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를 멍청하다고 말하는 세상
부동산은 정신승리 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흙수저와 금수저의 차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 그렇다.
누가 어디를 사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기 쉬운 정보이다. 비교하기도 참 쉽다.
일단 현재 상황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서울에서 '전세'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 호가는 몇억이 올랐고, 매매가 역시 몇억이 올랐다. 그리고 내가 버는 금액으로는 집값 상승률을 따라잡기 힘들다.
가끔씩 살기 위해 정신승리를 했다가도, 또 가끔은(종종...?) 좌절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까지 솔직하게 적어보련다.
분노 없이 일상생활은 해야 하고, 차근차근히 내 보금자리를 준비해나가야 하니까.
도대체 아파트란 뭐길래 이렇게 한국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가.
먼저 아파트의 실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치인이 아파트만 보지 말고 빌라도 관심을 가지라고 해서 말이 많았었다.
사실 나도 그 말을 하면 내가 했지, 정치인이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빌라도 아파트도 사람이 살기 위해서 지어진 건축물이다 그런데 각각의 느낌은 완전 다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해외에 나가보면 가장 신기한 것이 아파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면 또 가장 신기한 것이 아파트가 정말 미친 듯이 많다는 거다.
다른 나라도 주요 도시의 땅값은 비싸다. 어딜가든 사람들은 내 살집 하나 찾기 쉽지 않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많을까.
게다가 솔직히 도시 미관상 전혀 예쁘지도 않다. 속된 말로 닭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재산 증식의 가치를 제외하고 봤을 때, 주택보다 아파트가 더 ‘이상적’인 주거 환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주택을 구입하던 집의 금액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정말 아파트가 주거형태 중에 가장 좋아서 아파트를 살진 않을 것 같다.
안전하고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층간 소음 등의 단점도 없지 않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골 동네 어디를 가든 아파트는 다들 똑같이 생겼다.
그러니 이게 나의 주택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자산으로 느껴진다.
(내가 가진 돈 네가 가진 돈이 모두 똑같이 생긴 것처럼.....)
아마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 현재의 사람들을 본다면 참 신기해할 것이다.
개인적인 주택보다 빽빽한 도시의 아파트가 몇 배의 가치를 두며, 그곳에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별로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 역시 무주택 이자이며, 살고 싶은 곳에는 청약을 넣어보고 있다. 혹여나 청약이 당첨된다면 기쁠 것이다.
‘아파트’ 만이 삶의 목적이고 목표이자 승자와 패자의 증거가 되는 것.
제대로 된 아파트 한 채 소유하지 못하면 인생 낙오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매우 안타까운 점이 있다.
아파트를 소유하던 안 하던,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 대신 사는 곳으로 정의된다.
본인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우러러보게 된다. 더 나쁜 아파트에 살거나 주택이 없는 경우는 속으로 안 된 사람 취급을 한다. 그렇게 되는 건 아파트를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누군가와 비교해야지만 내 가치를 정할 수 있고, 그 비교 대상이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줄 세울 수 있는 사고방식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왜 최악이 나면, 내 삶의 가치가 오로지 물질적인 것으로 의미 지어진다.
게다가 그 물질적인 것이 본인의 노력, 인성에 비례하지 않는다. 금수저나 흙수저냐, 어쩌다가 운 좋게 언제 구입을 했느냐. 정책에 따라 달라지고, 시장 상승세 혹은 하락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운과 타이밍과 상황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내가 어떤 집을 살 수 있었을 때 나는 사지 않았고, 친구는 무리해서 구입을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집은 몇 억이 올랐고 나는 전세를 올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 몇 억은 내가 노동으로 벌기는 쉽지 않은 돈이며, 무엇보다 가장 암담한 것은 내가 돈을 버는 동안 집값은 더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한 스토리이고 나 역시 몇 번이나 겪은 일이다. 아마 다들 조금씩 세부사항은 다를지 몰라도, 현재 무주택자라면 비슷한 좌절감과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첫 번째 내가 집을 살 수 있었을 때 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 었을까. 그때의 나는 정말 집을 사려고 했었던가. 사려고 했다는 그 목적과 상황은 어떠하였으며, 사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다니는 직장을 계속 다닐지에 대해 아직 확정 짓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 역시 곧 이직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직하는 직장이 정해진 상황은 아니었고, 지방으로 가게 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몇 년 뒤에 어디서 어떻게 살게 될지 몰랐고, 그래서 서울에서는 일단 전세로 살면서 계속 여기 있게 되면 그때 살 곳을 고려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지금 다시 돌아간대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그렇다면 내가 그때 집을 샀다면 지금 정말 안정적이고 행복했을까? 내가 집을 가지지 않은 입장에서 생각하기 어렵긴 하지만, 결국 그 오른 금액은 팔아야 내 돈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 집에 1,2년만 살 것이 아니라면 5년 정도는 살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럴 때 5년 뒤에도 틀림없이 올라 있을까. 그에 대해 서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는 정말이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과거에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지금 현재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 빌라나 전원주택은 안 되고 꼭 ‘아파트’ 여야만 한다는 진리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지금 현재는 정말 보편적이고, 흔한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지는 대략 70여 년 정도 지났다.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파트 = 주거의 1순위 = 투자 가치 = 절대 진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50년 정도 된다. 그 50년 전에는 아파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50년 동안 진리로 인식된 것이 앞으로 10-20년 동안 무조건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맞을까? 이건 아마 아무도 쉬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2020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으로 바뀌었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옆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조차 갈 수 없어졌다.
