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떻게 사람이 늘 최선을 다해? 기계도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돌리면 고장이 나는데'
호모 워커스도 아니고, 호모 베스트스도 아니고,
도대체 한국인은 왜 이렇게 늘 최선과 노력을 다하도록 강요받고 또 스스로도 다짐하는 걸까.
난 정말이지 그놈의 '늘 최선'이라는 말이 싫다.
어떤 시험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놀고 있다고 하면
첫 번째 사람들은 일단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나 매우 안쓰러워한다.
속으로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지레짐작하면서.
그런데 두 번째,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그 사람이 백수인 시간에 대해 슬퍼하지도 자격지심을 갖지도 않으면서 마음 태평하게 잘~ 지내면 오히려 답답해하고 화를 낸다. 그리고 정신 차리라며 오지랖이 폭풍같이 쏟아진다. 아니 아까는 안타깝다며, 왜 막상 잘 지낸다니까 오히려 난리인 건데. 왜 늘 노력해야 하는건데?
얇고 길게 사는 게 목표고요. 야망과 원대한 꿈을 목표로 마구마구 나아가기보다는 유유자적 다니면서 이것도 체험해보고 저기도 놀러 가 보고 느릿느릿 살고 싶어요. 결혼, 육아는 당연히 선택이고요. 직장을 다니던 프리랜서를 하던 공무원을 하던 대기업을 하던 제가 생각해서 원하는 길을 결정하고 싶어요. 꿈은 일 안 하고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거예요.
이 말을 명절의 친척 어른의 앞에서나, 회사의 면접에서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일반인의 기준을 많이, 많이 뛰어넘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세상은 늘 열심히, 앞을 향해서 노력하고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적인 선으로 생각한다. 무조건 최선이 바른길이자 지름길인 것처럼.
진짜, 정말 그럴까???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숨도 쉬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성공하면 다 행복해할까?
20대 초반 대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의 해외여행 방식은 무조건 최선을 다해 많이 보기였다.
꼭두새벽같이 일어나 호텔의 조식을 거의 흡입하다시피 하고, 모든 체력이 소진되어 바닥이 보일 때까지, 혹은 이미 바닥임에도 더 많은 관광지를 방문해서, 더 많은 인증샷을 남기는 것이 여행을 관통하는 주요 목적이었다.
하루에 너무 많은 곳을 가다 보니, 각각의 장소에 머무르는 시간은 짧아졌고 덩달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 장소의 역사와 의미를 억지로 우겨넣어 어떠한 패스트푸드 같은 감동을 느끼지만, 뭔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깨달음은 없었다. 큰돈과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써서 해외에 왔는 데, 일할 때보다 더 열심히 살고 쉬지도 못했다. 관광지를, 쇼핑을, 음식을 오로지 맹렬히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만 있었다.
그렇게 잔뜩 최선을 다해 쉬지도 않고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면 늘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왜 그렇게 전투적으로 여행을 마치 일하듯이 다닐 수밖에 없었을까?
전 세계 여행지를 가 보면, 한국인이 제일 부지런하다고 한다.
제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정말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가장 늦게 숙소에 들어간다.
하다못해 휴양지로 알려진 곳에서도 한국인들은 늘 바빠 보인다.
조식도 먹고 마사지도 받고 관광도 하고 수영장에서 인증샷도 찍고,
최선을 다해 그 일정을 채우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손해 보는 느낌을 받는다.
늘 열심히 뭔가를 하는데,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처음 이 여행을 온 목적이 뭐였지?'
어느 순간부터 그런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여행을 많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성취하려고 온 게 아니라, 항상 그다음 계획을 향해서 이동하려고 온 게 아니라, 여행 그 순간을 즐기려고 온 거였는데.
그다음부터는 계획을 분단위, 시간 단위로 세우지 않았다. 여행의 1부터 10까지 모든 것을 다 사진으로 찍어 기록에 남기던 것도 관두었다. 비행기만 예약해 놓고 아예 숙소도 없이 떠날 정도의 무계획은 아니었지만, 여유 있게 큼지막한 계획만 대충 세워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구엘공원, 그 외에는 뭐 알아서 내키는 대로.
한 나절에 하나의 계획, 그리고 그 마저도 디테일은 내 마음대로 그 순간을 따라서 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보인 독특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연인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던 기억, 끝내주는 햇살과 푸르른 잔디밭을 보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가방을 메고 누워 낮잠을 잤던 일, 게스트 하우스를 같이 쓰게 된 핀란드 친구와 함께 잘츠부르크를 돌아다녔던 기억은 그 어떤 계획으로도 성취할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
난 이전보다 덜 열심히(?) 여행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여행의 만족도는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경험, 체험, 행복, 즐거움, 삶에 대한 생각, 방향, 사람에 대한 애정들을 더 많이 성취하게 되었다.
노력을 덜 했는데, 오히려 성취도는 올라가는 상황,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마음 편하고 즐거웠다는 것.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가장 값진 삶의 진리였다.
가끔 내 삶의 어떤 순간들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고 느낄 때, 나는 이 시간을 완벽한 날씨와 멋진 풍경 앞에서 멈춰 서 있는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지치진 않았는지, 지금 이 곳에서 머물며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미래만 보느라 놓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들을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단순히 최선을 다해서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서는
정작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놓치고, 수박 겉핥기 식의 성취만 얻어
모든 에너지와 체력을 소진한 채 이 삶이라는 여행을 마무리짓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조금 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오히려 삶에 대해서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난 필요할 땐 최선을 다하겠지만, '늘' 최선을 다하진 않고 싶다.
근육을 발달시키고 제대로 쓰려면, 힘을 줘서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을 빼고 스트레칭을 해서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