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벌거벗은 임금님들
"언니, 요즘 누가 이런 옷을 입어요. 요즘은 크롭티가 유행이에요."
"요즘은 레깅스보다는 조거 팬츠가 대세야."
"이 브랜드가 요즘 핫한데......."
유행이란 참 끝이없다.
이 유행을 따라잡았다 싶으면 저게 유행하고, 저 유행을 따라잡았다 싶으면 또 다른 유행이 시작된다. 어떤 겨울 코트라도 2년 이상 핫한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불가능하다. 분명 첫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 싶었는데, 여러 연예인들이 입고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다 보면 또 새로운 유행이 멋져 보인다. 작년에 산 옷은 촌스럽고 유행에 뒤떨어져 보인다. 결국 올해 계절의 실제 날씨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또 새로운 옷을 구입하게 된다. 뭐 사실 나도 이 촌스러워지는 것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유행은 절대 진리요, 유행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 유행은 어디서 왔으며 누가, 어떻게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왜 따라 하고 싶으며, 그러기 위해 지출하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고 싶었다.
일단 '유행'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이다. 특정한 양식이 일시적으로 추종을 받아 널리 퍼진다는 점에 밑줄 쫙- 그어본다.
유행은 많은 사람의 추종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패션'에 있어서의 유행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세련되게 보느냐 안 보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매우 민감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리해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을 살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사고 과정은
A라는 아이템을 사서 만약 입고 나간다면, 이 아이템을 입고 있는 나를, 사람들이 세련되고 멋지다고 생각할 것이다의 가정을 전제로 둔다. 그 전제가 없이 단순히 그 아이템만으로는 구입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감탄을 하고 칭찬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아마 속으로는 날 우러러볼 거야, 속으로는 내가 세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의 느낌이 구입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아이템을 착용한 내가 얼마나 멋지고 세련돼 보일까-'의 사고, 즉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은 그 마음으로 유행에 민감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유행이라는 걸,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요즘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것이 다시 가장 핫-한 것이 되었다. 유행을 하고 나서야 여러 가지 그 이유들을 찾아내긴 하나, 글쎄 그랬다면 하필 지금 이 연도에 꼭 유행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플리스의 유행도, 롱 패딩의 유행도, 크롭티의 유행도, 어글리슈즈의 유행도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유행을 하게 된 걸까?
레트로가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유행에는 어떠한 논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또한, 핫하다는 기준은 무조건 '상대적'이며 이는 현시대의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생기는 가치이다.
레트로라는 것이 요즘 유행이라고 언론에서, SNS에서, 유튜브에서, TV에서 선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나 혼자 고요히 아무런 접촉 없이 살고 있었다면, 갑자기 몇 년 사이에 레트로인 아이템들이 멋지고 힙해 보였을까?
아마,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어떠한 선동이나 뽐뿌 없이는 절대 갑자기 레트로 무드가 세련되어 보일 리가 없다.
이는 저절로 생긴 패션의 유행이 아니다. 트렌드 세터 그리고 그들 위에 있는 울트라 트렌드 세터가 전략적으로 유행을 설정하고 만들어 선동한다. 유행은 어떠한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연예인, 패션매체, 패션 기업 등을 통해 퍼진다.
이 트렌드 세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촌스러워질까 봐' 나 혼자 '뒤쳐질까 봐' 걱정하는 그 공포를 먹고 산다. 그리고 그 공포를 조성하는데 일조한다. 유행으로 삼기로 한 것들을 수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바꾸며 우리를 압박한다. '이래도 안 살 거야? 이래도 혼자 촌스럽게 지낼 거야?'라고.
몇 년 전에 산 코트를 입든, 올해 유행하는 숏 패딩을 입든, 나라는 사람의 가치, 사상, 생각, 인격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유행을 따라 하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을 다른 데 썼다면 오히려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행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세상은 숏 패딩을 입은 나를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게 나 스스로를 착각시킨다.
더욱더 별로인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신경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행을 따른 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떠한 타인들의 평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타인들이 인정해주는 패션은 멋진 것이고 타인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패션은 구린 것이다.
그럼 이 유행이라는 것을 왜 만드는 것일까?
자, 생각해보자. 만약 유행이라는 게 없다면 작년에 코트를 산 사람이 올해 또 코트를 살까?
교복처럼 유행이 없이 계속 지속되는 모양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면, 매 계절 매 연도마다 옷을 살까?
