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타래를 박제하기
수요일 오후 스마트폰의 진동이 짧고 경쾌하게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단톡방에 번개런 공지가 올라왔다. 이름은 번개런인데 매주 수요일마다 같은 시간에 올라오니 이쯤 되면 정기런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임시 패치라고 붙여놓고 몇 년째 정식 버전으로 굳어버린 코드를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우리 클럽에서 그런 사소한 네이밍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눈치 없는 아저씨 취급을 받기 딱 좋은 행동이다. 나는 조용히 공지를 읽어내려갔다.
장소는 집에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설 운동장. 차로 이동하면 평소에는 20분이면 닿을 거리지만 번개런이 예고된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실리콘밸리의 악명 높은 퇴근길 트래픽이 절정에 달하는 시간대다. 구글 맵을 켜보지 않아도 도로는 이미 붉은색 핏줄처럼 꽉 막혀 있을 게 뻔했다. 평소라면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나의 알고리즘에서 기각되었을 안건이다. 왕복 이동 시간에만 한 시간 넘게 투자해서 고작 한 시간 달리고 온다니 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자원 낭비인가.
하지만 오늘은 변수가 생겼다. 마침 딸아이가 그 운동장 근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고 태워달라는 SOS를 쳐왔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기사 노릇이라는 필수 퀘스트와 '오런완'(오늘 런닝 완료)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것은 더 이상 비효율이 아니라 최적화된 동선 설계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참석 댓글을 달았다. 나 이외에도 무려 7명이나 더 신청을 했다. 퇴근 후 소파와 넷플릭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운동장으로 모이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동주의자들이 아닐까.
딸아이를 약속 장소에 내려주고 운동장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관절 마디마디에 기름칠을 하듯 꼼꼼하게 몸을 풀고 텅 빈 트랙 위에 섰다. 400미터의 타원형 트랙. 아스팔트와는 다르게 발을 디딜 때마다 쫀득하게 감기는 우레탄의 탄성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마치 고급 타이어를 장착하고 새로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랄까.
아직 도착하지 않은 크루원들을 기다리며 먼저 5km를 뛰어보기로 했다. 가민 시계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첫 발을 내디뎠다. 오늘따라 몸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트랙의 쿠션이 내 몸을 튕겨주는 것인지 내 다리 근육이 용수철처럼 반응하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오랜 감각으로 분석하건대 오늘의 컨디션 지수는 최상위권이었다. 슬슬 RPM을 높이듯 페이스를 올렸다. 킬로미터당 3분대의 속도. 평소라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야 정상인데 오늘은 호흡기관이 업그레이드라도 된 듯 공기가 폐부 깊숙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운동장을 네 바퀴쯤 돌았을 때 머리 뒤통수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게 감지되었다. 나는 이 느낌을 좋아한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에피타이저라면 뒤통수에서 흐르는 땀은 본질적인 엔진 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심장이 힘차게 펌프질을 하고 온몸의 혈관이 확장되어 열기를 배출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정도 속도에서도 숨이 넘어가지 않고 다리가 버텨준다니 이번 시즌 대회에서는 개인 기록 경신도 노려볼 만하겠다는 긍정적인 데이터가 뇌 속에 쌓였다. 혼자만의 레이스에 심취해 12바퀴 반을 돌고 나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되었다.
주차장 쪽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트랙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가벼운 목례와 눈빛으로 인사를 나눴다. 우리 클럽의 번개런은 쿨하다. 군대 점호처럼 일렬횡대로 서서 인원 점검을 하거나 구호를 외치며 오와 열을 맞춰 뛰는 일 따위는 없다. 400미터 트랙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고 우리 말고도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기에 단체 행동은 자칫 민폐가 될 수 있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여 각자의 속도대로 달릴 뿐이다. 그것이 우리 팀의 자유로운 컬쳐다.
