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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Jun 03. 2022

안아주는 일은 알아주는 일

유난히 강렬했던 햇볕 아래, 그늘도 없는 놀이터에서 한참 뛰어놀았던 아이는 지쳐 보였다. 잠깐 누워있을래. 집에 들어온 아이는 자기 방 침대를 먼저 찾았다. 그래, 피곤하면 한 잠 자. 나는 이렇게 말을 내뱉고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맨발로 그네를 타다가 이곳저곳 돌아다니기까지 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뽀드득, 뽀드득. 두 발을 씻고 난 아이는 잠도 씻겨져 내려갔는지 종이접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유튜브를 보면서 종이를 접는 시간은 내게도 쉬는 시간이라 얼른 영상을 틀어주었다. 그런데 종이를 접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는 징징대기 시작했다. 영상 속 설명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지만 잠자코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아이는 집 안이 떠나가라 오열하기 시작했다. 힘 조절을 잘 못했던지 접고 있던 알로사우르스의 머리가 그만 찢어진 것이다.



"으아앙...!!! 머리가 제일 중요한데... 으아앙...!!!"


나는 다가가서 찢어진 종이 공룡부터 살펴보았다. 아이는 머리가 제일 중요하다며 울어댔지만 내가 보기엔 테이프로 붙이면 될 일이었다. 승호야, 심하게 찢어진 건 아니네. 테이프로 붙여보자. 그럼 감쪽같을 텐데? 하지만 내 말은 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나 보다. 울음은 금세 잦아들지 않았다. 졸리다고 할 때 그냥 자게 내버려 둘걸. 여전히 나는, 엄마인 나의 필요를 아이의 필요보다 앞세우곤 한다. 나는 억지로 아이의 해결사 노릇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테이프가 아니었으니까.  



대신 나는 젖먹이 아기를 안듯 울고 있는 아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이렇게 안아 본 적이 아주 오랜만이라고 느꼈다.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꽉 껴안고는 벌게진 양 볼을 쓰담쓰담,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었다. 10초 정도나 지났을까. 내 눈과 마주친 아이의 눈은 반달 모양이 되더니 입가에선 피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가까이서 본 아이의 피부는 봄볕에 그을려 건강한 낯빛이었다.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는 데 대개 효과가 큰 것은 말보다 스킨십이라고.   


내 생각으로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에서 말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이 바로 스킨십인 것 같다. 스킨십처럼 친밀한 대화가 또 어디 있으랴. 아이들이 지쳐 보일 때 나는 "너 무슨 일 있었니?"라고 묻는 대신, 아이들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말한다.
"사는 게 힘들지?"
내가 우울해하면 아이들 역시 조용히 엄마를 안아 주며 말한다.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박혜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p.52)


여성학자이자 뮤지션 이적의 엄마로도 유명한 박혜란 작가의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한 대목이다. 대화를 꼭 말로만 하라는 법이 있나. 스킨십이야말로 부모와 자식 간에 가장 친밀한 대화일 수 있다는 것. 나는 이 책을 큰 아이가 다섯 살, 작은 아이가 세 살 때 읽었다. 그때가 벌써 5년 전. 당시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자그마했다. 당연히 날마다 안아주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스킨십으로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은 앞으로도 자연스러울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고 보니, 막상 안아줄 기회가 흔치 않다. 안아주기는 커녕 손잡기도 어렵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큰 아이의 손은 언제 잡고 걸어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안아주는 일이 일상이던 시절


안아주는 일의 위대함을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경험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예비 시댁은 마음속 큰 두려움이었다. 남편은 내가 시댁에 첫인사를 가기 전에 휴대폰으로 먼저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집 안 거실에서 찍은 사진, 어머니와 친척들이 함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등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쓰지 않던 시절이라, 나는 몇 장의 사진만 보고서 시댁의 이미지를 내 멋대로 그려보곤 했다. 친정집 식구들과는 확연히 다른 시댁 가족들의 인상에 나는 만남 이전부터 마음이 경직되고 괜한 걱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를 탐탁지 않아하시면 어쩌지. 주변에서 자주 보고 듣던 고부 갈등, 시누이와의 갈등이 생기면 어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시댁에 인사 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하지만 시댁 어른들께 처음 인사를 드린 날, 홀로 안으로 쌓고 있던 오해의 벽이 일순간 허물어졌다. 어머니는 인사말을 하시기도 전에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시기부터 한 것이다. 예비 며느리와의 첫 만남이 어머니 역시 어색하시고 걱정되셨을 텐데. 그렇게 마음을 먼저 열어주신 것이 감사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뵙게 된 다른 가족들 역시 만나면 반갑게 안아주기부터 하셨다. 가족들은 만나자마자 마음과 마음을 맞대는 의식을 치르고서야, '건강하지?', '수고 많다' 같은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는다. 안아주는 일이 시댁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습관이고 문화였던 것이다.   



요즘도 어머니는 종종 "우리 며느리, 안아보자." 하시며 만나면 안아주기부터 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울컥하곤 한다.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서운하거나 외로웠던 감정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 나와 남편 역시 다른 인사말보다 그냥 서로 안아주는 것이 더 익숙하다. 안아주지 못하는 날은 음. 문제가 있는 날이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알아주는 일이다. 오해를 화해로 변화시키는 가장 쉬운 일이다.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그리고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평안함으로 뒤바꾸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제 안아주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하지만 어른처럼 아이들도 피로와 긴장과 불안을 시시때때로 겪는다. 잊지 말아야겠다. 때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따뜻한 포옹이 힘이 있다는 것을. 학교로 떠난 아이들을 다시 맞이하는 시간이다. 만나면 꼬옥 안아줘야지. 반갑게, 가만히, 때로 불쑥불쑥 안아줘도 괜찮겠다. 그렇게 네 마음을, 감정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엄마가 알고 있다고 몸으로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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