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루틴을 하는 노신사.
1월 24일 토요일, 우리 클럽의 정기런이 있는 날. 캘리포니아의 겨울 아침은 영상 8도로 비교적 포근했다. 물론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정지 상태의 온도일 뿐, 공기를 가르며 달려야 하는 러너에게는 여전히 장갑이 필수적인 날씨다. 손끝이 시리면 온 신경이 말초 신경의 고통에 집중되어 자연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얇은 장갑을 챙겨 끼고 집을 나섰다.
새벽 6시 40분. 하늘이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시간으로, 머리 위로는 깊은 우주의 심연을 그대로 담은 남색 하늘이 펼쳐져 있고, 서쪽 하늘에는 미련 많은 별들이 아직 그렁그렁 매달려 있다. 동쪽 산능선은 이미 선홍빛으로 달아올라 황금빛 테두리를 두르기 시작했으며 그 배경 앞에 서 있는 나무들은 실루엣만을 비추며 그림자극을 선보인다. 이런 풍경을 마주하면 오늘 하루도 참 아름답게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기런 장소에 도착하니 7시 정각에 맞춰 나와준 크루원들이 보였다. 여전히 해는 산 너머에서 밀당을 하고 있었지만, 트레일은 이미 한쪽 하늘을 밝은 노란색으로 물들인 여명 덕분에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몸을 풀며, 이윽고 트레일을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한 아시아계 노신사가 느릿한 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꼈다. 지난 5년 동안 이 코스에서 거의 매주 정기런을 해오면서 그를 마주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번 그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이 산책로를 걷고 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처음 그를 보았던 2021년 어느 날, 그는 이미 나의 아버지보다 열 살 정도는 더 많아 보였기에, 아마 지금은 여든 다섯 살을 훌쩍 넘기셨을 것이다. 몸은 곧게 섰으나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목이 앞으로 조금 나와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해 보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그의 걸음걸이는 오히려 더 힘차졌고 혈색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규칙적인 아침 루틴이 노년의 신체를 개선한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산호세의 칸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처음 그를 마주친 날부터 나는 달리는 도중 지나치게 되는 그 짧은 찰나에 매번 인사를 건넸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산책로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다. 사실 긴 산책로 저 멀리서부터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고령의 나이에 매일 같은 루틴을 지켜내는 그의 의지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인사는 지난 5년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오직 자신의 산책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그의 시선은 가까워질수록 허공을 향하거나 땅을 훑을 뿐, 나의 인사에도 도무지 마주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굿모닝이라는 나의 외침은 그의 고요한 명상의 세계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렇게 지난주까지 약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방통행 인사는 계속되어 왔으니,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겠거니 생각하며 달렸다. 하지만 내게는 그의 꾸준한 산책만큼이나 끈질긴 인사성이 있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러너 아니던가.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그의 시선이 아주 잠시 나에게 머무는 골든 타임을 포착하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은 목소리로 굿모닝을 보냈다.
그때였다. 평생 응답하지 않을 것 같던 그의 고개가 위아래로 아주 천천히 까딱였다. 그리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오늘 아침의 아련한 여명보다 아름다웠고, 이제 곧 내가 나간다라고 선언하며, 하늘에 황금빛 조명을 비춘 태양보다 더 따스함을 주었다. 5년을 기다린 끝에 받은 응답 메시지였다.
나는 그가 꾸준한 산책을 통해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있음을 보았고 오늘 그의 미소를 보며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그의 마음 한편의 그늘도 조금은 걷혔음을 느꼈다. 이 5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타인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칸트처럼 엄격하게 자신의 아침 루틴을 하는 노신사와 끈질기게 인사를 건네던 러너의 만남. 우리는 그렇게 수천 번의 엇갈림 끝에 마침내 같은 주파수로 교신에 성공했다. 오 년 만에 도착한 그 짧은 끄덕임 하나로 멋진 아침이 되었다.
굿모닝, 산호세의 칸트. 다음주에도 그 자리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