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장점이자 단점.
복잡해진 머리를 식힐 겸 운동화 끈을 묶고 오후런을 나섰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에 엉켜 있던 일상의 실타래들이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다. 일에서의 골치 아픈 문제들, 가족 안에서 일어났던 사소한 갈등들이 리듬감 있는 발걸음 소리에 맞춰 차곡차곡 정리되어 갔다. 그러다 문득, 의식의 흐름은 현실을 넘어 깊은 명상의 주로로 접어들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뇌세포들이 평소와 다른 주파수로 공명하더니, 벼락처럼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 이거다! 도저히 풀리지 않던 난제의 해답이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나는 달리는 내내 그 생각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왜 그것이 최선인지를 머릿속으로 정밀하게 설계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유레카! 오늘의 달리기는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고 확신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아까 그 생각 참 좋았지 하며 나 자신에게 조용한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비극은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시작되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렸는데, 아뿔싸. 아까 그 기막힌 생각이 좋았다는 감정의 찌꺼기만 선명할 뿐, 정작 그 알맹이가 무엇이었는지는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분명 내 뇌를 관통했던 그 찬란한 논리 구조는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일까. 샤워하기 전에 메모라도 해둘걸하며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떠나간 생각은 비웃기라도 하듯 꼬리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더 이상한 건 이 상황 자체다. 분명히 내 머릿속에 존재했던 것이 왜 순식간에 낯설어지는 걸까. 그 좋았던 생각의 실체는 무엇이었으며, 나는 지금 무엇을 이토록 아까워하고 있는 걸까. 혹시 그 '좋은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달리기가 만들어낸 환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나만 이런 걸까. 도무지 붙잡히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이 어렴풋한 기분. 오늘 내 뇌는 나에게 아주 달콤한 꿈을 보여주고는, 잠에서 깨자마자 기억을 포맷해버린 듯하다. 내일 다시 뛰러 나가면, 그 얄미운 아이디어가 코너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만 이런거 아니지? 다들 그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