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공기에서
공기를 믿던 시절이 있었다.
비가 그친 뒤의 학교,
운동장 구석, 물웅덩이에 고인 하늘.
교정 계단에 앉아 있던 두 여학생보다
나는 그날의 공기를 먼저 기억한다.
그녀들의 대화보다
비가 지나간 공기에서
기시감이 먼저 올라왔다.
축축하고 꿉꿉했지만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던 공기.
그 순간의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이해하기보다
그저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축축한 공기 속에 떠도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아마도 내가
한여름을 좋아했던 이유와도 닮아 있을 것이다.
견디기 힘들 만큼 덥고 무거운 날에도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던
그 막연한 믿음.
그런 순간이 분명 여러 번 있었다.
다만 지금은
그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어쩌면 나는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더 의심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건 아닐까.
그럴 때면
머리로는 안다.
지금 이 생각이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만들어 내지 않으면
휩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생각은
쉽게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좋은 느낌이었다.
구체적인 계기라든가 근거는 없었다.
거기에는 단지 오만함이 있었다.’
비록 그것이 오만함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감각을
다시 한번 온전히 느끼고 싶어진다.
아무 의심 없는 마음은
때로 무모함이 되기도 한다.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듯
감정 역시
한쪽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어릴 때의 나는 삶이 어디로 행하든
그 자체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계절만으로도 충분했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으로도
세상이 한없이 너그러워 보였다.
배꽃이 만발한 사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내려앉던 풍경.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좋았다.
길을 걷다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순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는 일마저도.
나는
그렇게 긴 시간
아무 의심 없던 터널을 지나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공기를 마신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나를 깨우는 쪽을 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