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의 방학 첫날, 늦잠을 잘 만큼 자고 일어난 아이를 영화관에 데려갔다. 마침 애니메이션 영화 '씽2게더'의 개봉일이었다. 생각해보니 코로나 이후에 아이와 영화관에 처음 간 것이었다. 예전엔 익숙했을 극장의 공기가 새삼스러웠다. 거리두기로 좌석은 절반 정도 비워져 있었고 나처럼 또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 아빠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아이와 나란히 자리에 앉는 순간 잃어버렸던 설레임이 되살아났다. 영화 시작 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광고에 아이는 "엄마, 영화는 언제 시작해?"하고 물어댔지만 나는 광고마저 재밌었다.
'씽2게더'는 개봉 전부터 BTS나 U2, 콜드플레이,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소문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귀를 사로잡는 팝 스타들의 노래가 지루할 틈 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 화려하고도 막강한 OST 곡들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올드팝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극장 주인이자 공연 기획자로 나오는 코알라, 버스터 문은 레드 쇼어 시티에서 열린다는 세계 최고의 쇼 오디션에 설 기회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자신이 선보인 극장 공연이 지방에선 통할지 모르지만 별 볼일 없다는 혹평을 받은 후, 그는 크게 낙담한다. 이 때 좌절한 코알라 버스터의 얼굴 뒤로 엘튼 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When are you gonna come down~ When are you going to land~~'
'Goodbye Yellow Brick Road'. '안녕, 노란 벽돌 길이여'라는 제목의 이 곡은 엘튼 존이 작곡하고 그의 50년 지기, 작사가 버니 토핀이 노랫말을 썼다. 토핀은 엘튼 존과 함께 음악적으로 성공한 후 오히려 슬럼프를 겪는다. 그는 화려하지만 허무한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을 이 노래에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와 함께 엘튼 존의 오래된 노래를 듣다 보니 엉뚱하게도 나의 셋째 이모, 경숙이 이모가 생각났다.
나를 처음 영화관에 데려가 준 사람이 바로 경숙이 이모였다.
결혼한 엄마는 네 아이를 손수 키우고도 아이들 손 잡고 내키는 대로 돌아다닐 자유를 쉽사리 얻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집에 차가 없었고, 때 되면 시부모와 아이들 끼니를 챙겨야 하는 것이 엄마의 일상이었다. 당시 이모는 서울역 근처에 있는 건축 설계 사무실을 다녔다. 그녀는 건축 투시도를 손으로 그리는 일을 했다. 퇴근 후에 이모는 서울역부터 경의선 기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자주 놀러 오곤 했다. 막내 동생이 아기였을 때, 언니와 나 그리고 여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이모는 야근이 잦은 일을 하면서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언니부터 나, 여동생까지 셋이나 되는 조카들 손을 이끌고 문구점이나 화방, 햄버거 가게 같은 곳을 데려갔다.
공책을 사도 세 개, 붓을 사도 세 개, 햄버거를 사도 세 개. 고만고만한 여자 조카 셋을 이모는 뭐든 각자 하나씩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20대 초반, 이모의 월급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작고 귀여웠을 것이다. 그 사정을 몰랐던 나는 엄마, 아빠 대신 늘 선물을 가득히 안겨주는 이모를 잘 따르면서도 또 그것이 당연한 듯 굴었다.
어느 날, 이모는 언니와 나, 여동생을 함께 데리고 어두컴컴한 곳으로 데려갔다. 알고 보니 그곳은 영화관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나는 그렇게 극장을 처음 가 보았다.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었다. 지금처럼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긴 어려웠던 그때, 예고도 없이 마주한 첫 극장 영화는 보는 내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라이온 킹의 그 유명한 주제곡들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Circle Of Life, Hakuna Matata 등을 한동안 하루 종일 들었다. 듣는 것으로 모자라 당시 유행하던 피아노 악보를 사서 연주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 모든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은 바로 엘튼 존이었으니. 그를 초등학교 때부터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모는 나를 영화관뿐만 아니라 이전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놀이 공원과 야구장에 데려가 준 사람이기도 하다.
