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대, 그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일이 없던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일이 있어 밖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근처 적당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료를 시키고 책을 읽으려 가방을 뒤적거렸는데, 아뿔싸 오랜만에 책을 놓고 나온 것이다.
그다음 일정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은 상태였다. 게다가 핸드폰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고 충전기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카페에서 두 시간을 보내는 것은 꽤 막막하고 난감한 일이다.
뭐라도 볼 거 없나 카페 전체를 샅샅이 스캔했다. 구석 코너에 있는 잡지책들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전부 여성 패션 잡지책들이었다. 패션잡지는 광고가 너무 많고, 보다 보면 물건을 사고 싶어 지는 욕심이 생겨서 미용실에서도 잘 안 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딱히 할 것도 없었다. 2시간을 그냥 멍- 때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패션 잡지를 펼쳤다.
오래간만에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서는 정말 외모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가 언급되었다. 대체적인 주제는 봄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떻게 꾸며야 할까였다.
예를 들자면, 봄꽃을 닮은 립 컬러, 방심은 금물! 봄 자외선 차단제, 봄날의 나만의 향수 고르기, 확찐자에서 벗어나는 다이어트 비법, 봄날의 플로럴 원피스 대탐험, 셀럽 픽! 봄에 어울리는 가방, 새 직장 사회 초년생의 명품백 고르기, 스타들의 봄 아우터, 악세서리 레이어드 팁 대방출 .... 하이고 간략하게 언급해도 끝이 없다.
여성이 봄을 준비하는 데 있어 이렇게 많은 분야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또 그 각각의 관리에 들어가는 돈과 노력과 시간이 매우 놀라웠다.
나도 여자이긴 하지만, 예뻐지고 관리하는 것은 무한대의 영역이었다.
적당히 꾸미고 멈추는 것이지, 전부 다 욕심내려면 하루종일 꾸미기만 해도 모자랄 것이다.
게다가 한 번에 관리하고 끝낼 수도 없다. 관리는 매일, 매 상황, 매 계절 다르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는 것은 물론이요,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되며, 운동도 해야 한다.
여기까지 신경 쓰는 것도 벅차 죽겠는데 최신 유행까지 따라가야 한다.
정말 꾸준히 관리하는 여자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또 없다.
게다가 요즘 여자만 꾸미나. 남자도 꾸민다.
남자도 화장품 바르고 옷 신경 쓰고 피부 관리받고 헤어숍도 다닌다.
바버샵을 다니면 최소 몇 주에 한 번은 가서 손질을 받아야 한다.
제대로 멋 부린 남자들 보면 들어가는 그 노력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나 역시 멋 부리는 걸 꽤 좋아했다(코로나가 되면서 과거형으로 바뀌었다).
옷도 평균 여성보다는 많은 편이다. 짧게 지나가는 봄, 가을 에는 매일 다른 옷을 입다 보면 계절이 지나가곤 했었다.
20대 초중반에는 정말 관심이 많아서 일상의 모든 관심사가 패션과 뷰티 쪽이었다.
매일매일 인터넷 쇼핑몰을 들어가 보았다. 오프라인에서도 열심히 옷을 보러 다녔다.
화장품에도 관심이 많았고 화장법에도 관심이 많았다. 거울을 늘 보며 그날의 피부 상태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여행 갈 일 있으면 사진에 잘 나올만한 옷들을 구입했다. 가서는 열심히 선크림을 바르느라 꽤 긴 준비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샐러드도 먹고, 적당히 운동도 하고, 몸매 관리도 아예 놓을 수 없었다.
잡지를 덮으며, 나도 참 열심히도 외모를 꾸몄었구나. 그리고 참 많은 시간과 돈을 썼구나. 라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의문 하나가 불쑥 솟아났다.
나의 찬란하고 해맑은 시절인 20대,
과거의 나는 외모를 가꾸는 데는 그만큼이나 신경을 썼는데,
나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는 얼마나 적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 시간들을 나의 영혼과 내면을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보냈다면,
현재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외모를 꾸미는 것이 절대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예쁘지 못한 사람이, 겉으로만 화려하다면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닐 것이다.
또한 겉모습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언젠가는 시든다.
보톡스를 맞고, 필러를 맞으면 어떨까. '현재 나이에 비해' 젊어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그 나이의 느낌과는 분명 다르다. 이미 꺾인 방향을 억지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자연스러울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40-50대와 20대는 다르다.
