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에 서툴다
겨울이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이다.
나뭇잎들은 대부분 떨어져 나무들은 앙상했다. 그럼에도 모처럼 햇살이 좋아 친구들과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함께 걷던 A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와우, 와우, 어쩜 저렇게도 예쁠까.” 감탄에 감탄을 보태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남은 것들마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A는 지난 한 해 자격증 공부를 하느라
두문불출했던 친구다. 고단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늘 눈에 보이는 것에
감탄하고, 느낀 것을 크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잎이 다 떨어진 저 나무가 예쁘다고?'
시큰둥하고 관심 없다는 듯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옆에 있던 B는, 가족을 돌보는 일에
몰두하느라 늘 여유가 없다.
성향 자체도 무심한 편이라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되물었다.
“단풍나무가 있다고? 어디, 어디?”
바로 눈앞에 있는 나무조차 보지 못한
그녀였다. 아니,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볼 틈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C는 책을 좋아하고 그 속에 담긴
스토리와 의미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우리 중 막내라 그런지 말끝마다 생기가
묻어난다.
“단풍나무 하면요, 제가 책에서 읽었는데요...”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조잘조잘 재미있게 풀어놓기 바쁘다. 그녀의 긴 이야기는 지루하기보다 일상이 복잡했던 마음을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묘한 힘이 있다.
다시 A의 반응이 이어진다.
“와, 와! 어머, 어머 어쩜 저렇게 예쁠 수가. 세상에, 세상에.”
그녀는 옆에 있는 우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 순간의 감정을 마음껏 쏟아낸다.
가끔 길을 걷다 통통한 귀여운 아기나
풍경을 마주할 때면, 그녀의 이런 반응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같은 나무를 보고도 저마다 다르게 말하는 우리가,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표현이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단순히 성향이나 캐릭터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속으로만
삼키고 있는 건 아닐까. 삼키느라 표현에 인색해진 것일까. 머리로는 이미 수만 가지 표현을 끝냈는데, 입밖으로는 미처 나오지 못한 채 늘 늦다. 그 때문에 얼굴은 자주 굳어 있다.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자주 걸린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름 반응한다고 했는데 시원찮았나보다.
아들이 말한다.
“엄마, 지금 내 말에 왜 반응이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