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핀을 맞춰라

빌리 조엘 'Just the Way You Are'(1977)

by 혜일

공휴일을 맞아 남편, 아이들과 볼링장에 갔다. 우리 부부가 이전부터 볼링에 취미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여행지 숙소에 있던 볼링장을 들렸다가, 모두의 가슴속에 볼링에 대한 불씨가 타오르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이제 열 살, 여덟 살 된 아이들이 그 무거운 볼링공을 그토록 가뿐하게 드는 것을 보고 놀랐다. 두 아이 모두 태어나서 처음 볼링을 쳤던 터라, 대부분의 공은 고랑에 빠지기 일쑤였다. 몸이 유독 가벼운 작은 아이는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온 몸으로 볼링을 즐겼다. 시작부터 폼이 예사롭지 않았던 남편이 실은 중학교 특별 활동으로 볼링을 쳤던 것은 이제 와서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을 발견한 것이 반가웠다. 찾아보니 동네 가까운 곳에도 꽤 넓은 볼링장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모두 볼링장용 신발로 갈아 신고 몸을 가볍게 풀었다. 남편은 큰 아이와, 나는 작은 아이와 대결했다. 어차피 나의 볼링 수준은 이제 갓 공을 잡아 본 아이들과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친구들과 볼링장에 몇 번 가보고는 그동안 발걸음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 두울, 셋-. 볼링공을 뒤로 뺐다가 앞으로 굴리듯 던졌다. 폼은 그럴듯하게 잡아보지만 공은 금세 데굴데굴 굴러 고랑으로 들어가거나 가장자리 핀 몇 개만 쓰러뜨릴 뿐이었다. 게임은 즐기는 것이 목표이기에 공이 고랑에 들어가든 핀을 맞추든 상관없이 우리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맘껏 박수를 쳐 주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끝까지 스트라이크 한 번 못 치고 끝내는 건 시간도, 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핀을 맞춰라. 대학생 시절, 나보다 십 년 이상을 먼저 살아왔던 인생 멘토들로부터 이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 젊고 아름다운 날들을 낭비 없이 보내기 위해서는 볼링에서 헤드핀을 바라보고 공을 굴리듯 인생에서 중요한 한두 가지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러나 가슴속 어딘가 새겨져 있던 한 줄 문구가 실제 볼링장에 오니 선명히 되살아났다.



출처 - pixabay



열 개의 볼링 핀 중에서 가장 맨 앞자리, 가운데에 위치한 핀이 바로 헤드핀이다. 스트라이크를 치기 위해서는 이 헤드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핀을 맞추면 나머지 아홉 개의 핀 역시 쓰러뜨릴 수 있다고. 실제 볼링 선수들이 진짜로 이런 전략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1번 핀 뒤에 위치한 5번 핀인 '킹핀'을 맞춰야 한다고도 한다.



볼링에 문외한인 나는 어쨌든 가슴에 새겨진 인생 문구를 꺼내어 적용해 보기로 했다. 후우-. 마음을 집중하고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실제 헤드핀을 바라보며 공을 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이 가운데로만 쭈우욱 선을 따라가듯 굴러가더니 마침내 스트라이크를 쳤다! 짜릿했다. 젊은 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그 말이 맞았다. 인생은 헤드핀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가정의 헤드핀은?



솔로였던 과거에는 나 혼자만의 헤드핀을 찾는 일에 열을 올렸다. 내게 헤드핀은 사는 날 동안 이루어야 할 꿈이었고 목적이었다. 그것을 위해 아침을 시작했고 밤을 맞이했다. 물론 계획대로,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결혼을 하고 올해 정확히 십 년이 되었다. 십 년이란 시간의 한 바퀴는 생각보다 금세 돌아갔다. 그동안 두 아이가 연달아 태어나며 대부분 육아의 시간을 보냈다.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진 엄마의 시간표를 살아내느라 지나간 시간들은 돌아보면 숨 가쁘다.



뒤늦게나마 우리 가정의 헤드핀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나는 단연코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누구나 정한 때가 지나면 다녔던 학교를 졸업한다. 하지만 가정이라는 인생 학교는 일평생 졸업이 없다. 이 학교에서 배우는 특별 과목은 바로 사랑이다. 날마다 이 사랑을 완성해가기 위해 함께 울고 웃는 곳. 그곳이 가정이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작은 아이가 딱 하루, 학교에 다녀오더니 가기 싫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전에 다녔던 유치원도 적응하기까지 몇 달이 걸린 아이였다. 그 때보다 더 자랐으니 적응이 수월하겠지하면서도 내심 마음이 초조해졌다. 학교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아이가 기대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저녁 내내 고민하다가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 옆자리에 누워 학교 생활에 대해 해 줄 말을 마음속으로 고르고 고르던 중이었다. 그런데 잠자코 있던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있잖아, 엄마. 학교는 배우는 곳 이래. 그래서 틀려도 되는 곳이라는데?"

"우와. 그런 말을 누가 해주셨어?"

"방송에서 교장 선생님이!"

"우리 승호, 교장 선생님 말씀 잘 들었네?"


"... 그런데 나는 그래도 공부가 힘들 것 같은데."

"어떤 사람도 공부만 계속할 수는 없어. 학교에서도 35분 수업하면 쉬는 시간 5분이 꼭 있거든."



아이의 말을 들으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다. 가정이 인생 학교라면, 우리는 모두 학생이었다. 부모든 자식이든 정해진 위치와 역할을 떠나, 공통적으로 배우는 사람들인 것이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 팀으로 만난 사람들이 가족이었다. 그러니 본래 사랑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전제였다. 때론 사랑의 '사'자도 모르는, 오답투성이처럼 말하고 행동할지라도 서로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사랑이라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치고 피곤해지기 전에 영리하게 쉴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 뒤늦은 깨달음들이 아이를 재우며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완벽히 사랑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릴 것. 사는 내내 겸손히 사랑을 배울 것. 때로 고랑에 빠진 볼링공마냥 사랑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다시, 헤드핀을 바라보고 공을 굴릴 것. 어느새 잠이 든,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을 만지며 그런 다짐들을 천천히 되뇌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M6_ckLCVI

빌리 조엘 'Just the Way You Are'(1977년 5집 The Stranger)

미국의 팝 가수 빌리 조엘은 어릴 때 키가 작고 학교 공부도 잘 못해서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런 조엘에게 용기를 잃지 않도록 늘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그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된 Just the Way You Are 은 이와 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노래라고.


'당신이 갖고 있는 모습 그대로'란 뜻의 Just the Way You Are. 노랫말은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없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좋다는 내용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마지막 가사가 아름답다. 1979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과 레코드상을 차지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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