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멱살 잡힌 나의 몸.
이불밖 온도는 여전히 서늘하다 못해 차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오자 아침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이불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몸뚱이에는 무수한 재부팅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시스템 오류인지 아니면 그저 로그인이 하기 싫은 것인지 모를 저항을 뚫고 겨우 포근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매번 아침마다 겪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스트레스 이지만, 일단 나가서 뛰고 나면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고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어떤 지연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침의 스트레스를 기꺼이 좋은 것이라 부르며, 다른 이름으로는 모티베이션의 원천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보다는 내 정신이 신체의 멱살을 잡고 강제로 끌고 나왔다는 표현이 훨씬 적절할 것 같다.
여섯 시 정각, 약속한 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은 산호세에서 가장 평평한 곳으로 약간 변형이 된 모양이기는 하지만 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바퀴가 대략 사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되며, 화장실도 두 군데나 배치되어 있어 아침 운동을 하는 러너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적의 인프라를 갖춘 셈이다. 오늘 팀과 세운 목표는 무려 32 킬로미터, 즉 이 사각형을 여덟 바퀴 정도 도는 것이다. 나오기로 한 멤버들이 하나둘 갖춰지자 우리는 가볍게 발을 맞추며 뛰기 시작했다.
오늘의 장거리 훈련은 엘에스디(LSD) 페이스로 진행하기로 했다. 조깅하듯 천천히 달리니 아직 캄캄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경치들이 평소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가로등 불빛과 그 빛을 받아 더욱 짙은 그림자를 만드는 나무들의 실루엣, 아직 불이 켜진 공원 주변 주택가와 상점들의 조명, 그리고 우리처럼 이른 시간을 활용해 몸을 움직이는 얼리 운동러들의 모습까지. 하지만 오늘따라 머리 위의 별빛이 유난히 희미해 보였다. 왜 별들이 오늘은 힘을 못 쓰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달덩이가 황금빛을 머금은 채 서쪽 하늘 끝에서 은은하게(금금하게)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풀문, 보름달이다. 그것은 화려한 퇴장을 앞둔 월몰의 순간이기도 했다.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아직 저렇게 당당히 떠 있으니 햇님은 아마 딱 저만큼의 각도로 수평선 아래에 숨어 있겠구나라는 쉬운 계산이 되었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왼쪽을 슬쩍 보니 하늘의 구름 실루엣이 순식간에 분홍색으로 무르익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구름 아랫부분을 비추며 화려한 조명 쇼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 곧 나갈 거니까 기대해도 좋아라고 세상을 향해 선언하는 듯한 장관이었다. 오른쪽의 달이 화려한 금빛을 잃고 수평선에 걸린 구름 뒤로 슬그머니 물러갈 즈음, 동쪽은 잠시 화려함을 잃고 어두운 흰색 도화지로 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정적도 잠시, 눈부신 주황색 선이 수평선 위로 길게 한 줄 쭉 그려지더니 이내 노른자위 같은 해가 동그랗게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새벽이 열리고 온 세상에 생기가 돌았다.
삼십 분에 한 바퀴씩 돌아가는 이 코스는 돌 때마다 햇님의 도움으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침의 차가운 냉기도 서서히 잦아들었고, 따스한 온기가 내려앉자 공원의 풀들이 뿜어내는 향기도 한층 강해졌다. 처음에는 이불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렇게 힘들었던 달리기였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새로운 경치들, 뿌듯함, 뿜어지는 각종 중독성 호르몬들이 다시 그 묘한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했다. 새벽에 멱살 잡혀 억지로 끌려 나왔던 내 몸도 어느새 리듬을 타며 춤추면서, 약속했던 32 킬로미터에 다다르자 나는 이른 아침부터 내 멱살을 잡고 여기까지 끌고 온 그 녀석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 몸 상태 너무 좋다. 오후에는 맛있는 거 먹고 푹 쉴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