 2700불(36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의료보험이 없이 있다가 사고가 생기면 바로 개인파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비싸지만 부담해야 했고 이비용을 한 달이라도 줄이려 서두르게 되었다.
첫 페이지는 나의 IIT 대학원 시절했던 졸업작품과 내가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했던 주택설계작품을 소개했다. 18년 경력자로서 학생 때의 작품을 넣는다는 것에 비판도 있었지만 내게는 중요한 프로젝트였기에 빠르게 설명하고 지나갔다.
다음으로 어려운 일이 18년 동안 한 나의 많은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프로그램별로 나누어 보여줬고
그다음으로 18개의 프로젝트들을 골라서 시간순서로 나열하고 18개의 프로젝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나의 18년의 시간을 개인에 맞춰 3개의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 시기, 첫 입사 후 첫 5년은 디자인에 좀 더 치우쳐서 랜더링과 모델링일에 집중했던 시기였고 작은 프로젝트였지만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단계까지 경험했고,
두 번째 시기는 그 뒤 3년, 건물의 파사드 디자인에 집중하면서 디자인에서 테크니컬 한 쪽으로 변경하는 시기였고,
세 번째 시기는 그 뒤 10년 정도의 시간으로 프로젝트 아키텍트로 프로젝트 코디네이션과 다큐멘트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이때에도 파사드 쪽은 계속 관심을 갖고 디자인에서부터 디테일 다큐멘트를 했던 시기였다.
인터뷰에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기에 이러한 분류는 발표 시 반응으로 볼 때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각각의 프로젝트의 규모에 대한 정보는 처음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여러 회사 HR에서 질문이 들어와 나중에 추가했다. 회사입장에서 일정규모 이상의 프로젝트를 다뤄본 적이 있는지가 하나의 판단기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라스베이거스 타워를 넣었다. 지어지진 않았지만 처음 2-3년 동안 시간을 썼던 프로젝트였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던, 그리고 실무에서 처음으로 초고층타워 디자인을 했던 프로젝트였다.
디자인은 일찍 끝났지만 오랜 과정을 통해 한참 후에야 지어진 프로젝트였다. 러시아에 지어진 초고층 오피스, 주거, 주차장 프로젝트. 당시 파사드에 전문적 지식이 있던 한국 사람이 하는 디테일을 보고 나 또한 해야겠단 생각을 했던 프로젝트였다. 사진에 보이는 포디엄 건물의 외벽을 디자인하는데 참여했다. 당시 지붕층이 나이트클럽이었고 지붕을 개폐식으로 하려고 여러 업체와 연락하고 디테일과 견적까지 받았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로 보여준 라스베이거스 타워가 라스베이거스 공항 활주로 고도제한에 의해 계획한 높이(미국최고높이)로 개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최고(1888'), 최대(3,500 key hotel)를 보고 투자했던 크라운호텔 그룹은 투자를 취소하고, 이미 구입한 땅을 개발업자가 라스베이거스 아레나라는 이름으로 개발했던 프로젝트. 나는 여기서 스트럭쳐와 협업해서 형태와 콘셉트랜더링을 만들었고 모두 만족했던 매우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아쉽지만 SD까지만 가다가 중단되었다. 이때 같이 했던 디자인 파트너가 로스와이머였고, 그 뒤 그가 AECOM 사장으로 옮겨 이 콘셉트를 적용해 결국 Intuit Dome이라는 프로젝트를 최근에 완공시켰다.(https://archinect.com/news/article/150441568/aecom-s-2-billion-intuit-dome-opens-in-fast-changing-inglewood)
이때 나는 혼자서 디자인파트너와 작업했고 처음 했던 전반적인 디자인 리더로서의 역할에 도취되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다. 그런 기억으로 이번 새로운 직장을 찾으면서 스포츠/전시 쪽에 관련된 회사들을 알아보았고 그중에 제일 유명한 회사와 현재까지도 인터뷰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다.
중국 선진에 차이나머쳔트 회사의 사옥을 짓는 프로젝트였다. 난 여기에서 파사드 디자인과 디테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했던 프로젝트 중에 처음으로 지어졌던 프로젝트였고 거의 입사 후 7년이 지나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타워 로비와 크라운을 빼고 일반적인 외벽을 디자인했다.
따로 이야기했지만 한국프로젝트에 대한 갈망으로 열심히 연락해서 결국 컴페티션을 하게 되어 최종 타워 디자인 안까지 했던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나는 다른 경력으로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인생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그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뒤로 몇몇 작은 프로젝트에서 디자인 리더로 앞서 이야기했던 로스와이머와 일을 하게 된다. 아래 프로젝트는 출판을 목적으로 시카고의 유명건축가들이 각각 하나의 사이트를 정해 개발하는 것으로 나와 로스는 미드웨이공항 개발계획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공항 같은, 한때 잘 나가던 공항이었지만 주면 도심의 개발로 인해 새로 나오는 비행기의 늘어난 활주로 길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새로운 오헤어 공항이 세워지고 현재는 제한된 국내선만 사용하는 공항 주변의 소음벽 공간을 활용해 지역을 활성화시키자는 제안이었다. 내가 모든 계획과 랜더링, 출판 이미지 레이아웃을 했지만 최종 출판물에 한두 번 크리틱 한 사람들의 이름이 주르륵 들어가면서(나보다 높은 레벨의) 나의 이름은 아주 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큰 자괴감이 들었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시카고 대학 기차역 캐노피 계획안을 했다. 회사에서 시카고 대학 마스터플랜을 하고 있었고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제안해서 시카고 대학과 기차역 사람에게 보여준 프로젝트로, 몇몇의 사람들을 데리고 처음부터 최종랜더링까지 리드했던 프로젝트. 당시에 획기적이었던 밀링머신으로 통 아크릴을 깎아 캐노피를 만들고, 시멘트를 부어 베이스를 만들고 조명을 달아 모두에게 WOW를 하게 했던 프로젝트였다. 나중에 모델을 갖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워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이렇게 처음 단계였던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좀 더 테크니컬 한 경험을 쌓는 두 번째 단계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