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일곱

6. PC방을 졸업하며

by 늙은 아빠

봄의 온기가 충만한 3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집 근처 도서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자는 사람도 없는 마흔하나의 아저씨가 갈 곳이 만무했다. PC방에서 삼삼오오 함께 시간을 죽이던 친구들이 갓난쟁이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참석이 뜸해지고 나 혼자 남았을 때,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모니터 두 개를 켜놓고 고스톱을 치는 중년의 아저씨와 내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 늘어갔다. 그렇게 긴 시간 나의 청춘의 일부였던 PC방을 쫓기듯 졸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분주함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날씨가 좋네요. 레종 드리면 되죠?



자주 찾는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밝게 건네는 인사가 일순간 불편해서 집 앞 편의점을 거르고 몇 블록이나 먼 편의점을 찾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레종 주세요.

2500원이요.



사무적인 말투, 심드렁한 표정,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건네는 차가움에 안도감을 느꼈다. 타인과의 단절과 방관, 물 샐 틈 없는 밀실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식탁 앞에 앉아 소주잔을 들이키며 자신의 신세 한탄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아이도 단박에 울리곤 유유히 자리를 뜨는 아버지가 재롱떠는 손주가 보고 싶어 장성한 아들의 출가를 염원하는 건 아니리라. 일흔 넘긴 아버지에게 혼기 놓친 두 아들이 있다는 것이 자신의 평범한 삶에 걸맞지 않았음을 한탄했을 것이다. 게다가 난 맏아들이었다. 온종일 기원에 가서 바둑을 두시곤 집에 오면 케이블 채널에서 밤늦게까지 바둑 방송을 보던 아버지는 그때의 아버지들과 같이 가끔 마주 앉는 식탁에서도 특별한 대화를 섞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식탁등만 켜두고 소주병을 기울이며 자조 섞인 말투로 되뇌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최대한의 접촉을 피했다. 밤늦게 들어와 신속하게 방문을 닫았다. 만남과 결혼과 출산이 아버지의 뜻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가정을 꾸리기에 난 여전히 미숙했다. 미숙하기에 앞서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 줄 상대는 머릿속에만 있었다. 살을 빼야 한다면 먹지 않으면 될 터, 무력한 내가 그의 삶에 생채기를 내고 덧나게 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였다.



금요일 새벽에 잠자리에 들면 일요일 오후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멈춘 가사 상태로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혹여나 던지는 돌멩이에 평온이 깨져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것도 같다.



주말 오후, 오랜 와식 생활로 없던 허리 통증에 몸을 일으켰다. 침대의 일부가 되어 소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 도서관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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