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여성들이 화장을 하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을 공과 사로 구분할 때 일반적인 개인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적인 자리는 단연코 직장이다.
나의 노동과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곳. 서로 협력하고 어떤 일을 완수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벌고 월급을 받기 위해 만나는 곳이다. 서로 매력적으로 보이고, 이성을 찾고, 커플이 되기 위해 가는 곳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쌩얼로 출근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본인이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장을 하면 이득이 있고 화장을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라면? 진짜 100% 본인의 선택이나 취향으로는 결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꾸밈 노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외모 치장의 은근한 압력이 있는 분위기를 직장에서 많이 겪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압력에 순응했던 평범한 여성 직장인이었다.
어느샌가 점점 심해지는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새빨개지는데도 화장을 멈출 수 없었다.
안구 건조증 때문에 한 시간만 모니터를 봐도 눈이 말라서 작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에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모니터를 보는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나름대로 집중해서 일을 열심히 하다가 눈이 점점 뻑뻑해져서 거울을 봤을 때. 말 그대로 시뻘게진 눈의 나를 봤을 때. 그때의 그 스트레스는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피부고 머리숱이고 이목구비고 뭐고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로지 눈이 얼마나 시뻘건지, 아니면 오늘은 그나마 좀 하얀지에만 내 모든 관심과 스트레스가 연관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일을 하면 모니터를 보게 된다. 모니터를 보면 눈이 새빨개진다. 눈이 새빨개지면 통증으로 괴로웠다.
그런데 또 하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외모'였다.
눈이 새빨개지면 얼마나 못생겨 보이는지, 안구 건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안다.
이목구비가 안 예쁘다거나, 피부가 안 좋은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외모적 스트레스이다.
주변에서 늘 눈이 새빨갛네요. 어제 잠을 못 잤어요? 피곤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의 외모적 스트레스.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힘들어진다.
자꾸 눈을 피하게 되고, 대화를 할 때 아래만 바라보게 된다.
게다가 나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금씩 스트레스는 일과 회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니 영향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회사에서의 나의 일에 대한 태도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일단, 회사를 가기가 너무 싫었다. 일을 하는 것도 눈 때문에 너무 싫었다.
일을 할 때마다 새빨개지는 눈 때문에 스트레스를 한 가득 받았으니,
새로운 일을 하게 되거나 받게 될 때 이전보다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
나는 그래도 내 할 일은 해내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 받아가면서도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덜 스트레스받으면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보였던 동료들이 더 좋은 평판을 받았다.
나도 일을 못 하진 않는다. 그 정도까지는 되었다. 그러나 좋은 평판이냐고 물으면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었다.
이렇게 시뻘건 눈의 스트레스로 보내는 날들이 3년이나 지속되었다. 3년 후의 나는 과도한 열정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시니컬함을 가진 직장인이 되었다.
'저렇게 열심히 하면 뭐해. 평생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적당히 일하는 게 가늘고 길게 사는 길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뭔가를 성취하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남을 축하해주지도 못했던,
참으로 스스로도 못났고 힘들었던 나날들이었다.
입사 초반에 너무 바빠서 화장을 못 하고 출근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청개굴 씨는 화장했을 때랑 안 했을 때 느낌이 확 다르네. 화장한 게 훨씬 나아.'
라는 말을 들었었던 것이 꽤나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사실 화장하는 거나 안 하는 거나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도,
외모 쪽에서는 부정적인 의견 한 두 개가 듣는 사람에겐 훨씬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 충격은 내 무의식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 안구건조증으로 그렇게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화장을 안 할 생각을 못 했다.
화장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직장에서의 이미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화장을 해서 얻는 여성으로서의 외모적 상승효과 역시 막상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여태껏 입사 후 내내 화장을 해 왔고 사람들은 모두 이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쌩얼로 나타난다는 건 안구 건조증을 이겨내는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눈이 빨개지면 걱정을 해주지만, 외모 지적을 하지는 않으니까.
쌩얼이라는 선택지를 가능하게 해 준 건 '코로나'와 '이직'이었다.
나는 2020년 초에 퇴사했다. 2019년 말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퇴사였다.
나는 5년 가까이 일한 직장에서 퇴사하여 2020년의 1년, 아니 최소 6개월은 온 세상을 여행할 계획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모두들 알다시피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라는 대재앙이 전 세계를 바꿔놓았다.
퇴사 날짜는 하루 이틀 다가오는 데, 내가 예약했던 항공편과 호텔들도 하나둘씩 취소되었다.
직장은 떠나야 하는 데, 내가 떠날 수 있는 곳들이 없어졌다.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 계속 놀기만 할 순 없어서 취직자리를 알아보았다.
나름의 고군분투를 몇 개월 동안 한 끝에, 다행히 다른 곳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취직 전의 몇 개월 동안 나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하여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나의 쌩얼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이젠 화장한 얼굴이 조금 낯설 지경이었다.