출발 신호도 없이 자연스럽게 러닝이 시작되었다. 다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루 종일 시달렸을 텐데 피곤한 기색은커녕 물 만난 물고기처럼 트랙을 누비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 어른들은 왜 땀을 흘리며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것일까.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트랙을 도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동질감과 함께 대견함마저 느꼈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마라톤을 버텨내기 위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체력을 비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트랙 러닝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바로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의 본능이 깨어난다는 것이다. 로드 러닝은 앞으로 쭉 뻗은 길을 달리기에 앞사람을 추월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트랙은 닫힌 원이다. 내가 속도를 조금만 높이면 앞서가던 사람의 등 뒤에 금세 도달하게 된다. 나의 페이스는 오늘 모인 분들보다 조금 빠른 편이었다. 트랙을 돌 때마다 누군가의 뒤꽁무니가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너의 본능인지 뭔지 모를 본능으로, 저기 앞에 가는 저 사람까지만 따라잡아보자 라는 목표가 자꾸만 설정되었다. 마치 팩맨 게임에서 눈앞의 점을 먹어 치우듯 앞사람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렇게 한 사람을 추월하고 나면 저 멀리 또 다른 사람의 등이 보인다. 그러면 또다시 목표가 재설정된다. 이번엔 저분이다. 그렇게 타겟을 하나씩 클리어하다 보니 내 속도는 의도치 않게 계속 빨라졌다. 좋게 말해 빌드업 훈련이고 나쁘게 말하면 러너의 나쁜 병이다.
트랙 위에서 크루원들을 추월할 때마다 나는 짧은 응원을 보탠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비추는 어두운 트랙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비치는 힘들지만 가볍게 웃을줄 아는 여유,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땀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이를 악물고 버티는 표정. 마음 같아서는 지금 폼 너무 좋아요 끝까지 힘내세요 라며 구구절절 칭찬을 해주고 싶지만 3분대의 페이스로 달리면서 긴 문장을 말하는 것은 산소 결핍을 자초하는 행위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파이팅! 굿좝! 같은 한 호흡짜리 단발마뿐이다.
먼저 뛴 5km를 포함해 총 10km 운동장 25바퀴를 채웠다. 이제 남은 5km는 쿨다운 겸 쉬엄쉬엄 뛰어야겠다 생각했다. 페이스를 대폭 낮추고 조깅 모드로 전환했다. 그러자 뒤에서 달려오던 한두 분이 내 옆에 붙어 잠시 동반주를 시작했다. "밀잠자리님 천천히 뛰는 속도가 제게는 빠른 속도네요. 먼저 가세요. "
나는 사실 따라 잡혔을뿐인데... 먼저가라고 하시니, '그럼 먼저 갈께요.' 거절 못하는 나의 성격. 이럴때 참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쿨다운이라는 당초의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5km마저도 약간의 빌드업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어쩌면 나는 이토록 말을 잘 듣는 사람인가.
모든 훈련이 끝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36바퀴를 넘게 돈 어지러움 때문인지 밤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땀 식은 몸에 한기가 들기 전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딸아이를 픽업하러 갔다. 차에 앉아 핸들을 잡으니 그제야 노곤함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왜 그토록 열심히 달렸을까. 쳇바퀴 같은 400미터 트랙을 수십 바퀴나 돌면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그 많은 에너지를 태웠다. 어딘가로 이동한 것도 아니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저 바닥에 땀을 흩뿌리고 운동화 밑창을 닳게 했을 뿐이다. 이것은 명백한 제로섬 게임이거나 마이너스 효율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만족감을 느낀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주제도 없고 교훈적인 메시지도 없으며 극적인 반전도 없는 이 밍밍한 수요일의 달리기 기록. 나는 대체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시간에도 생산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달리기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달리기가 몸으로 쓰는 문장이라면 글쓰기는 머리로 달리는 레이스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달리는 그 과정 자체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감각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냄새 터질 듯한 심장의 박동을 느끼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멋진 결론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엉키고 설킨 생각의 타래를 풀어내고 순간의 감정을 활자로 박제하는 과정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트랙 위를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듯 이 글의 끝도 거창한 깨달음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출발선에 섰던 나와 완주하고 돌아온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흘린 땀만큼 내 몸이 단단해졌듯 오늘 쓴 이 무용한 글만큼 내 마음의 근육도 조금은 단단해졌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