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스위치

스티비 원더 'Overjoyed'(1985)

by 혜일

겨울은 언제부터 '삼한사미'가 되었을까.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라는 날씨를 핑계로 아이들과의 바깥 활동에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 조금 분주한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무심코 날씨 어플을 보니 한낮의 기온이 영상 7도. 미세먼지 수치도 '보통'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는 흔치 않은, 따뜻하고 맑은 겨울 날씨였다. 기대하지 않던 선물을 갑자기 건네받은 느낌이랄까. 순간 피곤함에 가라앉아있던 마음이 잘 구워진 모닝빵처럼 부풀어올랐다.


작은 아이가 하원하자 마자, 집 근처 공원에 나갔다. 큰 아이는 자전거를, 작은 아이는 킥보드를 탔고 나는 캐치볼과 물병을 들고 걸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스타일대로 탈 것을 움직이며 나를 앞질러 갔다. 아이들의 뒷모습만 봐도 이제는 다음 컷이 대충 그려진다.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하는 큰 아이는 얼마 안가서 자전거를 뒤로 돌리며 휘이, 휘이 길가에서 원을 그린다. 엄마와 동생이 잘 따라오는지 살피는 것이다. 평소에 드러내고 뽐내길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한쪽 발로 땅을 탕, 탕 구르며 빙상 선수처럼 킥보드 위에서 폼을 잡는다. 금세 넘어질 것 같은 모습에 나는 뒤에서 "천천히 가! 조심해!!"를 외친다. 역시나 킥보드 속도가 너무 빨라져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넘어지기를 두세 번. 하지만 작은 아이는 안 넘어진 척 길가에서 로보캅 연기를 하며 서서히 일어난다. 그 허세 가득한 동작에 나는 실소를 터뜨린다.


포근한 날씨라 그런지 해질 무렵임에도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겨울에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산책 코스를 뛰는 남자, 강아지와 함께 누런 잔디밭 위를 뛰던 여자, 잡기 놀이를 하는 듯 도망치는 아빠와 뒤쫓는 아이. 머리 위로는 기러기들마저 V자로 떼를 지어 하늘 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 템포에 맞추어 걷거나 멈추기만 반복하던 나는 속도감 넘치는 공원의 활기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날은 어둑해졌지만 사람들은 훤히 잘 보였다. 저마다 스위치 하나씩을 켜고 달리는 것처럼 그들이 돋보였다.


'행복'이라는 스위치. 이 스위치는 생각보다 멀리 있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행복에도 모양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작은 스위치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집 안 구석구석에 내장된 각종 스위치들. 전등이나 스탠드, 보일러 같은 것들을 켜는 스위치는 작지만 강력한 도구들이다. 매일 머무는 집 안에서 스위치를 켜는 일은 익숙하다. 반면에 어쩌다 한 번씩 가는 여행지 펜션이나 호텔에서는 그 위치를 잘 몰라 종종 헤매거나 서성인다.


나 자신을 알아갈수록 내 안의 행복 스위치 갯수도 늘어나는 것 같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문장이 들어있는 책,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에서는 소소한 기쁨일지라도 그것을 여러 번 느끼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순간들을 스스로 자주 발견하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 스위치를 많이 켜둔 사람이리라.


공원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덩달아 뛰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넓은 잔디밭으로 이동했다. 나와 큰 아이는 캐치볼을 하고 작은 아이가 심판을 봐주었다. 그러고 보니 사두기만 했지, 날이 따뜻할 때도 캐치볼은 별로 한 적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아 공을 자주 놓쳤다. 데굴데굴 공이 굴러갈 때마다 뛰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깔깔거렸다. 엄마와의 캐치볼이 재밌는 건지, 뒤뚱거리며 뛰는 내 모습이 웃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오후 내내 터지지 않던 웃음보가 한꺼번에 터진 모양이었다. 매일 보는 엄마인데도 뭐가 그리 좋을까.


내가 익숙한 아이들은 내 안의 행복 스위치를 잘도 찾아 눌러준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많이 웃었다. 웃을 때마다 서늘한 저녁 공기를 들이마셨다.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탁한 감정들이 기쁨으로 환기되었다. 깜깜해지도록 공원에 머물렀다. 돌아가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도 조급해지지 않았다. 바깥 놀이 후에는 뭐든 맛있어지는,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cIhd5Yc5TCY

스티비 원더 'Overjoyed'(1985)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팝 음악계의 거장이 된 스티비 원더. 그의 앨범 In Square Circle 수록곡, 'Overjoyed'는 제목 그대로 기쁨이 흘러넘친다.


크게 슬플 일도, 우울할 일도 없지만 한없이 무기력함을 느끼는 어떤 날들. 내 안의 행복 스위치가 고장 난 것 같은 그런 날에 꺼내 듣고 싶은 곡이다. 공원 나들이 BGM으로도 이만큼 어울리는 곡이 또 있을까. 멜로디나 노랫말도 아름답지만 중간중간 들리는 새 소리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도 가만히 귀 기울이게 한다. (1985년. 무려 내가 세 살 때 발표된 곡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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