그에 반면,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이 웃으면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
그 어떤 화장이나 옷보다도 예쁘고 매력적이다.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40-50대라 하더라도 영혼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20대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세월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영혼을 가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영혼은 가꾸면 가꿀수록 더 강하고 아름다워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어진다.
어렸을 때의 순수함과 해맑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름답다. 하지만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쉽게 빛이 바랜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조금씩 단련해나가면, 영혼의 아름다움은 더 빛을 발한다.
역설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비결이다.
겉모습이 빼어나게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안에 담겨있는 영혼이 혼탁하면 결국 외모를 다 잡아먹는다.
하지만 수수한 외모라도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물론 사람의 본능에서, 외적인 부분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총 10의 노력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모든 10을 외모에 쏟는 것보다는
7-8은 내면에 쓰고 2-3은 외모에 쓰는 정도가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특히나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물론 나는 10을 내면에 쓰고 싶핟. 하지만 우리 모두 사회적 동물인 이상 그 기대치는 닿을 수 없는 이상이라고 해두자)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조금만 꾸며도 그 꾸미는 효과가 크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의 마음에 기분좋은 아름다움을 남긴다.
내가 말하는 영혼이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스펙이 대단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스펙도 좋은데 외모도 뛰어난 경우 완벽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만큼 그 사람이 가진 겉모습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없다.
이러한 완벽함은, 그저 나를 멀리서 보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완벽함이다.
진실로 매력적인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인격의 향기가 있다.
그 향기는 그 사람의 모든 면에서 풍겨 나오며 가까이 오랫동안 지낼수록 더 확실히 느껴진다.
단숨에 사로잡지만 결국 두통을 유발하는 향수의 독한 향이 아니다.
연한 새 잎에서 나는 은은한 풀향기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자꾸만 그 곁에 머물고 싶어 지는 향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하겠지만, 나도 정확한 방법은 모른다.
다만, '남에게'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 인자한 척, 착한 척, 지혜로운 척을 한다면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에 곧 들통날 것이다. 척은 유지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는 것과 같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 스스로 아주 솔직한 내면에서부터 좋은 쪽으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
나 스스로가 오롯이 아름다운 인격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외모를 가꾸는 것보다 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더 알기 어렵다. 소홀히 하고 가면을 쓰기 쉽다.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다.
꾸준히 운동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노력해야 한다.
몸도 그러한데,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갖추는 것이 단기간에 될 리가 없다.
나의 경우는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깨달은 점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내 인격을 위해 하는 일들이다.
다 각자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서 깨달을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공부를 통해서, 또 누군가는 사람들과 함께 많은 일들을 겪으며 성숙해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가꾸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늘 신경 써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당신이 외모에 들이는 노력보다는 당연히 더.
성형수술을 하고 화장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일 결국 모두 궁극적으로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행복해지는 길이란 무엇일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행복을 위한 수단이 어느샌가 목적으로 뒤바뀌어서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외모지상주의를 무조건 탓하며 핑계를 대지는 말자.
외모지상주의인 사회의 책임이 꽤 크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전부 세상이 강요해서 만들어진 거라면, 결국 삶 속에서 나의 주체는 없다.
외모를 치장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극도로 치우쳐진 그 우선순위를 겉모습 쪽에서 내면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얼굴은 성형으로 바꿀 수 있다. 피부도 돈을 내고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인격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무조건 아름다워 질 수 없다.
나 스스로가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돈이 많고 풍족하면 가난의 절박함과 곤궁함을 모를 수 있다.
그래서 그늘 없이 세상의 밝은 면만 바라보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는 좀 더 쉬울지도 모른다.
단편적으로 사람들은 부잣집 애들이 오히려 더 착하고 바르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 식이면 재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하고 해맑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벼락부자는 갑자기 마음이 천사가 될 테고 말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면을 보기로 결정했는 지다.
부잣집 애들이나 티 없이 밝게 지내지, 돈 없으면 안 돼, 라는 시선인지.
돈이 많건 적건 마음이 아름다운 건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할 건지.
나는 내 영혼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시선을 선택할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나 스스로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한 사람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영혼에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 관리를 받고,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고, 네일을 하고, 머리도 바꾸고, 잘 어울리는 옷과 신발을 신는다.
마음의 근육을 기르고, 마음의 외모를 치장할 것이다.
난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영혼이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