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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굴 Feb 11. 2021

상대적인 것이 가져다주는 지옥, 주변과의 비교

나를 나로서 오롯이 바라본다는 것




사람은 극단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람이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것도 사람,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는 것도 사람에 관련된 것이다.


한 사람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나 집단이 그 사람을 정의하고 대변한다.

사람 스스로도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와 위치를 인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나 한국은 '주변'을 의식하는 정도나 너무나 크다. 

어렸을 적에도 늘 주변과 비교당하며 자라나고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표현 자체가 비교를 내포한다.)

학교에서도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보다는, 경쟁에서 내가 몇 등을 차지하느냐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나고자란 한국에서 주변과 비교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어쩌면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세상에서나 가능한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30년, 그리고 좀 더 넘게 살아오면서,

주변과의 비교는 나에게 더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의 순수한 친구들끼리의 비교는 괜찮았다.

주변 친구들의 장점을 부러워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배울 점은 배우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나만의 장점은 당당히 자랑하고, 상대적 박탈감 대신 당당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 30대 중반인 나에게, 주변과의 비교는 정말이지 너무나 괴롭다.

나는 충분히 이미 많은 것들을 성취해왔고 이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뭐 하나 갖지 못한 것을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이면

진심으로 마음껏 축하해주지도 인정해주지도 못한다.


겉으로는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속으로는 그 사람의 성취를 깎아내렸다.

그러고선 나보다 못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위안받고 안도했다.


차츰, 그러는 나 스스로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비교가 나를 힘들게 하는 일상의 사례는 참 많다.

특히나 '돈'은 아주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해서 더 극명하다.



나와 같은 대학을 나오고 나랑 비슷한 회사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주식 혹은 부동산으로 몇천에서 몇억을 벌 동안

나는 월급만 받으며 어느샌가 벼락 거지가 된 경우.


고등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못 했고 나보다 순위가 낮은 대학에 입학했던 친구가

시작한 사업이 잘 되어서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연매출을 올리는 경우.


일에 대해 열정도 별로 많지 않았고 노력도 덜 하는 것 같았던 친구가

부잣집 남편(혹은 아내)을 만나서 한 순간에 삶의 경제적 위치가 올라가버린 경우 등등.



아마 지금 당신에게도,

그런 상대적인 경제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누군가가 최소 한 두명은 떠오를 것이다.








비교를 안 할 순 없다. 그렇다면 이를 좀 더 슬기롭게 보내버리는 방법은 없을까.


참 많이 고민하고 고민했다.


사실 이 비교를 해결하면 정신승리는 이미 끝난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에 초월해질 수 있다면 대부분의 고민은 없어지므로.



쉽진 않지만, 비교에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한 걸음 떨어져서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 어떨까?


나 스스로의 안에 갇혀서 주변을 보지 말고,

'나'라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으로 나의 상황을 보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딸아, 네가 친구에 비해 재테크를 못 해서 돈을 좀 못 벌었어도 괜찮아.

그걸로 삶은 끝나지 않는단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큰일이 아니야.

몇 천만 원이 지금 당장은 커 보이겠지만, 네가 성실히 살아온 삶에서 얻은 가치들은 그 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단다."



"아들아, 사업을 한 친구가 부럽고 대단해 보일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누군가 사업을 하였다고 해서, 일하는 사람이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야.

충분히 잘 해왔고, 너는 너로서 성장하고 발전해왔어.

너는 아주 소중하고 대단한 나의 아들이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야.

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할 수 있는 정도의 가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렴."



"딸아, 네 친구가 남편을 잘 만나 부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단다.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부자가 된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야.

운을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삶이 망가진단다.

돈이 많은 사람들도 이혼을 하고, 결혼생활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야. 네가 선택한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을 믿으면 돼.

그 마음은 수억, 수백억으로도 살 수 없는 단 하나의 것이야."



라고 따스하게 말해주고, 힘들어하는 마음을 꼭 안아주지 않을까?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느라 우울해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나의 자녀에게.




내 자녀를 보듯이, 나 스스로를 좀 더 지지해주고 관대하고 넓은 마음으로 품어 준다면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면서 나 스스로의 가치를 믿어준다면

비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나 스스로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보듬어줘야 할 사람은 나 스스로니까.








모든 사람은 남들보다 건강한 부분이 있고, 유난히 연약한 부분이 있다.

나는 남들보다 안구 건조증이 심하고, 소화를 잘 못 시켜서 툭하면 더부룩해진다.

대신 피부는 튼튼해서 뭐가 잘 안나는 편이고, 오래 앉아있어도 허리가 아팠던 적은 별로 없다.  



물론 난 안구 건조증이나 소화불량에 대해 신경을 열심히 쓰는 편이다.

눈 찜질도 열심히 해주고,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도 쓴다.

커피나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자기 전에 야식도 웬만해선 안 먹고 버틴다.

하지만 내가 태생적으로 눈이 건강하고 소화를 잘 시키는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태생적으로 약한 부분에 대해 남들과 비교하며 한탄하는 건

정말 한심한 일이고, 상황을 극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그럴 시간에, 내가 약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남들보다 더 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지내는 것이 백번 낫다.



삶의 부분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모든 부분이 남들과 비교하여 최고의 상태로 건강할 수 없듯이,

누군가 돈을 많이 벌면 나는 못 벌 수도 있다.  

노력을 해도 아주 부자는 못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화를 잘 시키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다.

타고나기를 하이 리스크나, 과감한 사업이나, 돈만으로 하는 결혼은

못 하도록 태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까 위에서 말했듯이, 또 나도 모르는 내가 남들보다 건강한 분야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내 피부에 뭐가 잘 안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마 피부가 안 좋은 사람들은 나를 정말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이것에 대해 괴로워해 본 적이 없고, 고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없다.



돈을 많이 버는 내 친구도

말은 못 했지만 나의 어떤 점을 부러워하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난 우월함의 영역이 아니다.


너와 나의 차이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전부 다른 사람이고,

가지고 있는 '돈'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점으로 판단될 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가장 부자인 친구가 아니다.

그녀는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이의 본질을 볼 줄 알며, 감사와 웃음이 넘치는 사람이다.

내가 만약 친구의 삶의 성공 여부를 돈으로 판단한다면 그건 정말 무례한 짓이다.



그런 무례한 짓을 왜 나 스스로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가.

비교를 통해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남이 아닌 결국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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