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의 가을이면
수십 년을 겪는 계절의 변화임에도 왜 매번 계절이 돌아오면 새롭고 경이로운 것일까. 지독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뒤로 물러나면서 코끝에 스치는 공기의 향기부터 달라졌다. 여름이 외적인 시간이라면 10월은 내적인 계절인 것 같다. 다만 짧다는 것, 금방 지나가버리는 가을을 만끽하려는 듯 그 어느 달보다 유난히 마음을 나누는 약속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느 해 드라이브를 하다 만난 ‘허난설헌 묘’ 라는 표지. 경기도 광주 분원이라는 곳이었다. 강릉에서 그녀의 기념관을 봤는데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대하니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10월의 가을이면 그녀가 한 번씩 떠오르고 더불어 그녀의 시가 유독 사무친다.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몇 년 전 드라마 속 그녀가 읊조렸던 시구였다. 그녀는 살아생전 세 가지 한을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 죄라면 죄, 만약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요절하기까지 불행한 결혼생활, 게다가 두 아이를 잃은 그녀는 삶의 끈을 놓을 만큼 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썼던 글이 방 한 칸 분량이었다고 하니, 규방에 갇혀 시대와 여자로서의 한계 등, 고뇌어린 심정을 글 속에 쏟아 부었을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 때문인지 10월이면 그녀의 시가 저릿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녀의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눈빛의 초상화가 눈에 어른거린다. 어쩌면 드라마 속 허난설헌은 인생의 여름만 살았던 그녀가 그 족자를 뚫고 나와 환생한 것은 아닐까.
이제 조금 있으면 거리에는 시리고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들이 뒹굴 것이다. 10월의 찬란함도 반드시 지난다는 것. 뜨거운 햇살과 반짝이는 강가의 물결소리 등 짧은 10월의 가을을 더 늦기 전에 만끽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