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보상

도파민 주로

by 밀잠자리

팀원들과의 토요일 정기런 약속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 7시 출발이다. 겨우 한 시간 남짓의 차이일 뿐인데도 마음에는 제법 넉넉한 여유가 들어앉는다. 무엇보다 새벽 별을 보며 눈을 떠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 특유의 공포감이 덜해진 덕분에, 어제저녁에는 제법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을 청했더랬다. 하지만 오랜 기간 단련된 나의 생체리듬은 이 야속한 여유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몸은 어김없이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고, 화장실에 다녀와 시계를 확인하니 역시나 새벽 5시였다.


조금 더 누워 있을 요량으로 7시를 기준으로 시간을 역산해 보았다. 6시 15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고, 뜻하지 않게 한 시간 넘는 자유 시간이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다시 잠이 올 리 만무했다. 누워서 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유튜브로 밤새 일어난 뉴스를 캐치업하거나 브런치의 글들을 읽는 것뿐인데, 이 야속한 세월은 나에게 노안이라는 불청객을 가져다주었다. 억지로 무기력해진 안구 근육을 움직이는 행위가 미간의 주름만 깊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시간이 될 때까지 책상에 앉아 명상 음악을 들어보기로 했다. 느긋한 아침을 기대하며 잠들었던 어제의 평화를 기억해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 있을 러닝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최대한 차분한 마음으로 도파민을 억제해보려 애썼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차분해졌던 모양이다. 의자에 앉은 채로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번쩍 눈을 뜨니 6시 반이었다. 비상사태다. 머릿속에서는 아까 역산해두었던 일련의 과정들을 1, 2분씩 앞당기며 재구성에 들어갔다. 팀원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도착할 수 있겠다는 이미지를 필사적으로 그리며 집을 나섰다.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 선 파란색 내 차 안에서, 나는 운전대를 잡고 왼발을 심하게 떨어댔더랬다. 그래, 마음은 급해도 안전하게 가야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약속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이다음 코너를 돌고 그다음 직선거리를 지나면, 아, 조금 늦겠네.


결국 약속 장소에 도착해 팀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건넸다. 늦었으니 벌금이나 내라는 농담 섞인 핀잔이 돌아왔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너스레를 떨며 웃어넘겼다. 어서 시작하시죠, 정말 죄송합니다.


아침 7시 2분, 드디어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일출까지는 아직 2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지만, 낮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수증기가 트레일을 감췄다 보여주기를 반복하며 우리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변덕스러운 아이 같은 그 트레일을 따라 달려 나갔다. 우리는 각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달리는 공간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3km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해가 정면에서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떴다기보다 그 형체가 확실히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저기에 해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펼쳐졌다. 광선을 뿜어내는 산처럼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짙은 수증기가 아침의 햇살을 산란시켰다고는 하지만, 태양 본체의 그 웅장함은 다 가리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술래가 모조리 잡아버리겠다는 강한 고함을 내뱉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강력한 술래 앞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마음을 말이다.


영화 인터텔라에서 방 안에 모래가 떨어지는 장면 위로 햇살이 비치며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는 듯한 복선을 주던 그 순간처럼, 나뭇가지 사이로 갈라진 빛줄기들이 수증기 도화지 위에 뚜렷하게 그려지는 신비로움이 무언가를 말하려 했고, 다행히 우리는 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와아,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과, 팀원들과 함께 그 장관을 지켜보며 폰카에 담느라 잠시 멈춰 서있는 동안, 그 순간 나의 몸과 머리, 그리고 마음은 알지 못할 충만함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뇌과학이 말하는 도파민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뛰러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순간이었다. 이내 태양은 그 몽환적인 광경을 밀어내며 위용을 드러냈고, 우리는 한결 깨끗해진 트레일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다른 업힐 초입. 약 2km에 달하는 이 고갯길을 한 번에 뛰어 올라가야 하는데,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파이팅이 필요하다. 벌써 이 길을 스무 번도 더 올랐지만, 올 때마다 과연 이번에도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상에 서는 순간 발아래로 펼쳐지는 마을들과 숲, 구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주는 보상은 늘 예상을 상회한다. 함께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팀원들과 공유하는 그 순간은 그 자체로 완결된 보상이기에, 다들 뛰고 나서 무언가 더 달라고 떼쓰지 않는다. 아니 못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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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힐을 마쳤으니 이제는 다운힐이다. 올라올 때는 힘들어서 멀리 보기도 싫더니, 내려갈 때는 그제야 멀리 있는 경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어느덧 새파랗게 변해 있는 캘리포니아의 언덕들이 시야에 가득 찬다. 윈도우 배경화면에 나오는 그 푸른 언덕과 파란 하늘의 풍경이 분명 여기 어디쯤일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팀원들에게 내가 아껴둔 특별한 코스를 선물하기로 했다. 원래 목표한 거리보다 1km 정도 더 길게 뛰어야 하는 변경이었지만, 그 압도적인 자연을 경험하고 나면 결코 불만이 생기지 않을 만족의 트레일이다. 이름하여 내 마음대로 붙인 도파민 플러스 코스다. 아침에 2분 늦은 벌금을 커피 대신 이 코스가 주는 만족감으로 퉁치기로 한 것이다. 평균 나이 반백 년의 멤버들이지만, 감탄하는 모습은 마치 소풍 나온 소년 소녀들이 부모님이 몰래 준비해둔 특별 도시락을 까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마치 부모처럼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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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을 뒤로하고 비교적 수월한 다운힐을 마무리하면, 남은 주로는 10km에 가까운 완전 평지의 주택가 구간이다. 풍경의 변화가 거의 없는 지루함 속에 어느새 훌쩍 높이 떠오른 태양이 우리를 괴롭히는 시간이다. 기댈 것이라고는 챙겨온 에너지 젤과 음료수,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의 응원과 기다림뿐이다. 이 거리를 뛰고 있는 스스로의 끈기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해낸다는 고집스러운 생각이 힘들다는 생각과 줄다리기를 하며 힘겹게 이기고 있는 순간이다. 발바닥과 무릎, 어깨와 허리가 비명을 지르려 할 때마다, 어디선가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이 그 고통 위에 달콤한 진통제를 뿌려대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약 2km의 업힐을 포함해 총 25km에 달하는 고된 장거리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지각의 스트레스는 어느덧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완주한 자만이 누리는 고귀한 흐믓한 여운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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