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점심, 편하게 먹자고 라면을 끓이려던 마음을 돌려세운다. 지난 저녁에 먹고 남은 된장찌개를 마저 먹을까 하다가 웃픈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벌써 세끼 째 된장찌개만 먹는 거잖아. 차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신경 써주고 싶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때우는 밥 말고 내 안의 어딘가, 마음도 몸도 허기진 어린아이를 채워주고 돌봐줄 수 있는 밥. 그런 밥이 먹고 싶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어디 보자. 주부로 사는 동안 내내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냉장고부터 바라본다. 김치와 대파, 계란과 밥 한 공기, 샌드위치용 슬라이스 햄까지.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니 김치볶음밥 한 그릇 정도는 제대로 만들어먹을 수 있겠다. 주방 안은 고요했고 나는 혼자였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덩치는 크지만 순한 곰 같은 냉장고와 평범한 식재료들이 내 마음을 유순하게 해준다. 일순간 작은 도전쯤 하나 해내고픈 의욕이 솟아난다.
프라이팬 가운데에 차르르 기름을 두르고 먼저, 반숙 상태의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다. 김치볶음밥 위에는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야 완성된 느낌이 드니까. 다시 프라이팬을 깨끗이 비워내고 두 번째 기름을 둘렀다. 송송 썬 대파로 향을 내고 자른 김치와 햄, 밥 한 공기를 차례로 투하했다.
집안일을 할 땐 습관적으로 라디오나 음악을 틀곤 했다. 주방에 서서 음식을 만들거나 식사 준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휴대폰 메시지를 들여다보거나 유튜브 영상을 동시에 쳐다보곤 했다. 어떤 소리든 밖에서 안으로 모아들이고 외부의 누군가와 소통하고 맞춰주느라 애썼다. 그러느라 나는 그저 흘려보낼 시간, 홀로 무료해질 시간, 내 안의 내가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잠잠히 듣는 시간이 부족한 채였다.
라디오와 음악을, 휴대폰과 유튜브 영상을 꺼두니 작게 웅웅대는 환풍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익숙한 소리를 차단하니 새로운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불 앞에 서서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는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김치볶음밥의 마무리 단계. 밑반찬 만들 때 쓰는 나무 주걱과 밥을 퍼올릴 때 쓰는 흰 주걱을 양손에 쥐었다. 휘적휘적, 재료들을 뒤섞을수록 신이 났다. 주걱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또닥또닥, 누군가 내 등을 두드리는 듯했다.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아이들 종업식을 하루 앞둔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아이들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 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주어졌던 자유 시간과 일상의 루틴이 적어도 두 달간은 희미해질지 모른다. 매일의 끼니를 이어갈 일은 또 얼마나 아득한가. 하지만 엄마이자 나 자신으로 살아갈 날들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다시 출발선에 서는 마음이다. 매일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 그 밖의 감정을 촘촘히 엮어 시간의 무늬를 만드는 일. 이런 일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어쩌면 이런 종류의 일이지 모른다.
좋아하는 그릇에 김치볶음밥을 소복이 담았다. 곁에는 몇 가지 반찬을 꺼내놓아 입맛을 돋운다. 김장 김치와 미리 담가 뒀던 양파 장아찌를 바라본다. 김치는 친정 엄마, 양파는 시어머니가 챙겨주신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돌봄 속에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의식하고 사는 한, 삶에는 내내 감사가 떠나지 않을텐데.
지금은 나를 충전하는 시간. 지친 몸과 마음에는 역시 밥심만 한 게 없다. 평범한 김치볶음밥이 김치 돌돔밥이 된, 포근한 어느 겨울 날의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