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후는 자주 북적이고 소란하다. 두 아이의 학교가 지척인 탓에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내 일상의 풍경은 어떠했나. 가만 떠올려보니 역시 아이들로 한가득인 거실 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우르르 몰려왔다가, 저마다 학원 갈 시간이 되면 놀던 자리 툴툴 털고 일어서는 아이들.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집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 시간과 밖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이 늘 비슷하다. 오후 스케줄을 소화하기 전,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는 한두 시간이 채 안된다. 낮동안 주어진, 아이들의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그러니 이 시간만큼은 아이들에게 두말 않고 거실을 내어준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아이들 중에서 이제는 고정 멤버가 된 한 아이가 있다. Y는 길 건너 다른 동에 사는 아이다. 큰 아이와 태권도, 수영을 함께 배운다. 작은 아이와는 방과 후 수업 하나를 같이 듣는다. 우리 아이들과 동선이 자주 겹치는 Y는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집에 규칙적으로 오고 있다. 처음에 Y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가 무척 인사를 잘한다는 사실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면, "안녕하세요!" 하며 넙죽 인사부터 하는 아이가 볼 때마다 반갑다. 돌아갈 때도 "안녕히 계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아이의 밝고 구김살 없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이 한 마디가 절로 흘러나온다. 응! 다음에 또 와!
아이들 수영 수업이 있는 날, 근처에 사는 Y도 차에 함께 태우고 데려다주곤 한다. 뒷좌석에 쪼르르 앉은 아이들이 벨트를 다 매면 나도 액셀을 밟기 시작한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분주하게 이동하는 동안 어느 사이 운전석 옆에 간식이 올려져 있다. 조그만 과자나 곰 젤리, 통통하고 동그란 초코파이 같은.
"이모, 이거요!"
"이게 뭐야?"
"집에서 가져왔어요. 아빠 간식인데 이모 주려고 가져왔어요!"
"아빠 간식인데 이모 줘도 돼?"
"네, 아빠는 다이어트 좀 해야 돼서요."
하하 웃으며 아이가 건넨 달콤하고 귀여운 간식을 입에 넣는다. 그런 순간에는 신호 대기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짧아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Y의 수영 가방이 왜 그렇게 퉁퉁해 보였는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아이는 친구 것뿐만 아니라 친구 엄마인 내 것까지 여러 간식을 챙겨 오곤 했다. 어른에게 간식을 주는 아이라니. Y는 이상하리만치 신비한 아이였다.
작은 아이의 생일 즈음이었다. 생일에 누굴 초대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뜸 아이의 입에서는 Y형아 이름이 튀어나왔다. 반 친구들 이름부터 먼저 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일날. 작은 아이는 바람대로 Y형아를 초대했다. 파티가 시작되고, 함께 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의 촛불까지 껐다.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이 작은 아이에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그런데 아뿔싸, Y만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아이는 파티 소식을 당일에나 들은 까닭에 그냥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냥 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친구의 생일도 아니고, 친구의 동생 생일에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혹시 Y가 민망해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Y가 작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승호야, 내가 선물은 미리 준비 못했어. 그렇지만 줄 게 있어!"
"...?"
"바로 사랑하는 마음!"
그러면서 Y는 작은 아이를 뼈가 으스러져라 힘껏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아이들은 그게 뭐냐고 킬킬대며 웃었다. 급작스런 사랑 고백을 받은 작은 아이는 쑥스러운 듯 볼이 발개져 웃었고, 나는 Y의 따뜻한 마음과 재치에 감탄하며 웃었다. 사랑하는 마음. Y의 입에서 나온 이 여섯 글자가 케이크 위의 초처럼 내 마음에도 꽂혔다. 아이의 말은 밝고, 빛나며, 우리가 모여있던 공간을 한 번에 꽉 채울 만큼 밀도 있는 말이었다.
가만 보니 Y는 어린 기버(Giver)였다. 간식과 인사와 사랑스러운 말들을 주는 아이. 그리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아이였다. 무엇이든 '주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주는 어른'으로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껍데기만 주지 말고, 마음 상자 안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서. 그렇게 밀도를 더한 사랑이 새해에, 일상에 가득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