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일곱

3. 아버지의 넥타이

by 늙은 아빠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불길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형, 지금 아버지 돌아가셨어.



통화는 짧았고 마음은 평온했다. 얼마 전부터 알아보았던 몇 군데의 병원 중 1순위의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빈소를 마련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의 직장과 가깝고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았다. 특히 아버지 자신이 자신의 마지막을 찾는 지인들과 함께하고 싶어할 곳을 염두해 두었다.



서울 OO병원으로 모셔. 준비하고 있을게.



통화를 끝내고, 직장 상사에게 아버지 부고를 전했다. 일주일간 자리를 비울 것을 팀원들에게 전하고 특별휴가 복무를 상신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해야할 일들을 처리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빈소를 정하고 장례지도사를 소개받았다. 부고를 알릴 연락처를 정리하고 친지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렸다. 기계적이지만 빈틈없이 장남으로서 해야할 일을 꼼꼼하게 처리했다. 내 나이 마흔 셋,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나이었다. 그런데 나의 물리적 나이와 관계없이 나 역시 아버지와의 이별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서툰 두려움을 아버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겨울이 지나고 기침이 잦아들지 않자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에서의 정밀 검사를 권했다. 꽤 긴 시간 기침이 멈추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증세는 없었다. 폐암 진단을 받고 전이가 심해 수술이 어렵다는 소견을 받았다. 나이 칠십이 넘어 처음 본 손주, 누이의 딸 돌잔치를 며칠 앞둔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마곡에서 서울 아산 병원까지 지하철을 타고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통원을 시작했다. 죽음을 선고받고 병원으로, 집으로 향하던 두 노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 긴 시간은 오롯이 두 사람의 몫이었다. 전라도 광주에 살고 있는 누이와 남동생의 역할까지 대신한다고 하지만 그때 난 철저히 방관자였다. 나도 살림을 꾸린지 얼마되지 않았고 직장을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다.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피를 뽑으러 다니던 분이 어머니의 부축 없이는 걷기 힘들어졌고, 호흡이 가빠 응급실에 입원하는 일이 잦아졌다. 초점이 흐려지고 말이 어눌해졌다.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산 병원까지 찾아가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이후를 생각해야 했다. 나날이 침대에 누워 무기력하게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셨고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셨지만 당신과 우리의 기대와 달리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 점심,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아버지가 지친 몸을 일으켜 정장을 찾아 입고,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 계셨다. 머리를 빗고 넥타이를 고쳐 매며 작게 읊조리듯 말을 이어 나갔다.



사진 찍으러 가자.


넥타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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