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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굴 Jan 10. 2021

이 나이면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될 거 같기도 하고

서른이 넘으면 명품이 예의인가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결혼식에 가면 달라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주변 친구들이 들고 오는 가방이다.

하나둘씩 명품가방을 들고 오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거의 나만 빼고는 다 명품가방을 들고 온다.



왠지 나도 예의상 하나 정도는 구입해서 이런 자리에 들고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년배들이 명품을 들면 나도 들어야 할까? 다들 한 번 정도는 고민해봤거나 혹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솔직히 예뻐 보이는 것과 갖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면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명품은 아니더라도,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도, 내가 더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그 돈으로 인해 내가 더 쓰고 싶었던 부분, 혹은 써야만 했던 부분들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짜리 가방을 들 던 지 얼마짜리 귀걸이를 하던 지 나를 나로서 봐줄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고작 명품 가격 얼마로 나를 평가한다고 치자. 그 평가는 전혀 소중하지도 의미 있지도 않다.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그 효용을 느낄 수 있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이 낫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나를 위해 직접 투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 운동, 문화생활, 경험, 여행에 쓰는 것이 좀 더 실용적이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치들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더 행복해지고, 더 발전할 수 있다.



나는 명품에 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실용적인 차를 구입하고, 운동센터에 등록하고, 용기를 내서 멀리 떠나는 데에 쓰고 싶다.


겉모습의 명품 가방은 나를 스쳐 지나가는 타인도 한눈에 평가할 수 있다.

나는 그것보다 가까워질수록 진국인 사람이 되기 위해 소중한 나의 돈을 쓰고 싶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명품이 갖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사실 물건의 실제적인 퀄리티 또한 보통 어느 정도까지는 가격에 비례한다. 싼 게 비지떡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명품을 사게 되고 나면 나에게 실.제.로. 무엇이 남을까?  한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수십, 혹은 몇 백만 원의 돈을 들여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정확이 어떤 것인지를.



아마 예쁘고 좋은 가방 하나를 일단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가방을 가끔씩 결혼식이나 중요한 모임에 들고나가겠지.



하지만 모든 착장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절대 가방이란 없다.

이 옷, 이 구두, 이 상황에 아주 퍼펙트하게 어울리지는 않지만, 일단 명품이라는 이유로 들고나간다.



가끔 코디가 어그러지는 경우도 생긴다. 멋있어 보이고 싶고 세련되어 보이고 싶어서 명품을 들었는데, 반대로 오히려 좀 애매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모든 모임에 맨날 똑같은 명품가방 하나만 들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직장 내에서 3번째 결혼식인데 또 똑같은 가방을 들고 가자니 안 들고 가는 것보다도 왠지 민망한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명품가방을 뭘 살지 고민하게 된다.



또 결혼식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친구의 표정보다 어떤 가방을 들었었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오늘 든 가방의 레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나 비싸고 유행하는 가방을 들었는지에 따라 남들 앞에서 태도가 당당하게 달라진다.




결국 돈을 주고 내가 얻은 건, 내 존재의 가치를 명품가방으로 대체한 것이다.

명품 가방을 든 나여야지만 자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존재 만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줄어든다. 나 돈 이 정도는 있어- 라는 쿨한 마음으로 돈을 썼다. 그런데 오히려 쿨해지기는 커녕, 보이는 것에 더 얽매이고 집착하게 된다.






사실 내가 동경하고 추구하는 워너비는 명품을 휘감은 모습이 아니다.

(물론 이건 필자의 매우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다.)  

너무 유행하거나 비싸기만 한 아이템으로 코디하는 것도 선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는 패션을 좋아한다. 그 아이덴티티에는 사고방식, 인격, 생활습관, 세상에 대한 태도, 현재 중요시하는 가치와, 미래에 추구하는 모습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며 일처리 역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명품은 아니지만 질 좋은 소재의 단정한 캐시미어 니트, 구김 없이 반듯한 슬랙스와 로퍼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다.