수시로 단계가 바뀌면서 내가 운동을 하고 싶다고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특히나 언택트, 재택근무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은, 꼭 집이 ‘회사’와 가깝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서울, 특히 수도권에 목매는 이유 중 하나는 인프라도 인프라지만 ‘학군’과 ‘직주근접’ 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예전에는 대치동 아니면 좋은 학원 선생님을 만나기 힘들었다. 지금은 인터넷 강의도 있고(개인적으로 고3 때 인터넷 강의로 덕을 꽤 본 세대다), 프리랜서에게만 가능해 보였던 재택근무가 코로나로 인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여태까지의 전 세계적인 전염병 사례들을 언급해보자. 당장 10년 전 만해도 전염병은 완전히 정복된 대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그 흐름이 역으로 꺾일 수 없는 상태이다. 전염병의 출현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신종 독감, 메르스, 에볼라 그리고 코로나까지.
하지만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나고, 새로운 것은 이전의 병원체보다 훨씬 더 무섭고 강력하다. 우리나라에서 초반에는 특수한 이유로 대구, 경북 지역에 감염이 많았지만 이후 2차,3차 유행은 수도권이 중심이었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서 전염병이 더 많이 발병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점차 반복된다면, 인구 밀집은 오히려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파트는 주거 밀집의 끝판왕이다. 코로나야 치사율이 1%이고 고위험군에서 특히 높지 젊은 층에게는 치사율이 높지 않다. 하지만 만약 메르스의 치명률과 코로나의 감염력을 가진 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정말 걸리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며 아이들이 크게 위협받은 질환이 유행한다면? 사람들은 서울을 버리고 시골로 도망갈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된다고? 이미 2020년의 코로나가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음을 증명했다. 여태까지의 50년이 아파트 중심이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몇십 년이 아파트 중심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인구감소가 있다. 지금 학교의 학생들 수가 많이 줄어서 2018년도 국내 OECD 통계를 보면 학급당 학생 수가 23명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한 반에 45명이 넘었다. 45명이 지금 현재 30대이고 주택시장의 큰 손이다, 그러면 현재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초등학생들이 주택시장의 주축이 되는 20년 후가 된다면?? 당장 학교, 학원, 소아과는 그 인구절벽을 실감하고 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분명히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간다고 믿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40년 전에는 강남이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그때 강남에 땅을 사면 바보 소리를 들었다.
남들이 하라는 것에서 어느 정도는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모든 사람이 아파트를 사라고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그 모든 말을 믿고 좌절하지 말고, 조금 더 길게 보자.
부동산 시장에서 패닉 바잉, 영 끌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공포에 휩싸인 상태로, 안정되지 않고 무리해서 불안한 상태로 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결정이라도 위험하다.
하다 못해 부동산이라는 큰 결정을 패닉과 큰 빚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정신승리일지 모른다.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의. 식. 주에 해당되는 부분이니만큼 이에 대해 언급하기도 쉽지 않았거니와 나도 가끔은 좌절하게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무조건 폭등, 무조건 폭락이 아닌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판단을 가지고 결정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단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파트’가 모든 삶의 목적이고 목표이고 그것 만이 진정한 가치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멍청하고 가진 자는 똑똑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면 행복하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정말로.
남이 나보다 못하고 그 우위에 서서 행복을 느끼는 건, 본인보다 나은 사람이 자신을 깔아뭉개도 할 말 없다는 뜻이다. 절박하고 좌절스러운 부동산 현실이지만, 그래도 타인을 시기 질투하며 내 삶의 행복과 가치를 깎아내리지는 말자. 어렵지만, 정말 어렵지만,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고 공포와 패닉에 휩싸이지 말자.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우리 거기서 더 불행까지 부록으로 챙기지는 말자.
집이 없는 것은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힘들지만 조금씩 계획을 세우자.
그리고 무주택 그 이상의 마음적이고 정신적인 피해까지 더 입지는 말자.
우리 힘들지만, 함께 조금씩 이 추위를 견디어 보자.
아무리 눈바람이 매서워도, 봄이 오고 꽃봉오리는 맺힐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