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장에 대한 한탄은 늘어만 간다.
신기할 정도로 어느 직종에서건 일에서의 서러움들은 비슷비슷하다.
일하는 것에 비해 연봉이 적어. 연봉 협상도 지리멸렬해.
사이코 상사가 있어, 일도 못(안) 하고 헛소리만 해.
직장 내 분위기가 정말 수직적이야.
여기서 계속 일한다면 앞으로의 비전이 없어.
영혼을 갈아 넣어 돈을 받는 느낌이야.
야근을 너무 자주 해야 하고 내 시간이 없어.
사람들 험담을 그렇게 해. 정말 무서워.
동기가 나를 시기 질투해. 나를 은근히 따돌린다니까.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퇴근하고 나면 지쳐서 아무것도 못해.
누구나 저 한탄의 하나쯤은 해당될 것이다.
사실 나도 저 예제들을 직접 쓰면서 자꾸 한숨이 나오고 있다. (나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직장인이므로...)
참 어렵다. 도대체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왜 늘 이 모양인 걸까.
내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여기보다 연봉도 직장 분위기도 동료도 상사도 더 나아 보이던데.
내가 다니는 직장은 늘 블랙이다. 정말이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참고 견뎌야 할까.
사실 본인 회사에 100%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워라밸이 좋으면 연봉이 적고, 연봉이 높으면 워라밸이 나쁘다. 연봉도 좋고 워라밸도 괜찮으면 또라이 상사가 있다. 이 모든 게 다 좋으면 신의 직장이다. 왜냐면 현실에 없기 때문에.
(아주 가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넘쳐나는 사람을 보긴 한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그 회사가 그만큼 완벽한 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매우 긍정적인 경우였다.)
연봉을 얼마를 받건, 일의 로딩이 어느 정도이건, 대체적으로 직장에 대한 불만은 무. 조. 건 있다.
나는 이직이 좀 자유로운 편이라 여태까지 총 3군데의 직장을 다녔는데, 역시나 모두 단점이 있었다.
첫 번째 직장은 정규직이 아니었고 집에서 멀었다.
두 번째 직장은 로딩이 너무 세고 월급은 낮았으며, 정말 안 맞는 동기가 있었다.
세 번째 직장은 집에서 꽤 멀고, 밤이나 주말에 일해야 한다.
간단하게 적었지만 다니던 당시, 혹은 지금 현재 나에게는 정말 큰 문제(였다)이다.
이에 대해 꾹 참고 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그 단점이 폭발하여 나에게 분노와 멘붕을 가져다주는 날에는
카톡방에,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열심히 하소연했다.
답변은 놀라웠다. "정말 공감돼.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라는 말을 안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이토록이나 일을 하며 느끼는 괴로움은 그 결이 비슷하고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단점은 파고들어가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카테고리인 경우가 많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돈을 벌려면 모두 다 겪어야 하는 고난이니, 그냥 무턱대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다녀야 할까?
그냥 닥치고 존버만이 정답인 걸까?
일하느라 오늘도 힘들었던 모든 이들에게 전하노니,
믿기 힘들겠지만 대부분(모든 직장은 아니다)의 직장에는 '장점'도 있다.
일단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집에서 멀고, 밤이나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
대신, 일주일에 2번 정도만 출근을 하여 일을 몰아서 할 수 있으며 평일 낮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밤이나 주말에 일할 때는 굉장히 괴롭다. 내일 당장이라도 이런 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퇴근하여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평일 낮에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를 해먹을 때는 다르다.
세상만사 평화와 행복이 이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냐 싶은 생각에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간다.
주변에는 다른 예제들도 많다.
내 친구 P는 디자이너이고 박봉으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 회사는 사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이 분의 싸이코력이 보통이 아니다.
일단 가족회사이고,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업 앤 다운이 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했던 말도 제대로 지키기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승진에는 어떠한 기준도 원칙도 없고, 일해야 하는 직무도 사장의 기분에 따라 바뀐다.
P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면 사장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지만,
그녀가 계속 그 회사를 다니는 데는, 또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의 노동강도가 다행히 아주 높지 않고, 정시 칼퇴근이 가능하다.
P는 자기 계발을 위해 퇴근 후 학원을 다니는 데, 학원이 회사와 아주 가깝다.
이 두 가지 장점이, 앞의 단점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지인 L은 전문직으로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한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햇병아리를 만만히 본 원장은 주변보다 월급을 깎아 불렀고,
처음 계약할 때와 다르게 자꾸 주말 진료 날짜가 늘어났다.
간단한 회계, 잡일 등도 조금씩 시키면서 원장은 제때 출근하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거의 원장의 일까지 돕고 있지만, L이 다니는 병원의 월급이나, 분위기나, 시설이나, 뭐 하나 다른 곳 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병원이 집과 가까웠다.