새로운 회사 면접도 마스크를 쓰고 보았다. 일 할 때도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첫 출근 날, 조금 고민하다가 쌩얼로 출근해버렸다.
그 후로 새로운 곳에서 일 한지는 어느덧 9개월이 넘어간다.
놀라운 것은, 이전 회사에서와 거의 '동일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에 대한 평판이 훨씬, 정말 훨씬 높아졌다.
(내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직접적인 칭찬 혹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에는 전에 내가 일했던 곳의 상사도 이직해서 와 있다. 나랑 3년을 같이 일했지만 일적으로 나를 아주 탐탁하게 생각한다고는 느끼지 못했던 상사다. 나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메마른 직장 내 관계를 유지했었다. 이 분이 오신다고 했을 때, 내심 지금의 평판이 좀 낮아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 분도 내 일처리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이전보다 나를 훨씬 더 신뢰하시는 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분 탓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평가가 다르다는 걸 알 정도이다.
갑자기 이런 차이가 생긴 까닭은 뭘까?
나 스스로 생각해 봤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쌩얼로 출근'이다.
화장을 한 상태보다 안 한 상태가 눈이 훨씬 편하다.
그리고 눈이 빨개지더라도 그렇게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도 중요!)
외모는 꾸미지 않을수록 덜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가끔 눈이 정말 빨개지더라도 나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외모에 쓰던 신경을 모아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집중해서 무언가를 해내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일을 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재미있고 보람차 졌다.
출근 전에 화장을 하느라 보내던 시간을 다른 데 쓸 수 있게 되었다.
준비해야 할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나 같은 경우는 10분은 잠을 조금 더 자고, (아침의 10분은 정말 긴 시간이다.)
10분은 스트레칭을 꼬박꼬박 챙겨서 했다.
얼굴이 쌩얼이다 보니 너무 화려한 옷은 어울리지 않았다. 편안하고 소박한 옷들이 잘 어울려서 그런 옷들을 더 입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옷들을 고르는 데 걸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훨씬 줄었다.
잠을 더 자고, 스트레칭까지 하고, 또 편안한 옷차림으로 출근했다.
그 전에는 뻐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예쁘지만 불편한 옷으로 출근했었다. 그때보다 현재 일 하는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그 컨디션 변화는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컸다. 확실히 일을 하러 가는 것도 덜 부담스러웠다. 일 하는 중에도 덜 피곤했다. 놀랍게도 퇴근하고 나서도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물론, 화장을 안 함으로써 나의 외모 지수는 이전보다 더 내려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쁘던 때보다 직장에서의 평판은 지금 현재가 훨씬 더 좋다.
실수를 하더라도 화장하고 꾸민 얼굴로 애교를 부리면, 약간 더 유하게 넘어가 줄 남자 직장 상사는 잃었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애교를 부렸다는 뜻은 아니다...... 오해 금지)
혹은 나를 이성으로 생각해서 접근하거나 연락할 사람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직장은 일을 하고 돈을 받으러 출근하는 곳이다.
애교는 남자 친구에게 하면 되고, 사내 연애만이 목표가 아니라면 인기에 연연한 필요는 없다.
사실 남자 직장 상사들도, 덜 예쁘더라도 일에 적극적으로 착수하고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을
'동료로서 좀 더 높게 인정한다'
외모의 매력을 잃고 대신 일에 대한 능력으로 인정받는 거,
실제로 해 보기 전에는 솔직히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화장기 없는 얼굴에 일만 열심히 하는 여성에 대한 긍정적이지 않은 편견이 있었다.
워커홀릭인 노처녀에 대해 세상이 만든 이미지를 보자. 까칠하고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것 같으면서, 히스테리 부리는 모습이 연상되게 만들어놨다. 정말이지 이 세상이 만든 짜증 나는 편견이다. 제길. 하지만 이건 세상이 만든 편견이지 절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어보니, 생각보다 꽤나 좋은 선택지였다.
결국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일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 상승이 상당했다.
자존감이 있고 나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서의 성격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적극적이 되었다.
일이 떨어졌을 때 웃는 낯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준비도 열정적으로 임하며 실적을 선 보일 때도 훨씬 자신감 있어졌다.
이런 나의 태도 변화는 직장 동료들과 상사에게도 더 좋은 영향을 미쳤다. 오히려 편안하게 더 잘 지낸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 상태의 나로서 다른 사람의 호감을 얻는 경험은 다르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 좋음을 모른다. 가장 꾸며지지 않은 나의 모습으로서, 나 자체로서 받아들여지는 기분이다.
혹시나, 나의 상황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아직 화장을 포기하지 못했다면,
이직을 하게 되거나 부서가 바뀌었을 때 혹은 지금 현재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때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컨디션이 정말 안 좋을 때, 혹은 생리 즈음일 때,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한 번 쌩얼이 가져다주는 능률의 상승을 경험해보면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에서의 일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이렇게 쌩얼로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잃는 것은 별거 없었고, 얻은 것은 컸다.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요즘 직장에서 발전하고 성장하고 나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