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기 전에는 막연히 로스쿨만 들어가면 변호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50% 밖에 되지 않았고, 당연히 한 번에 붙는 것은 쉽지 않았다.
B는 독한 마음으로 학원에 등록했지만, 가끔 홀로 해나가는 수험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때 많아졌다. 그때쯤 마침 학원에서 아는 언니가 한 명 생겼다.
그 언니는 예쁘장했고 화려하게 꾸미는 스타일 이었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외로움을 타던 B에게 적극적으로 함께 밥 먹자, 커피 마시자 다가와줬다. 변호사 시험 준비라는 공통분모로 둘은 순식간에 친해졌다.
그때만 해도 고난하고 외로운 수험생 생활에서 끝까지 서로 토닥여가며 견뎌낼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 언니는 처음에는 꽤 열심히 공부하는 듯했다. 하지만 공부가 안 잡히는 시작하는 슬럼프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현실도피를 하기 시작했다.
한 두 번 친구들과 놀러 가고, 맛집과 예쁜 카페에 다녀온 것을 인스타에 올리던 것이 시작이었다. 피드에 대한 좋아요와 댓글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느샌가 점점 인스타그램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B가 함께 공부를 하자고 해도, 나중에- 다음에- 라는 말로 미뤄지곤 했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피드가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항상 #변호사 #로스쿨의 태그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험 준비 중이고 그 시험이 얼마 남지 않는 분위기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인스타 속의 그녀는 이미 변호사가 된 것처럼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전시했다. B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변호사가 아닌데, 이미 변호사가 된 것처럼 현실을 포장하는 사진들에서 오히려 괴리감을 느꼈다.
정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12월 겨울, 그 언니는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호텔방을 빌려서 파티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 속에서 그녀는 정말 환하게 케이크의 촛불을 불며 얼굴의 생크림을 살짝 묻힌 채 윙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의 좋아요 수는 모든 사진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 1월, 그 언니는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다.
로스쿨을 졸업한 똑똑하고 예쁜 사람을 전시했지만, 정작 변호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인스타와 달랐다.
요즘은 유명한 사람들이 참 많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을 보자. 다들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예쁘고 잘 생기고 몸도 좋다.
게다가 다들 명품을 걸치고 있고, 일 년 내내 여행을 다니고, 지인들과 파티를 한다. (도대체 일은 언제 하는 걸까?)
일반적인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배가 아파서 질투하게 되거나. 혹은 우러러보게 되거나.
다른 SNS와 인스타그램은 좀 다르다.
페이스북은 적당히 긴 글, 트위터는 짧은 글로 아무튼 글이 위주다. 인스타그램은 직관적인 이미지로 승부한다. 당장 눈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자 최후의 목표이다.
사진 - 태그 - 좋아요 - 팔로워
이 간단한 형식이 사람들 간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사람들을 더 원초적인 자극으로 이끈다.
안 그랬던 사람도 더 보이는 외향에 집착하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에 더 목마르게 된다.
B의 친구인 언니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험 준비가 힘들었던 그녀에게 인스타그램이 주는 자극은 마치 마약과 같았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꾸준한 노력은 사그라들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얻고자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인스타그램에 팔았던 대가로, 시험 준비를 하던 현실의 미래를 잃었다.
인스타그램은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 같다.
디멘터의 위키백과 설명을 보면
디멘터는 마이너스적 감정(절망, 슬픔 등)의 집약체이므로 물리적인 공격에 절대적인 내성을 지니기에 행복한 감정의 결정체인 패트로누스만이 이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마이너스적 성질을 띄므로 주변의 플러스적인 감정을 흡수한다.
라고 되어있다. 디멘터는 나의 행복한 감정을 흡수하는 괴물이다.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나의 행복을 올리면 그 행복을 흡수한 인스타그램은 내가 좋아요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불행을 감지하게 된다.
디멘터의 키스를 받은 두들리 더즐리의 증언에 따르면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 한다.
혹시나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더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
불가능하진 않다. 다이아몬드같이 단단한 멘탈로 중무장한다면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으로부터도 분명히 좋은 영향을 얻어낼 수 있다. 개인 브랜딩의 홍보,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감, 창작의 원천과 교감으로 쓰이는 것도 가능한다.
하지만 한 개인은 인스타그램을 이기기 쉽지 않다.
정말 작정하고 꾸며서 올리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아니 그렇게 해도), 이미 나보다 훨씬 화려한 사람들이 완벽히 보정된 사진으로 피드는 중무장되어있다.
