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다

꽃다발을 묶는 일이 글쓰기와 닮았다

by 혜일

저녁 시간, 현관문이 열리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찌감치 퇴근한 남편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주 빠르게, 내게 꽃을 건넸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배시시 웃음이 났다. 사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남편도 그러했을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남편이 일찍 들어온 일도, 그가 꽃집에서 꽃을 산 일도, 내가 꽃을 받는 일도. 그런데 서로 어색했기에 기쁘고 좋았다. 그 모든 일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면 나도, 그도 덜 행복했을 것이다.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는 남편을 힘껏 안아주었다.




며칠 째 눈길이 자꾸 꽃을 향한다. 메인 꽃인 연분홍 장미와 하얀 퐁퐁 국화, 그리고 귤색의 라넌큘러스가 예쁘다. 꽃다발 하나를 들여놓은 덕에, 봄의 생기가 집 안 가득히 돈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여리여리한 작은 꽃들도 메인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낯설지만 신비로운 생김새로 두 눈을 매혹시킨다.



꽃의 향기는 독보적이다. 희고 노란 프리지아의 향이 특히 진하다. 자연스럽게 꽃 속에 코를 파묻게 된다. 어떤 향기도 맡을 수 없는 조화는 아무리 크고 예뻐도 눈길이 가지 않지만 생화는 다르다. '우와'라는 감탄사 말고는 다른 찬사를 짓지 못할 만큼 좋은 향기가 났다. 프리지아처럼 진하지 않지만 화병 속에 꽂힌 다른 꽃들도 저마다 고유한 향을 갖고 있으리라. 그 은은한 향까지 식별할 재주가 없는 내 둔감한 후각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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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묶는 일이 글쓰기와 닮았다.



플로리스트의 손길 안에서 한데 묶인 꽃들은 그 색과 형태, 향기까지 조화롭다. 이 꽃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문득 비싼 값을 지불하고 맞바꾼 이 꽃들도 처음부터 꽃가게로 부름 받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 중에 어떤 꽃은 이국의 어느 길가나 숲 속에서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은 들꽃으로 살지 않았을까. 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낱 잡풀로 취급받으며 말이다. 만약에 내가, 그런 곳에서 이 꽃들을 마주했다면 지금처럼 자세히 들여다보았을까. 아마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가던 길을 바삐 걸어갔을 확률이 높다.



한때, 내 안에서 나온 말들을 끄적이고 보면 대체 이 글들은 어디에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면 쓰는 시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언가 쓰고 있지만 영글지 못한 생각에 글을 감추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 글들이 십 년 전 쓰던 노트북에도, 지금은 하지 않는 블로그 속 비밀글에도, 그리고 일기장에도 여기저기 잡풀처럼 돋아나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간직하고만 있던 글들. 그런데 그런 나의 글들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참 후에 과거에 적어놓은 글을 슬며시 찾아 읽어보곤 한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들, 육아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토로한 글들,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서자고 다짐해 놓은 마음들, 시가 되지 못한 메모에 불과하지만 어떤 감동이나 기쁨을 표현해놓은 문장들. 그런 것들이 눈에 띌 때마다 지금의 나는 다시 힘과 위로를 얻는다.



예전에는 글쓰기를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쓰고 덮어놓은 글들이 요즘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글 속에서 보이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인 것 같아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야 그 쓸모를 찾은 과거의 글에 문장을 보충해보거나, 불필요한 단어를 제하면서 읽기 좋게 다듬는다. 요즘에 쓴 글을 조합해 조금 더 풍성한 새 글로 만들기도 한다. 줄기의 잎과 가시를 떼어내고, 모양과 색이 조화로운 꽃다발로 조심스레 묶듯이. 그렇게 재구성한 글들을 예상치 못하게 브런치에 발행하기도 했고, 원고 쓰는 일에 써먹기도 했다.



인디언 말에는 '잡초'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잡초란 쓸모없는 풀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식 속에 모든 풀은 저마다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그러니 '잡초'란 단어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다. 내 글도 그렇다. 내 마음과 생각, 손끝을 통해 진실하게 쓴 글이라면 적어도 잡풀 같다 치부하진 않아야겠다. 대신 저마다 모양도, 크기도, 향기도 다른 글꽃으로 여기리라. 언젠가 내 안에서 핀 글꽃들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는 도구로 아름답게 묶일지도 모를 테니까.




나는 내가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날,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화병에 꽃을 꽂아두자던 다짐을 저 멀리 던져두고 살았다. 집 근처, 길 하나만 건너면 남편이 들린 꽃가게가 있는 것을. 꽃이 곁에 있으면 이렇게 인상이 저절로 펴지는 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아이들도 이제 엄마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챘다. 두 아이는 좀 즉흥적이지만 생일을 맞은 내게 약속했다. "아빠가 사준 꽃이 시들면 내가 또 꽃 사줄게."


조만간 두 번의 꽃을 더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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