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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May 18. 2022

오월과 연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오월은 내게 렌즈를 씌운 것이 분명하다. 라식 수술을 한 뒤로 콘택트 렌즈는 더 이상 끼지 않는다. 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햇빛에 반짝이는 연초록 나뭇잎들이, 화려한 수를 놓은 듯 사방에 피어오른 봄꽃들이 새롭게 보인다.



오월은 새 렌즈를 끼우기 전에, 내 눈에서 희뿌연 비늘을 떼어내기라도 한 것일까. 오랜 시간 계절을 등지고 살았던 사람처럼 무미건조해진 마음의 허물도 덕분에 한 꺼풀 벗겨낸 기분이다.    



올해 어린이날에는 어디 멀리 가지 않았다. 큰 아이는 선물로 받은 새 자전거를 타는 일이 급선무였다. 집 앞 공원에 간단한 놀거리와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나갔다. 이제는 그늘막 설치도 가능해져 공원 곳곳은 색색이 텐트촌을 이루고 있었다.



아, 얼마만인가. 생각해보니 공원 안에 마지막으로 텐트를 친 게 3년 전쯤이나 되었다. 4인용 텐트 안에 앉아서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걱정과 근심, 불안이란 낱말들은 공원 입구에서 출입을 금지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일찌감치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쉬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담담해 보였다. 많은 것들을 견디고 비로소 감사하게 된 것은 이런 평온한 일상이었지. 지난한 과거의 시간들을 잠시 잊고 몇 시간이나마 가벼운 마음과 걸음을 허용해 주는 곳. 봄바람 부는 푸른 공원은 그런 곳이었다.



아이들은 자전거 타기가 지루해지자 아빠와 함께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놀잇감으로 선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제대로 날려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연을 날리는지 우리 모두는 알지 못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한 손엔 얼레를 잡고, 다른 한 손엔 연에 매달린 실을 들고 무조건 달렸다.



공원의 중앙 광장은 공간도 넓고 연이 걸릴만한 나무도 없었다. 하지만 바람이 없으니 연을 날리려고 달려봤자 소용없었다. 툭, 툭 소리를 내며 연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관건은 바람이었다. 연은 사람이 아니라 바람이 띄우는 것이었다.       



바람. 광장 계단에 가만히 앉아 바람을 기다렸다. 바람은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내 삶은 어떤 바람을 타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연날리기처럼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어오는 바람만큼 내가 흔들리고 흔들려야 한다는 것을. 바람을 피하려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인위적으로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잠시 뒤,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얼레의 실이 다 풀릴 즈음 연은 하늘 위에서 고요하고도 우아하게 나부꼈다. 제 자신을 바람에 온전히 맡기고 연은 본래의 자리를 찾은 것이다. 바람을 타고 하늘 속 제 자리를 찾은 연은 더 이상 우왕좌왕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떠 있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가는 실 하나에 매달린 얇은 방패연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제 몸을 흔드는 바람을 원동력 삼아 더 높이 떠오를 줄 아는 연의 모습이 경탄스러워서.      



그러고 보올해 오월은 바람이 많이 분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심긴 나무들도 바람에 껑충껑충 제 키를 키운다. 그 비좁은 공간에도 아랑곳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것들도 본다. 풀, 꽃, 나뭇잎, 아이들의 머리카락, 놀이터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펄럭이는 옷자락들. 저마다 흔들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흔들리는 생명들이 아름답다. 흔들릴 때마다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란다. 잘 자라고 있다고 쓰다듬어주고 싶다. 오월은 바람도 좋다. 실컷 맞고 실컷 흔들리고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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