나도 잠시 인스타그램을 했었는 데, 멀쩡히 건강하게 잘 지내던 내 자존감만 박살 났다. 결국 어플을 지워버렸다. 멘탈이 인스타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처음에는 별 신경 안 쓰였는데 결국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스타그램을 하고서 더 행복 해졌다기보단 더 불행해진 게 맞는 것 같았다.
인스타를 하면서 나 스스로의 얼굴과 내 삶의 만족도가 더해진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연예인이 아닌 이상에야 인스타 피플들의 외모와 삶과 성취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서, 인스타그램을 아예 안 하는 건 '당장' 시행하기에는 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디멘터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할 '익스펙토 패트로눔'의 마법은 없을까?
A양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코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가 한 사진을 발견하곤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아서 팔로우를 눌러놓았던 인플루언서가 새로 올린 사진이 미묘하게 눈에 익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직장 동료의 배경화면과 같은 사진이었다.
그 직장동료는 같은 부서에서 2년째 함께 근무하고 있으나 사적으로 아주 친한 동료는 아니었다.
그래도 같이 점심을 먹으며 적당히 수다 떠는 사이로, 그녀가 주말에 어디를 놀러 갔고 휴가로 어디를 다녀왔는지 정도는 근황 토크로 알고 있었다.
최근 그녀가 얼마 전 휴가를 갔다 오고 나서 배경 사진이 바뀌었는데,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에 아예 똑같은 사진이 올라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피드를 내려가며 사진들을 정밀하게 관찰하여 보니,
직장 동료가 입었던 옷, 가방, 액세서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보니 주말에 다녀왔다던 식당, 카페, 휴가도 전부 그 인플루언서랑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니 얼굴도, 그 직장 동료와 약간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의심을 하고 보지 않는 이상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았다.
실물은 동글동글한 얼굴상인데, 사진의 그녀의 턱은 반이 없어져있었다.
몸매도 적당히 균형 잡힌 편이었으나, 인스타 사진처럼 심하게 마르고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길진 않았다.
한 마디로 인상의 느낌이 정말 달랐다. 그냥 좀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여권 심사를 통과 못할 것 같은 그런 정도?
2년간 평일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그녀를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난생처음 알게 된 지인(?) 인플루언서가 그녀였다니.
남몰래 그 인플루언서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있었는 데,
그게 직장 동료라니 김 빠지면서도 뭔가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남이 바람피우는 장면을 발견한 것 같은 이상한 관음의 느낌이랄까.
그녀는 그 이후로 인플루언서들을 잘 믿지 않는다.
어느 날의 카페에서 '인스타에서 유명한 사람일 것 같은' 여성분을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작고 마르고 옷을 화려하게 입었고 명품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인스타에서 그녀의 사진을 봤더라면 부러웠을 텐데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니 오히려 안 부러웠다.
그냥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남인데, 뭐 저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지 뭐. 이런 느낌이었달까.
게다가 인스타에서는 저런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실제로는 저런 사람은 보기 매우 드물기 때문인지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인스타가 실제보다 더 과장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고.
사실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도 피드에서 사진을 보게 되면 나랑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진다.
원래 일론 머스크가 부자 되는 것보다 내 동기가 주식을 돈 버는 게 더 속이 쓰린 법이다.
인스타는 나와 실제로는 큰 관련이 없는 각 분야의 대표적인 사람들을 마치 내 지인처럼 느끼게 한다.
가까운 지인 같지만 그들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공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는 박탈감을 느낀다.
현실과의 확연한 격차를 눈 앞에서 확인한 순간, 나는 나만의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라는 주문을.
나는 딱 하나의 SNS 피드만 보고 믿는다. 바로 내가 '직접 눈으로 본'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삶이라는 피드.
인스타에서 무엇을 보여주건, 내가 속해있는 실제 세상의 피드는 그 와는 달랐다.
좀 더 현실적으로 다른 이들을 각각의 거리감을 두고 느낄 수 있었다.
인스타에서 광고를 유발하기 위해 혹은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나에게 추천해주는 건 믿지 않기로 했다.
디멘터의 키스가 주는 세계는 내 주변의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고, 다시 한번 되새긴다.
사람마다 페트로누스 동물이 다르듯이, 인스타그램의 검은 기운으로부터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나는 그중 나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을 제시했을 뿐, 결국 직접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건 스스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