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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Feb 09. 2022

고사리와 고사리, 시금치와 시금치

명절 연휴가 끝나고 몸이 아팠다. 달갑지 않은 열이 올랐다. 열은 하루 만에 떨쳐냈지만 속만큼은 편치 않았다. 꼭 임신 초기 때 달고 살던 입덧을 다시 하는 느낌이었다. 몸이 아프면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은 눈감고 모른 척할 수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아이들 밥은 거를 수가 없다. 지어 먹이든, 사서 먹이든. 다행스럽게도, 명절 이후라 냉장고 안은 밑반찬들이 가득했다. 크고 작은 반찬통들을 바라보며 비상 상비약이 따로 없구나 안도했다.


냉장고 두 번째 칸의 작고 둥근 반찬통들. 안이 보이지 않는 스텐 통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있는지 기억이 안 났다. 뚜껑을 열어 보았다. 고사리나물 볶음이 들어있다. 고사리나물 통 옆에 놓인 또 다른 반찬통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고사리 나물이 들어있다. 앞의 것은 어머니가 만드신 것이고 뒤의 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 시금치나물도 두 가지다. 역시 어머니가 만드신 것과 내가 만든 것이 나란히 나란히. 다른 점이라면 어머니 것은 다진 마늘이 들어가 있고 내 것은 고춧가루가 조금 더해졌다.


고사리와 고사리, 시금치와 시금치. 한 쌍씩 놓인 똑같은 반찬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설 명절에 시댁 가족들과 외식을 하기로 했었다. 시댁 가족이라고 해야 어머니와 아이들 고모, 딱 두 분이다. 우리 가족까지 모이면 총 여섯 명. 어머니는 작년부터 이제 명절에는 여행을 다니거나 밖에서 한 끼 사 먹으며 간단히 보내자 하셨다. 그래서 지난 추석에는 가족 여행을 갔다. 기대한 만큼 여행은 즐거웠고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여행을 미리 계획하지 못했다. 대신 밖에서 밥을 먹고, 주변에 바람 쐴 곳이 많은 우리 집에서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명절 연휴 전날, 예배를 마치고 교회 근처 과일 가게에 들렸다. 양가 어른들께 드릴 과일 선물을 보기 위해서였다. 과일을 주로 팔지만 평소에도 한쪽에는 채소가 놓여있던 가게였다. 명절 대목을 맞아 과일뿐만 아니라 갖가지 설음식 재료들이 놓여있었다. 과일 가게가 위치한 시장 거리 역시,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만약 외식을 결정하고 바로 식당 예약까지 했다면 보이지 않았을까. 커다란 소쿠리에 수북이 쌓여있던 고사리가 말이다. 그냥 모른 척할 수 있었을까. 일렬로 포를 떠 놓은 하얀 동태살을 보는데 무언가 그리워지는 마음을 말이다. 설이면 집에서 모두 모여 만두를 빚고, 이른 아침 방앗간에서 뽑은 가래떡을 맛보고, 커다란 팬에 동그랑땡을 부치던 기억들. 한동안 봉인되어 있던 추억이 시장 한복판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런 추억들만큼은 완제품으로 파는 가게가 없었다.


별안간, 거창한 명절 음식은 아니어도 집에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사리를 보고 고사리나물 볶음을 해보고 싶었다. 어릴 땐 한사코 거부했던 나물 반찬들. 특히 물컹한 고사리의 식감을 진저리 쳤던 나는 언제부터 그것을 맛있게 먹게 되었을까. 아마도 결혼 이후였을 것이다. 나는 고기보다 고사리에 손이 먼저 갔다. 하지만 콩나물 무침과는 차원이 달라 보이는 그것의 아우라에 만드는 일에는 엄두를 못 냈다. 이번 명절이 기회라면 기회였다. 쉽게 하려고 데친 고사리를 한 팩 샀다.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평소에도 해볼 만한 나물이라고 자신감이 생겼다. 맛은 있지만 색은 약한 고사리. 그것을 보완해 줄 초록의 시금치나물도 무쳤다. 설 연휴 전날 밤, 떡국 육수를 끓이고 뒷정리까지 끝내니 밤 11시가 되었다.


"어머니가 설마 뭐 만들어오시지 않겠지?"

"그럼. 먼저 밖에서 먹자고 하셨는데. 그냥 오실 거야."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무슨 이벤트라도 벌이는 것 마냥 마음이 들떴다. 다음 날, 집 근처에 도착하셨다는 어머니 전화를 받고 남편과 아이들이 마중을 나갔다. 나는 들어오실 시간에 맞춰 육수에 떡을 넣고, 갈비를 구웠다. 그때까지도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시는 어머니의 양손에는 설마 했던 보따리들이 바리바리 들려있었다. 어머니가 가져오신 짐 속에는 새로 담그신 물김치와 깍두기, 떡국 떡 한 보따리 그리고 고사리와 시금치 나물이 들어있었다! 아, 차라리 집에서 먹자고 미리 상의드렸더라면. 고사리나물과 시금치 나물이 1+1 되는 사태는 없었을 텐데.


그리하여 명절 연휴가 끝난 지금까지 냉장고 속에는 고사리와 고사리, 시금치와 시금치가 나란히 놓이게 된 것이다.


냉장고 아랫칸, 제일 큰 통에는 물김치가 놓여 있다. 몸살처럼 앓고 소화가 잘 안 되니 계속 찾게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물김치였다. 맑은 김치 국물 한 숟가락을 떠마시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이 천연 소화제를 조제하신 어머니는 미리 아셨을까. 당신의 며느리도 명절 후유증을 겪고 말 것을.


"명절 음식 준비할 생각하면... 아이고, 머리가 무겁다. 다음 명절에는 꼭 밖에서 먹자."

 

집에 오신 어머니는 내 주방을 보시자마자 이 말씀부터 하셨다. 전날부터 늦은 밤까지 부산을 떨었을 며느리가 한눈에 훤히 보이셨던 것이다.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하면서도 김치까지 담그신 어머니야말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탄식이 흘러나왔다. 네, 어머니. 다음 명절에는 외식도 한 번 해봐요. 


그러고 보면 나의 명절 음식 준비는 어쩌다 한 번,  이벤트성이 강하지만 어머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함없이 새 김치를 해주셨다. 그것을 2년 전 봄에 써놓은 글을 보고 새롭게 깨달았다. 당시 일까지 하셨던 어머니가 깍두기를 담가 주셨는데 그것이 내게는 너무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깍두기는 고춧가루뿐만 아니라 사과, 배까지 듬뿍 갈아 넣어 무와 국물까지 함께 떠먹어야 제 맛이다. 일명 '국물 깍두기'이다. 벌써 반쯤 먹은 새 깍두기가 물김치 통 옆에 놓여있다.  때나 지금이나 내겐 별한 어머니의 깍두기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담가 주신 깍두기를 먹는다. 한 입 크기로 썰어진 무 조각에 달콤하고 매콤한 사랑의 맛이 쏙 배어 있다. 주 6일 근무에 토요일 하루 휴무이신 어머니. 단 하루뿐인 휴일에 아들 며느리 손자를 위한 깍두기를 담그셨다. 그 수고로움과 고단함이 민낯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운 고춧가루와 잘 갈아진 과일로 예쁜 옷을 입었다. 사랑이란 것이 너무 커서 일일이 자르고 조각을 내야 한다면, 지금 내 입에 넣고 있는 어머니의 깍두기 모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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