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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굴 Feb 14. 2021

내 눈엔 내가 참 예쁘다

나를 찾아줄 왕자님 대신, 내가 먼저 날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 했을 때, 여자 신입생 중 가장 예쁘다고 손꼽히던 A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존재조차 사람들이 모르던 평범한 B라는 신입생도 있었다. 


처음에는 A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인기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그녀는 언급되는 빈도가 낮아졌다. 

입학 초에 CC를 하고 금세 헤어지고 난 뒤로 부터 그녀는 졸업때까지 쭉 솔로였다. 


그리고 처음에 외모로는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하던 B는 점점 인기가 많아졌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중심이 되어갔다.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많았다. 

CC도 했었지만, 그러고나서도 또 적극적인 구애가 이어졌다.  



놀랍게도 졸업할 때 쯤에는 모두들 B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A는 예쁘지만 매력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이 둘의 차이는 뭐였을까? 








패션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유행하게 되는 과정은 참 신기하다.


아주 옛날 어그 부츠부터 시작해서, 어글리 슈즈, 청청패션, 롱 패딩, 숏 패딩, 플리스까지.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당최 예쁜지 잘 모르겠고 오히려 못나 보이고 어색하던 것들이

남들이 패셔너블하다 하고 자꾸 보다 보면 점점 그 매력에 빠져서 나도 하나 갖고 싶어 진다. 



이상하지, 남들이 예쁘다 갖고 싶다 세련된다 멋지다 시크하다 하면

나도 어느샌가 그 물건들을 그렇게 보게 된다.


그리고 정말 안 보이던 매력이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게, 사람도 마찬가지다.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절대적인 미인, 미남은 굳이 그런 과정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매력을 잘 몰랐는데, 남들이 자꾸 멋지다, 매력이다, 분위기가 좋다, 예쁘다, 귀엽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리고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진짜로 그 사람의 매력을 깨닫게 되고,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경험이. 



다른 이들이 찬양하는 사람,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묘하게 은은한 빛이 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람을 조금씩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꼭 피부가 티 없이 하얗고 뽀얗지 않아도, 정말 햇살을 머금은 듯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 

꼭 마르고 팔다리가 길쭉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찰떡처럼 소화하는 사람.

꼭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쁘지 않아도, 표정의 다채로움과 표현에서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빠지면 답도 없다. 

이성이던 동성이던, 그 내면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매력은 그만큼 강력하다. 


사랑받는 사람은 더 사랑스러워진다.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의 얼굴 피부와 눈에서 묘하게 빛나는 그 사랑 받음의 흔적들은, 웃음소리와 눈빛과 말투와 조심스러운 행동 모두에서 매력을 뿜어내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아주 평범하다고 말해지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 사랑 받음의 빛은 정말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리 미인이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 그 빛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남들로부터 사랑받으려 하는가 보다. 

사랑받는 사람들이 보이는 그 명랑하고 톡톡 튀는 에너지의 매력의 빛을 동경하기에. 








그런데 이 매력이란 게 참 오묘해서, 남들로부터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을 받고자 아등바등하면 

오히려 그 매력이란 게 감소한다. 있던 매력도 빛을 잃고 칙칙해진다. 


모든 존재란 있는 그 자체로 인정받을 때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러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겉 표면은 잠시 반짝거리지만 곧 그 광택을 잃고 만다. 



나 스스로는 있는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멀리 있지 않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내면의 생각과 마음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 아주 가혹하게 대할 수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B의 비밀은 그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매력적으로 생각했고, 그 마음은 그녀의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냈다.

다른 이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매력과 자신감을 가진 B는, 점점 더 실제로 매력적으로 빛이났다. 


참고적으로 B의 이야기는 실화이고, 나도 그녀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녀는 어떻게봐도 객관적인 절대적 미인의 기준에 속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그녀만의 분위기와 태도와 행동이 조금씩 조금씩 사람을 끌어들인다. 


난 자연스럽게 그녀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B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스스로의 숨은 매력을 잘 발견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의 나는 나 스스로를 참 싫어했다. 

동양적으로 쌍꺼풀 없이 빼쭉 솟은 눈매, 볼륨 없이 마치 남자애처럼 마르기만 한 몸, 굽어있는 어깨와 목, 동그랗고 평면적이어서 넙데데해 보이는 둥그런 얼굴이 모두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뭔가 하나를 하면 중간 이상은 하는 데 최상위권이 되지 못하는 애매한 재능도 참 답답했다. 

예전의 나 자신에게 두는 기준치는 가혹했고, 도저히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요즘의 나는 나 스스로를 참 좋아한다. 

동양적 눈매는 자연스러운 나만의 인상을 만들어주며, 내가 좋아하는 시크한 옷 스타일에는 볼륨 없는 내 몸매가 잘 어울린다. 스스로를 예뻐라 하면서 위축되어있던 어깨와 등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고, 동그란 얼굴은 나름 귀엽고 어려 보이는 느낌이라 좋다. 

어느 분야에서 천재가 되지는 못 했지만, 중간 이상은 곧잘 해내는 능력치 덕에 취미 부자가 되어 삶이 풍부해졌다. 

요즘의 난 나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숨어있는 매력을 찾아내는 걸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내가 나 만큼은 마음먹기에 따라 맘껏 예뻐해 줄 수 있다.

그 누구와 비교하여 얻는 자신감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의 숨어있는 매력들을 발견하고 소중히 다듬어가는 것. 


그것은 언제든지 변하기 쉬운 (나이를 먹어가거나 병들거나 사회적으로 실패하는 경우 등등)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보다 훨씬 단단하고 안정적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상 나는 늘 나와 함께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의 존재감을 인지하게 한다. 


내 존재가 나 스스로에게 단단히 서 있으면,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주목하게 된다. 



내가 무시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도 무시한다. 

스스로조차도 믿지 못하는 존재를, 다른 이가 먼저 눈치채 주길 바라는 것은 신데렐라의 판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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