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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트리를 바라보며

by 혜일

11월과 12월 사이, 거실 벽 앞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놓는다. 불 켜진 트리가 좋아서 매 년 어김없이 꺼낸다. 트리의 가지가 날개처럼 활짝 펴지는 기간은 일 년 중 두 달 남짓. 나머지 열 달, 트리는 베란다 창고 안에서 가지가 접힌 채 잠을 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와 트리를 꺼낼 때면 나는 긴 잠을 자던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것만 같다.



트리를 꺼내 놓을 때마다 나무와 함께 잠들어있던 기억들도 하나 둘 깨어난다. 벌써 몇 년 전 기억 하나. 작은 집의 불 꺼진 거실. 꼬마 아이 둘이 작은 트리 앞에 앉아있다. 선물 받은 트리였다. 동그란 볼 장식이 일체 된 트리에 이렇다 할 멋은 없었다. 하지만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다섯 살, 세 살 된 두 아이는 신기한 듯 불 켜진 트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조그만 불빛과 어린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어디선가 맑은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꿈쩍 않고 트리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노란빛이 곱게 물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후 큰 마음먹고 트리를 들였다. 길고 뾰족한 나뭇잎 일부가 흰색으로 덧칠해져 있는 트리다. 눈 쌓인 전나무 가지를 흉내 낸 것인데 결론적으로 잘못 골랐다. 트리를 꺼내 가지를 펼칠 때마다 후드득 흰 눈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가루 날림이 심했다. 트리 손질을 할 때마다 바닥 청소도 함께 해야 한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지만 그렇다고 트리 놓는 일을 그만두진 않는다.



이번 성탄절에는 독감을 앓느라 꼼짝없이 집 안에 머물렀다. 온몸이 쑤시고 살 끝에 찬기가 닿으면 절로 몸서리쳐졌다. 몸이 아프니 육체의 한계를 실감한다. 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누워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반쯤 열린 방문 밖으로 불 켜진 트리가 보였다. 몸을 일으켜 문을 활짝 열었다. 앞날의 희망을 써 내려간 성탄카드를 펼치듯. 트리 불빛이 너울대며 어두운 방 안을 비췄다. 몸이 아픈 것과 별개로 트리 불빛은 내게 기쁨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 방 밖에 놓인 트리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런 순간을 '빛멍한다'고 해야 하나. 나무를 감싼 자잘한 불빛들이 소리도 없이 마음을 위로했다.



그 옛날, 동방의 박사들이 큰 별을 따라 찾아간 곳에서 아기 예수를 경배했다는 장면이 떠올랐다. 캄캄한 밤, 그들은 오직 별빛에 의지해 먼 길을 떠났다. 자신들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을 들고서. 성경은 모든 걸 설명해주지 않지만 상상하건대 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간절함이 가득했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별빛 하나에 의지해 그렇게 무모하고도 험난한 여정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별은 아기 예수가 머물고 있는 집 위에 멈추었고 그들은 무사히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을 마침내 찾은 것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나무를 감싸 안은 불빛이 총총 빛난다. 천천히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며 빛은 인조 트리에도 숨을 불어넣는다. 나무는 빛을 덧입고 생명체처럼 거대한 숨을 내쉰다. 빛에 휘감긴 트리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성탄에 임한 사랑도 가장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온 세상 구석구석 사랑의 빛이 충만하길. 그 빛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하나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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