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데이터 그리고 사유의 루프

이런 글 누가 좋아 할수 있을까 ?

by 밀잠자리

주말에 하프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주최측에서 올려준 드론 영상을 보고 문득 그당시 촬영된 영상이 시간이 지나 선명하게 내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생각해보다. 글로 남기로 했다. 이렇게 써놓은, 나의 생각이 머리를 거쳐 신경을 지나 손가락을 타고 전기적인 신호를 거쳐 언젠가 나에게 또는 소비하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오는 과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글을 누가 좋아 할까. 미친놈인가. 할수도 있을 것같았다. 브런치니까 공유한다. 못읽겠으면, 마지막 네 문장만 읽다 가시라.




그날 아침 공기는 차갑고도 뜨거웠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죽이던, 나의 몸 위로 이른 아침의 태양광이 가차 없이 쏟아져 내렸다. 수억 킬로미터를 날아온 광자들은 나의 러닝복과 피부에 사정없이 충돌했다. 물리적 세계에서 빛과 물질의 만남은 언제나 격렬하다. 어떤 광자들은 나의 체온을 높이며 흡수되었지만, 또 다른 광자들은 나의 형체와 색채 그리고 그 순간의 결연한 표정을 품은 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중 극히 일부의 광자들이 상공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드론의 렌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나와의 작별이자 정보로서의 새로운 탄생이었다. 드론의 눈이라 불리는 센서에 도달한 광자들은 반도체라는 미세한 감옥에 갇히며 전자를 밀어냈고,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광전 효과에 의해 비로소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었다. 나의 육체적 역동성이 0과 1이라는 차가운 이진수의 배열로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만질 수 있는 실체에서 전기적 위치 에너지를 가진 데이터로 존재를 옮겨갔다.


드론의 메모리 칩 안에서 나는 잠시 머물렀다. 플래시 메모리 내부의 절연막 사이에 갇힌 전하들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후 드론이 지상으로 내려와 컴퓨터와 연결되었을 때, 나의 데이터는 금속 배선을 타고 흐르는 전자기적 파동이 되어 길을 떠났다.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가상 제국의 서버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나의 데이터는 수만 개의 패킷으로 조각나 구리선을 타고 흐르다 대륙과 대륙을 잇는 해저 광케이블 속에서 다시 레이저의 점멸로 변했다. 깊은 바다 밑 고요한 어둠 속을 통과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모습이 담긴 빛의 신호였다.


이윽고 닿은 데이터 센터의 심장부, 수천 대의 서버가 내뿜는 열기 속에서 나의 데이터는 마침내 안착했다. 서버의 자성 물질 위로 기록된 나는 이제 부패하지도 잊히지도 않는 영속성을 획득했다. 출발선의 그 뜨거웠던 열기는 사라졌지만 그 열기의 기록은 전기적 혹은 자기적 상태의 보존을 통해 박제가 된 채 누군가의 클릭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일상의 고요함 속에 잠겨있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페이스북 앱을 열었다. 나의 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리는 순간 서버에 잠들어 있던 비트들이 깨어났다. 수천 킬로미터 밖 서버에서 출발한 전기 신호는 다시 광섬유와 라우터를 거쳐 나의 집 안방으로 침투했다.


컴퓨터의 그래픽 처리 장치는 0과 1의 조합을 해석해 화면 위의 픽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빛나라. 모니터의 액정 소자들이 문을 열고 백라이트의 빛을 통과시키거나 소자들이 스스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때 방출된 광자들은 놀랍게도 그날 마라톤 출발선에서 나의 몸을 맞고 튕겨 나갔던 그 광자들의 대역이다. 파장도 강도도 색상도 완벽하게 재현된 이 복제된 빛들은 공기를 가르고 나의 각막을 향해 돌진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거는, 빛을 매개로 한 시공간의 조우였다.


나의 눈으로 들어온 광자들은 망막에 도달해 다시 한번 마법을 부렸다. 시세포 속의 분자들이 빛을 받아 기하학적 구조를 바꾸며 신경 에너지를 발생시켰다. 이 미세한 전기적 펄스는 시신경이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나의 뇌 후두엽으로 전달되었다.


뇌는 분절된 신호들을 통합해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흩어져 있던 색점들이 모여 출발선의 긴장감 서린 얼굴이 되고 뒤섞인 선들이 모여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나가는 다리의 근육이 되었다. 하지만 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각 정보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에 닿는 순간 단순한 이미지는 추억이라는 거대한 파도로 변했다.


그날의 비릿한 땀 냄새와 옆 러너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심장을 울리던 출발 신호음이 신경세포들의 동시다발적인 점화를 통해 되살아났다. 뇌의 전두엽은 이 복합적인 정보를 해석하며 나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서사를 완성했다. 인지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하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었다.


마침내 여정의 끝은 화학물질의 분출로 장식되었다. 인지된 감동은 뇌 하수체와 부신을 자극했다. 나의 혈관 속으로는 도파민이 쏟아져 나와 성취의 쾌감을 선사했고 엔도르핀은 그날의 고통을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미화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뭉클함은 세로토닌의 파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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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에서 나의 몸을 맞고 튕겨 나갔던 무색무취의 광자가 인류가 쌓아 올린 디지털 문명이라는 거대한 우회로를 돌아 결국 나의 뇌 속에서 눈물과 웃음이라는 생화학적 반응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메마르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여정을 돌이켜보면 기술은 오히려 인간의 찰나를 영원으로 연결하는 가장 정교한 매개체임을 깨닫는다.


나의 몸에서 시작된 빛이 전자가 되고 자기가 되고 다시 빛이 되어 돌아와 마침내 내 안의 화학 물질로 변하는 이 과정은 우주의 물리 법칙이 인간의 의식과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서사시다.


오늘 나의 몸을 맞고 튕겨 나갈 광자들이 또 어떤 디지털 미궁을 지나 나에게 돌아올지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나에게 어떤 화학적 용기를 불어넣어 줄지 기대하게 된다.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과 기억으로 변환되어 우리 곁을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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