출퇴근할 때 30분 이상만 되어도 하루 종일 피곤해하는 L은 단점들에 툴툴거리면서도
다른 병원들의 위치를 찾아볼 때마다 자꾸 이직을 미루게 된다.
결국, 안타깝지만 완벽한 직장은 유니콘 같은 존재이다.
어디엔가 있다고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데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는 그런 존재.
나의 현실은 지금 맞닥뜨려야 하는 바로 이 직장이기에
이 직장에 대한 나의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있다.
'나에게 그나마 잘 맞는 직장'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더 넓은 관점으로 보면 꼭 직장이 아니라 프리랜서 등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나 같은 경우에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워라밸'이다.
일을 아예 안 하는 파이어족도 요즘 유행이지만, 몇 번의 자가 성찰과 경험으로 인해
나는 일을 약간이라도 하는 쪽이 훨씬 더 잘 맞았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일이 나의 일상에 균형과 활력을 주었고,
쉬는 시간도 더 잘 보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일이 일상을 압도해버리면 나는 기력을 잃고 우울해지곤 했다.
이런 나에게는 자기만의 시간과 일의 밸런스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었고,
그래서 현재의 직장이 주는 일-라이프의 밸런스가 주는 만족도가 크다.
그 만족도는 전반적인 나의 삶의 만족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각자 자신이 일로부터 얻고 싶은 것, 그리고 절대 잃고 싶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단순히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 남들이 나쁘다고 하는 회사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점을 만족하느냐, 그리고 내가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의 단점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 있을지, 이직을 할지, 아예 다른 분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지 결정하는 포인트이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나~ 말은 매우 쉽고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 대해 투덜거리기만 하지, 진짜 내가 놓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니 특별히 그 둘을 구분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지금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 혹은 구직 중이라면 다니고 싶은 회사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적어보자.
어떤 이는 '연차, 휴가' 일수도, 어떤 이는 '워라밸' 일수도, 어떤 이는 '연봉' 일수도,
어떤 사람은 '회사 내 분위기', 어떤 사람은 '자기 발전', 어떤 사람은 '직주근접성' 일 수도 있다.
꼭 한 가지가 아니어도 좋다. 우선순위에 놓을 만한 요인들을 적어보다 보면 내가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지 알게 된다. 이 것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기운이 강력하게 온다.
그리고 그다음, 남들은 단점이라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럭저럭 버틸만하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적어본다.
연봉이 좀 적어도 괜찮거나, 연차는 좀 적어도 상관없다거나, 회사와의 거리가 멀어도 괜찮다거나.
아마 남들은 에~ 그 점 힘들지 않아?라고 하지만 의외로 속으로 나는 괜찮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내하고 장점을 얻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현재 직장의 단점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장점을 말끔히 잊어버린다.
그러고 이직을 하고 나면 '아 그때 그 직장이 이 점은 참 좋았는데......'라고 후회한다.
지금 현재 직장의 단점에 분노할 때마다, 이 직장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자.
그래서 그 장점으로 단점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면, 그 장점을 얻기 위해 단점은 희생할 수 있다고 여겨보자.
이 세상에 완벽한 직장은 없고, (돈을 버는 것에 있어)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도저히 내가 참을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장점으로도 그 단점을 커버할 수 없는 경우라면?
늘 신세한탄을 하는 대신 냉정히 현실의 상태에 대해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이직 혹은 분야 변경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장단점에 대한 기준도 없이 일단 그저 도망치면, 새로운 직장에서도 괴로움은 다시 찾아온다.
가장 안 좋은 상태는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감내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에 대해 아무런 분석도, 평가도, 결론도 없으니
방향키를 잃어버린 배와 같이 직장에서의 감정들을 보내게 된다.
만약 이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재 직장의 참을 수 없는 단점에 대해 상사와 협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을 팔아서 돈을 버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쉽지 협상이 실제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았는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단점을 없애기 위해, 회사에서 좋아할 만한 실적을 완벽히 낼 수도 있다.
직장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 정중하게 부탁해 볼 수도 있다.
다른 점을 감내하는 대신, 이 단점만큼은 조금이나 시정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최선을 다했는가이다. 나의 영혼을 잠식하는 장점에 대해 모든 각도로 분석하고 대응했는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바뀔 수 있었는데 안 바뀐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금이라도 시도를 해보자.
직장인들은 너무 을의 태도를 취한다. 시도조차 안 해보면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자괴감이 든다.
시도라도 해보면 다르다. 그 단점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로 분석을 하게 되면서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도 직장에서 힘들었을 당신에게 위로를 건넨다.
나보다 나아 보이는 다른 수많은 이들도 직장에서의 힘든 점 하나씩은 갖고 있다. 내가 보장한다.
다만 그 힘듬을 상쇄할만한 장점이 있냐 없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완벽한 회사는 세상에 드물지만, 나에게 좀.더. 맞는 회사는 있을 수 있다.
우리 모두 용기를 내고 포기하지 말자. 현재 나의 상황을 분석하고 개선의 의지를 놓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