아주 낡아서 새로 사거나 수선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지금 현재보다는 옷을 훨씬 덜 살 것이다.
여기에 바로 유행의 이유가 있다.
이미 현대인에게 옷은 없어서 못 입는 것이 아니다. 옷들 자체는 차고 넘치게 많아 버려도 버려도 한가득이지만 '입을 옷'이 없어서 사는 것이다. 뜯어진 곳도 없고 멀쩡한 옷이 왜 입을 옷의 후보에서 탈락하는 것일까.
정답은 '그래야만 새로운 옷을 사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이미 물건의 과포화되어있다. 실용적인 용도로는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을 살 이유가 없다. 티셔츠, 니트, 카디건, 바지, 치마, 코트, 구두, 운동화, 원피스. 정말 옷에 관심 없고 옷 안 산다고 하는 사람도 앞에 언급한 종류 중에서 단 한벌도 비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남성의 치마, 원피스를 제외하고서는) 즉 사람들은 이미 일 년 내내 입어도 남을 만큼의 옷을 갖고 있다.
하지만 패션 산업은 이미 과포화된 옷장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옷을 팔아야 한다. 그것도 매 계절, 매 연도마다 막대한 물량으로 팔아 치워야 한다.
그래서 유행을 만들고, 뒤쳐질까 봐 걱정하는 공포와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다는 과시 심리를 이용해서 대중으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결국 그 누구보다 민감하고 빠르게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유행에 민감하니 세련된 사람입니다'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이는 진실도 아니고 과학적 법칙도 아니다. 그저 심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시즌이 지나면 바로 다른 목표를 제시한다. '호구님, 올해 세련되시려면 다른 걸 구입하셔야 합니다. 작년에 산 것을 그대로 입으면 촌스러워질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결국 유행을 잘 따라 함으로써 세련되려면, 이 유행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 구조에서 그저 돈을 대주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 나는 유행을 따르면서도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분명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개인의 취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공고하지 못하며 그 취향이라는 것도 보통은 결국 유행이 정해놓은 선 안에서의 소소한 취향의 차이인 경우가 많다. 아마 내가 추구하는 개인의 취향이 세상으로부터 심하게 촌스럽다는 평을 받는데도 그 스타일을 꿋꿋이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욕심 많은 임금님에게 사기꾼 재봉사들이 찾아와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완벽한 옷을 만들어 드릴 것이라고. 그리고 그 옷은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지금의 유행은 바로 저 옷과 같다. 이 옷을 입으면 당신은 멋지고 세련될 것입니다.라고 재봉사가 말한다. 실제로 그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세련되고 멋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재봉사는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진짜 그 옷 자체의 실체보다 다른 이들이 그렇게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돈을 지불하게 한다. 이미 옷장 안에 수많은 옷이 있는 데도 입을 옷을 없게 만든다.
게다가 나는 그 유행의 사대주의적인 면도 싫다.
지금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행하고 있으며- 아니 무슨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기만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그것이 가장 세련된 것이 되는지. 이는 뭐 논리도 없고 그저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시작을 해도 우리나라에서 하던가, 단순히 외국에서 유행한다는 이유 하나로 유행이 시작될 때는 진짜 유행을 위한 유행이 된 것 같다. 외국인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패셔너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옷이라는 것 자체가 남에게 보이는 것이다 보니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나도 충분히 인정하는 바이다. 마이웨이로 10년 전에 산 옷을 늘 매 계절마다 꺼내 입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무언가가 유행을 하고, 내가 그 물건을 사고 싶어 질 때, 단순히 그냥 산다-가 아니고 이 패션 유행이라는 건 결국 어떤 누군가가 만든 것이고, 나는 그냥 이를 공포심과 과시욕에 돈을 지불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관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호구가 되는 걸 정말 싫어한다. 호구가 될 때 되더라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기는 싫다. 거기다가 돈을 내라는 건 더더군다나 사절이다. 또한 단순히 마케팅으로 만들어진 세련됨에 다른 이를 찬양하고 부러워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그리고 세상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그 유행이라는 흐름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최소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입하는 것이지, 내가 잘나서 패셔너블하다는 착각을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유행에 뒤쳐진다고 해서 실제로 촌스러운 사람인 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똑똑하게 자본과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심지 곧은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굳이 유행을 따르고 세련되어 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업에 갖다 바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꼭 세련되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