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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Nov 24. 2022

학교 옆 휴게소

아이들 하교 시간.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엄마, 오늘은 친구들을 좀 많이 초대했어요!"


큰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그으래... 몇 명이나 데리고 왔길래...?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큰 아이 뒤로 남자아이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와! 양치질 중이던 나는 하얀 거품을 문 채 입으로는 인사를, 눈으로는 아이들 수를 세어보았다.



한 명, 두 명, 세 명이 빛의 속도로 운동화를 벗고 들어왔다. 뒤이어 네 번째, 다섯 번째 아이가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끝이 아니었다. '끼-잉' 소리를 내는 현관문을 여섯 번째 아이가 닫아주었다.



허허허.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나왔다. 하교 후 먼저 와있던 작은 아이까지. 거실은 순식간에 일곱 명의 남자아이들로 북적였다. 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오는 줄 알았더라면 미리 청소하지 말걸. 조금 전까지 허리를 굽혀가며 곱게 소파 패드 정리를 했던 나는 잠시 허망함을 느꼈다. 가만히 앉아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아이 친구들은 평소에도 우리 집에 자주 오는 편이다. 학교 정문에서 몇 발자국만 더 걸어오면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큰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가 학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다. 그 친구도 주 2~3회 정도 우리 집에서 놀다가 학원이나 방과 후 수업을 가곤 다. 그런데 오늘은 수가 좀 많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벗어젖힌 책가방과 겉옷, 마스크로 거실은 금세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거실, 베란다, 방 안에 진을 치고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 간식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내 손은 커다란 찜기로 향했고 냉장고에 쟁여두었던 단팥 호빵을 꺼냈다. 오늘따라 간식이 넉넉지 않다. 호빵은 한 줄 밖에 없었고, 아이들이 모두 나눠 먹으려면 반씩 쪼개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과일은 푸짐하게 먹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작은 아이 얼굴만 한 배를 깎아 큰 접시에 가득 담았다. 이렇게 바삐 움직이고 있는 사이, 갑자기 큰 아이가 내게 와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엄마, 치킨 시켜주세요! 애들이랑 오늘 치킨 파티하기로 했어요!"


그러자, 큰 아이 뒤에서 입을 맞춘 듯 다섯 명의 친구들은 "치킨! 치킨! 치킨!"을 구호처럼 외친다.


어라, 요 녀석들 봐라. 당당하네? 나는 잠시 기가 찼지만 이내 침착함을 유지하고는 아이들의 이후 스케줄을 묻기 시작했다.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얘들아, 치킨이 우리 집 식탁까지 오려면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데.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니?"



그러자, 한 명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시 40분까지 생명과학 수업 들어가야 해요."


"3시에 바둑학원 수업 있어요!"


"엄마가 30분만 놀고 영어 공부방 가라고 하셨어요."


"저는 얘(공부방 간다는 아이) 나갈 때 같이 나가야 해요! 학원 가거든요."



아이들은 내 예상대로 저마다 학교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 수업 일정이 있었다.  


   

"얘들아, 그러면 놀 시간이 얼마 없네? 오늘은 호빵이랑 과일 먹고... 치킨은 다음번에 더 오래 놀 수 있을 때 먹는 게 어때?"



그러자 아이들은 잠시 실망하는 표정을 내보였다. 하지만 이내 수긍하며 각자 놀이에 또 열중했다. 베란다에서 글러브를 끼고 서로 복싱을 하는 아이들, 남편의 운동 기구에 올라가 원숭이처럼 매달린 아이들, 휴대폰 게임을 하는 아이들, 이 시끄러운 와중에 혼자 책에 빠져든 아이까지. 김이 모락 거리는 호빵을 반으로 가르며 나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행여 다치거나 싸움이 일어날까 봐서다. 빨리 간식을 먹이고 놀이터에 내보내야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없는 틈새로 마음 한쪽이 조금 아렸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 집에서 치킨 한 마리 편하게 뜯어먹으며 놀려면 미리 스케줄을 조정하고 와야 하는구나.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자연스럽게 어릴 적 시절을 떠올린다. 큰 아이 나이 무렵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나도 매일같이 가던 친구네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큰 횡단보도를 두세 개는 건너야 갈 수 있었던 친구네. 많은 가족과 부대끼며 주택에 살던 나와 달리, 친구네는 부모님과 남동생까지 딱 네 식구였고 빌라에 살았다.



그 작은 집 안, 더더욱 작았던 친구의 방이 내겐 한동안 보금자리였다. 자기만의 방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 수다를 떨고, 숙제를 하고, TV 만화를 보며 나는 그 공간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늘어졌다. 하루 종일 달려온 목적지가 마치 그 방이었던 것처럼.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전화도, 휴대폰 알람도, 학원 일정도 없이 돌아갈 때를 알려준 것은 언제나 주홍빛 노을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반쪽짜리 호빵과 산더미 같은 배를 잘 먹어주었다. 잠시 뒤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말하더니, 아이들은 쏜살같이 집 안을 빠져나갔다. 휴, 다행이었다. 


우리 집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바쁜 아이들에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휴게소쯤 되려나.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다. 장거리 여행길에 중간중간 들리는 고속도로 휴게소. 아이 친구들에게 우리 집이 그런 휴식 공간으로 희미하게나마 기억되면 좋겠다. 대신 간식은 주인 마음대로, 언제나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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