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나를 마주하는 시간
식탁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끝나가는 이 무렵에는 종일 바깥으로 향했던 마음이
서서히 나에게로 돌아온다.
삶이 수많은 순간으로 이어져 있다 해도,
이 저녁만큼은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이 불현듯 멈추고,
나는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섬처럼 고요히 존재한다.
과거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또렷하고, 살아 있다는 감각이 분명하다.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 밤이 찾아왔다.
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도착한다.
밤을 밀어낼 힘을 가진 존재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밤이 없다면 우리는 어제의 피곤한 기억을 고스란히 안은 채
오늘을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밤은 천연 망각제처럼 하루를 덮지만, 모든 것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지워지지 못한 생각들은 남아 밤을 떠돌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고, 놓으려 해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 것이
밤의 속성이다.
한때는 밤이 오기를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의 문자 한 통을 기다리며 밤을 건너던 시간.
단 한 단어에도 마음이 설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포도주처럼,
마실수록 취해버리는 그리움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밤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무엇이든 애써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오는 것은 담담히 받고, 오지 않는 것은 비워두는 법을 조금은 배웠다.
다만 가끔은 그때 그 마음 졸이던 기다림의 '대상' 자체가 그리워질 뿐이다.
그 치열했던 기다림의 밤을 지나
나는 조금씩 나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요즘 내가 느끼는 휴식은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
집 현관에 들어서며 맡는 익숙한 냄새,
몸에 걸친 옷을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낮 동안 잔뜩 경직되었던 마음과 몸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깨어나, 벌써 아침인가 싶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 짧은 틈마저도 휴식이 되는 순간이다.
한때 퇴근길이 유독 헛헛했던 이유는,
‘일과 일상의 균형’을 놓치고 있었던 탓이었다.
휴식은 멈추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에 가깝다.
지인들과 유쾌한 수다를 떨며 감정을 환기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 비로소 쉬고 있다는 감각을 알게 된다.
깊어가는 저녁, 밤의 좌표는 오늘도 정확히 찾아온다.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시간으로서의 밤이다.
저녁이 와서 밤이 되듯, 삶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