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미치는 중력 변수들.
우리 팀이 정기런을 즐기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6km 이상 쭉 뻗은 길을 달려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선형적 왕복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약 4km의 짧은 구간을 여러 바퀴 반복해서 도는 루프 코스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환경이 러너의 뇌에 작용하는 방식 또한 판이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인 왕복 코스는 아주 미세한 오르막으로 시작된다. 워낙 완만해서 누가 미리 귀띔해주지 않는다면 평지라고 느낄 만큼 부담이 없지만, 반환점을 도는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내리막의 가속도가 붙으며 다리에 힘을 주지 않아도 바퀴가 굴러가듯 몸이 전진하는 신비로운 마법진이 펼쳐지는 것이다. 중력의 도움을 받아 경쾌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이 시간은 러너에게 허락된 최고의 보너스 구간이다.
하지만 출발점이자 피니시라인을 불과 2km 앞둔 지점에 다다르면 그 찬란했던 마법의 효력이 갑자기 다한 듯 사라진다. 분명 내리막의 연장선이어야 할 길인데 발걸음은 갑자기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워진다. 이 구간 지하에 거대한 자석이라도 매립되어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에 빠질 정도다. 사실 여기에는 모든 러너가 공유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오늘 5km를 뛰겠다고 마음먹으면 4km 지점부터 힘이 들지만, 하프 마라톤이나 20km를 계획하면 신기하게도 그 거리까지는 몸이 버텨준다. 우리 신체는 본인이 설정한 대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목표 거리를 인지하는 순간 가용 에너지를 구간별로 최적화하여 할당한다. 5km 목표라면 초반에 출력을 쏟아붓게 하고, 장거리라면 비상식량을 아껴서 조금씩 내보내는 식이다. 결국 마지막 2km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중력은 체력이 고갈된 신호가 아니라, 설정된 목표치에 거의 도달했으니, 어떻게든 해낼꺼야 라며 뇌는 셔터를 내리기 시작 한다.
반면 두 번째 유형인 4km 루프 코스는 고도차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코스 주변으로 공원과 테니스장, 경찰서, 쇼핑가와 주택가가 어우러져 지루할 틈이 없고 필요할 때마다 주차해 둔 차에서 보급을 할 수 있어 장거리 훈련에 최적화되어 있다. 다만 각자 페이스가 다른 러너들이 같은 방향으로 돌다 보면 훈련 내내 동료의 뒷모습조차 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거대한 트랙 위에 각자 고립되어 달리는 기분이 들 때쯤, 우리는 아주 명쾌한 해결책을 실행한다. 바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다.
서로 엇갈려 달리면 4km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우리는 두 번이나 동료와 조우하게 된다. 저 멀리서 아른거리는 동료의 실루엣을 발견하는 순간, 뇌에는 새로운 전기 신호가 흐른다. 교차하는 찰나에 나누는 짧은 응원과 하이파이브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촉진 효과를 일으킨다. 타인의 존재와 격려가 인지되는 순간, 뇌의 피로 감지 시스템은 잠시 마비되고 혼자라면 무겁게 느껴졌을 중력이 동료의 미소 한 번에 가뿐하게 상쇄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코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달리기의 중력의 실체는 거리나 고도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설정한 한계가 만들어낸 뇌의 장난이거나, 혹은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얻는 심리적 부력에 의해 결정된다. 왕복 코스 막판에 나를 끌어당기던 묵직한 힘이 뇌가 친 가상의 바리케이드였다면, 루프 코스에서 마주 오는 동료를 보며 얻는 가벼움은 그 바리케이드를 허무는 강력한 촉매제다.
제주도의 도깨비 도로가 지형지물을 이용해 우리 시각을 속이듯, 우리가 주로에서 느끼는 피로와 고통의 상당 부분도 마음이 설계한 착시일지 모른다. 결국 러닝이란 물리적인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는 과정이 아니라, 내 마음속 계기판이 가리키는 중력 상수를 스스로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동료와 호흡을 나누는 한, 우리 앞에 불가능한 중력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의 달리기 이외의 생활에도 적용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