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변하는가, 아니면 믿음이 흔들리는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다름 속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 틈에 내 쪽으로 기울어진 믿음이 자란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일, 해석의 작은 차이에서 균열이 스며든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 위에 얹힌 자신의 투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는 묻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리고 은수는 짧게 답한다.
“헤어져.”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가 놓지 못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일까, 아니면 사랑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전제일까.
사랑이 달라진다기보다, 그에 대해 품었던 그림이 먼저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상우의 물음은 사랑이 아니라, 영원을 바랐던 자신의 마음을 향한 질문에 가까웠다.
사랑은 스스로 심어 놓은 믿음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람을 통해 완성될 어떤 모습을 함께 기대한다. 그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감정은 쉽게 틈을 드러낸다.
모든 관계는 각자가 세운 전제 위에서 위태롭게 시작된다. 믿음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 안에는 갈망이 섞여 있다. 오래 함께하길, 쉽게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오래 함께한 부부도, 연인도, 친구도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끝도 있다. 그것은 누군가 변해서라기보다, 내가 마음속에 그려 두었던 모습이 더는 유지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일이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이다. 스스로 아무 의미도 주장하지 않는다. 예쁘다고 말하는 것도, 특별하다고 이름을 붙이는 것도 결국은 나다. 대상은 그대로인데, 나는 그 위에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상대를 바라본 적이 더 많았다. 보고 싶었던 면만 또렷이 남기고, 나머지는 조용히 지워가면서.
그런 마음은 허망한 것일까.
어쩌면 아무런 기대도 없다면 우리는 쉽게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쌓은 이야기가 언젠가 무너질 줄 알면서도 다시 마음을 내어주는 일. 그것은 어리석음이라기보다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우리가 허구인 줄 알면서도 드라마와 소설 속으로 기꺼이 침잠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세계에서 바라보면 지금의 이 현실이 또 다른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믿음을 조금씩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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