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사람보다 오래 머문다
얼마 전,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향이 짙게 남아 있었다. 사람은 이미 떠났는데 향기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향수를 거의 뿌리지 않는 나로서는 반갑다기보다 숨이 막혔다. 취향을 타는 향이라면, 본인만이 은은히 느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문득 내가 머물던 자리에도 이렇게 나의 흔적이 남는 것일까 생각했다. 밀폐된 공간에 남은 과한 향은 때로 타인을 향한 작은 배려의 부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향수를 멀리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향수를 좋아한다. 해외 출장을 갈 때면 공항 면세점 향수 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한때는 장미향에 매혹되어 종류별 미니어처까지 모았다. 다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좀처럼 뿌리지 않는다.
나만의 시그니처 향을 꿈꾸면서도 선뜻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이유는, 향기가 결국 ‘기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후각은 기억과 가장 가까운 감각이라고 한다.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향기로 오래전 감정이 되살아나고, 여행지의 공기와 뒤섞인 냄새가 한 장면을 통째로 불러낸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마들렌처럼, 향기는 시간을 거슬러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린다.
아이가 내게 “엄마 냄새는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 또한 훗날 나의 향을 기억할까. 어쩌면 향기는 사람보다 오래 남아, 사라진 자리의 온기를 대신 전하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스친 향기가 좋아 발걸음을 멈춘 적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는 향이라면, 그것은 아직 마음 어딘가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매번 향수를 덧입히기보다, 가능하다면 나만의 체향으로 기억되고 싶다.
타인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스며드는 존재로.
존재란 어쩌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향기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