강원도 횡성. 마당 한 편 외양간에는 언제나 황소가 풀을 먹고 있던 곳. 이 고향 집에서 1970년 대 후반, 처음 서울로 상경한 사람은 나의 엄마였다. 첫째였던 엄마 아래로 네 명의 이모와 두 명의 삼촌 역시 줄줄이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언니, 동생과 기차를 타고 멀미를 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가고 싶어 했던 집은 그런 이모, 삼촌들의 서울 집이었다.
청량리 이모네 집은 역 근처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다세대 주택 골목에 있었다. 매번 가도 길이 비슷해 나 혼자서는 절대 못 찾을 집이라고 생각했다. 골목 끝 2층 집, 반 지하가 이모네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부엌이 보이고 방 두 개와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집이었다. 그곳에서 이모들 네 명과 삼촌 두 명이 함께 살았다. 가끔 한 번이었지만, 거기에 우리 세 자매까지 끼어 하룻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때도 이모 넷은 나보다 키가 작았지만 삼촌들은 달랐다. 유독 키와 덩치가 컸던 둘째 삼촌의 머리가 낮은 천장에 닿을 것만 같아 나는 늘 아슬아슬했다. 그렇지만 아침이면 그 좁은 집에서 이모는 내 머리를 빗겨주었고, 동그란 밥상에 밥과 찌개를 차려 주었으며, 우리 모두는 야심 차게 일정을 세우고 드림랜드와 잠실 야구 경기장을 향해 즐겁게 나섰다.
내가 조금 더 커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 경숙이 이모는 또 갈 데가 있다고 했다. 이모, 어디 가? 응, 저기 가구 단지 좀 가보자. 버스를 타고 눈길을 달린 뒤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가구 단지였다. 지금의 내게 누군가 가구 단지 구경을 요청했다면 얼씨구나 하고 따라갔겠지만, 중학생이 무슨 가구에 관심이 있었을까. 나는 가구점 한쪽에 서서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빨고 있었다. 이모가 왜 가구 단지에 온지도 관심 갖지 않은 채 말이다. 장롱, 침대, 식탁 등을 꼼꼼하고도 유심히 살펴보던 이모의 행동이 어서 멈추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얼마 뒤 엄마는 내게 이모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이모는 한참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틈을 내어 우리 집에 들렀는데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리곤 이모에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혜일아, 이모 결혼해."
이모는 내 방에 들어와서는 내게 먼저 말을 붙였다.
"나도 알아. 들었어, 이모."
세상 못된 나는 이렇게 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나의 마음은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있었다. 이모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겠구나. 혜일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내 이름을 꾹꾹 눌러써 주었던 성탄 카드도 더 이상 받지 못하겠구나. 나는 직감했다.
그리고 이모의 결혼식을 가지 않았다.
이모는 정말 결혼한 이후 한 번도 우리 집에 오지 못했다. 사실, 그게 당연했다. 시어른들을 모시고 살며 늘 바쁜 언니 집에 동생이 그리 자주 올 수 있었던 일 자체가 드문 일이겠지. 조카들 사랑이 유별났던, 우리 경숙이 이모니까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모는 외가 식구들에게 지금도 '경숙이'대신 '정숙이'라고 불리는데 나는 그것이 이모가 유독 정이 많고 착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으론 이모의 도시 생활은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형제들이 서울에 있어도 고향을 떠나 스스로 일자리를 찾고 타향에 적응하며 사는 일은 막막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모는 그 외로움과 팍팍함을 어린 조카들을 마주하며 잠시나마 달랬을지 모르겠다. 청량리 뒷골목, 이모의 반지하 집은 내겐 작은 외갓집이었다.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지만 횡성의 진짜 외갓집은 길이 멀어 자주 가지 못했으니까. 내겐 그 집이 외갓집 대신이었다. 하지만 정 많고 착했던 이모도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가끔씩 그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노래한 엘튼 존과 버니 토핀처럼 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사는 이모는 늘 바쁘다. 나는 오히려 업무가 많은 이모보다 이모부와 연락을 더 자주 한다. 그는 아내가 자신보다 연봉이 더 높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나는 그 말이 진심으로 듣기 좋았다. 성실하게 일하고 누군가에게 베풀기 좋아했던, 우리 경숙이 이모니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잘 사는 모습이 나는 좋다. 아무튼 나는 이모에게 진 빚이 많다. 사랑의 빚은 아무리 계산해도 정확히 갚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