성격이 톡톡 튀고 자신만의 생각이 확고한 사람의 경우는 또 이와 다르다. 키치한 마크가 붙은 독특한 원피스, 강렬한 원색의 모자로 자신의 개성을 좀 더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첫 번째, 두 번째 사람 둘 다 현재 유행하는 AMI 니트, 와이드 팬츠, 고야드 가방, 발렌시아가 운동화를 신었다고 가정해보자. 자신만의 특징이 없다. 그래서 자신만의 매력도 없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은 명품이 필요 없다. 그 존재만으로도 정말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난 뒤에, 명품이지만 나의 아이덴티티에 잘 부합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격을 고려해도 충분히 지불할 만하다.라고 판단되어 사는 것은 또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보여 주기식의, 나도 하나쯤은- 이런 느낌의 사치가 아니다. 나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아이템의 가격이 비쌌던 것이다. 나의 개성을 우선으로 두고 구입할 물건의 가격은 당연히 천차만별일 테니까.   


이렇게 구입하면, 사람이 그 명품에 종속되지 않는다. 명품의 아우라를 내가 빌린 것이 아니라, 나의 아우라를 완성하기 위해 명품이 쓰인 것이다. 이게 얼마짜리인지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도 그 사람의 물건이 얼마인지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개성을 보게 된다.  






이에 반해 자신만의 색깔이 없이, 요즘 유행인 비싼 명품을 드는 경우는 어떻게 다를까?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재벌이 아니다. 평범한 경우에는 백화점에 가서 무작정 눈에 띄는 것을 턱 하고 살 수 없다. 아마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어떻게 사는 게 저렴한지 상품권 할인을 받는 게 나은지 면세점이 나은지 인터넷에 검색도 해 볼 것이다. 또 매장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경우 입고여부에 대해서 유선상으로 혹은 직접 들러서 확인도 해보아야 한다.



신기하게도 열심히 알아보면 볼수록, 다른 사람들과 취향이 비슷해진다. 내 눈에만 예뻐 보이는 것에 큰돈을 쓰기는 어렵다. 점점 기준점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다수의 취향에 흔들린다.

결국 남들이 추천하는 요즘 유행하고, 무난하며, 아무 데나 잘 어울리고, 적절한 명품을 사게 된다.

그렇게 되어 가장 안 좋은 결과는 ‘명품’만 눈에 띄고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고려했지만, 정작 그 명품의 주인이 될 스스로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조화가 언밸런스 해진다. 가방은 명품이고 예쁜데, 정작 그 사람을 살려주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목격하곤 한다. 그 사람이 든 가방이 아니고, 그 가방을 든 사람으로 앞뒤 순서가 바뀐다.  






또한, 명품을 살 때 실제로 낭비하고 있는 것은 돈보다도 시간이다.


우리가 어떠한 비싼 물건을 살 때는 여러 번 고민하고 고심하게 된다. 그 대상이 집이나 차인 경우에는 생활과 직결된 문제이고, 고심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비싼 명품 가방, 명품 귀걸이, 명품 목걸이에 대한 고민은 그 결이 다르다. 비싸서 고민의 시간이 많이 들면서 사실 생활에 큰 관련도 없다. 한 번 명품을 구매하면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 명품을 사면 저 명품이 갖고 싶어 진다. 사도 사도 채워지지 않는 열망으로 명품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웃고 여행하고 운동할 시간 대신에, 어떤 상품이 요즘 유행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칭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해서 구입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뿌듯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시간 또한 돈이다. 스스로의 시급이 얼마짜리인지에 대해 잊으면 안 된다.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다른 일들에 대한 기회비용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물건들을 쇼핑하고 구경하는 시간을 아까워해야 한다.

내가 진짜 필요하면, 그때 찾아도 늦지 않다. 아예 차라리 한 번에 몰아서 백화점에서 구경을 해도 좋다.


일상적으로 매일매일의 시간을 꾸준히 그렇게 물건들을 아이쇼핑하고, 인터넷 쇼핑하고, 구입하는 데 보낸다면? 그저 먹고 배설만 하는 생물체처럼, 벌고 쓰는 걸로만 구성된 삶이다.

벌고 씀 그 사이에 나.로.서. 살아감이 존재해야 한다. 돈이 매개하지 않은 삶의 부분을 늘려나가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명품을 구입함으로써 얻고 싶어 하는 숨겨진 진짜 가치는 뭘까? 그리고 그 가치를 얻는 방법으로 명품이 최선의 방법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자.




당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며 당신이 지불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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