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끝'이 아닌 '꿈'으로 향하는 시간
아침 식사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먼저 날달걀 두 개를 깨어 우유와 풀어놓고는 식빵 한 장을 푹 담갔다. 그리고선 아이들을 깨우고 곁들여먹을 과일을 깎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가스 불을 켜고 오목한 접시 안에 담가 둔 식빵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나무젓가락이 휘청거렸다. 달걀물이 스며든 식빵이 하도 묵직해서 순간 놓칠 뻔했다. 보기 좋게 노란 옷을 입은 식빵을 팬에 살짝 익혀냈다. 간단하지만 꽤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나는 큰 포만감을 느꼈다. 토스트 한 장으로 은근슬쩍 달걀 두 개를 섭취한 셈이다.
식빵에 달걀 두 개가 온전히 스며든 모습이 신기했다. 가만히 놓아둔 마른 식빵 한 장에 달걀물이 배어들자, 그 뻣뻣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맛과 영양은 또 얼마나 깊고 풍부해지는가. 찰떡궁합이란 식빵과 달걀물 사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내게도 달걀물 같은 존재가 있다. 마르고 푸석한 식빵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삶에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스며든 것. 그것은 책이었다.
어릴 적, 책 읽는 시간은 늘 좋았다. 책은 집에 많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집안 어른들이 특별히 책을 많이 읽으시거나 읽히신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독후감 숙제가 있어 책을 사게 되면 그 책을 반복해서 몇 번이고 읽었다. 유년 시절 읽었던 몇 권의 창작 동화 제목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중에 한 권은 특이하게도 지명 이름을 뇌리에 각인시켜 주었다. 극단 활동을 하는 아이들 이야기였는데 이들이 갔던 여행지 지명이 너무 신비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경기도 곤.지.암. '곤지암? 이런 곳이 진짜 있나? 나중에 꼭 가봐야지.' 당시 경기도에 살고 있던 나는 책 속의 지명이 가짜인 줄 알았다. 경기도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도 가늠할 줄 모르고서. 가끔씩 곤지암 근처를 지날 때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이 항상 생각난다.
"너는 천연기념물 같아."
대학 시절, 당시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캠퍼스 교정에서 만났는데 내 손에 시집 한 권이 들려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순간 부끄러웠다. 실제의 나는 그렇게 시를 읽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었을 것이다. 국문학. 책이 좋아서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부 시절은 인생을 통틀어 책을 가장 읽지 않았던 시기였다. 당시의 나는 활자 밖의, 살아있는 세상과 사람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국어학의 세계는 나와 책의 거리를 점점 멀게 했던 것 같다.
순수하게 책 읽는 맛을 회복한 때는 오히려 한창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던 시기였다. 어떤 뾰족한 술수를 찾겠다고 책을 읽진 않았다. 삶이 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고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어떤 날들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는 마음대로 벗지 못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버겁고 무기력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무턱대고 책날개를 펼쳤던 것 같다. 책 속의 수많은 활자 밑으로 나를 숨기기 위하여. 책을 열면 적어도 내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 투성이인 나에게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구멍. 그런 탈출구가 책 속에 있었다.
책의 맨 앞 날개를 펼 때의 나와 책의 맨 뒷날개를 닫을 때의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 불안했던 호흡이 편안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서 무언가 한 가지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차올랐다. 책 속의 활자가 내 안에 스며들수록 나는 회복되었다.
지금의 내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과 삶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당장 나 자신이 변화되거나 눈앞의 현실이 뒤바뀌는 마술은 책 속에 없다. 책을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반복된 행위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일뿐이다. 하지만 얼마간 이런 시간을 견딘 뒤에 발견한 좋은 책은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한다.
"독서가 아니었다면 내 삶은 중간중간 페이지가 뜯겨 나간 낡은 책처럼 공백이 가득했을 것이다. 끝내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거나 부표처럼 천지를 떠돌며 기웃거렸을 것이다."
(김애리,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p.9)
마른 식빵에 달걀물 스며들듯 촉촉해지고 유연 해지는 나만의 시간. 기존의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나로 도약하는 시간. 좌절과 실패도 성장의 다른 이름임을 확인하는 시간. 결국에는 '끝'이 아니라 '꿈'을 향해 마음의 발길을 돌리는 시간. 독서란 내게 이런 소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