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쉬는 것조차 우린 맘대로 못 하는 걸까.
무조건 모든 사람이 안식년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일단, 먼저 가정하는 건 현재 학업, 일,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한 모든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고, 발전하는 느낌이 들고, 몰입되고, 행복하고, 편안하고, 걱정되지 않는 감정들 중
하나라도 확실히 해당된다면, 굳이 꼭 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이건 아닌 것 같고, 내 길이 맞나 싶고, 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질 때.
즉, 쉬어가 보고 싶지만 그 쉼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일반 사람들이 쉬지 못하는 이유들에 대해 반박해보겠다.
(돌려 말함 없이 뼈 때릴 수 있음 주의)
한 번 쉬면 다시 열심히 살기 힘들 것 같아서 못 쉬겠어,
혹은 쉬고 싶어도 그 시간을 잘 보낼 용기가 없어,
혹은 쉬면 불안해서 못 쉬겠어.
이 이유들에 대해서 하나씩 언급해보기로 하자.
첫번째, 한 번 쉬면 다시 열심히 살기 힘들 것 같다.
이 말에는 조금도 쉬지 않고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더 옳은 길이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한 번 쉬어봤더니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힘들게 살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건,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이전의 삶의 방식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러니 오히려 잘 된 거 아닐까?
한 번 쉬고나니 다시 이전으로 못 돌아간다. 그건 이전이 너무 가혹한 삶이었었던 것이다.
가혹한 삶을 지속하는 것이 훨씬 더 최악이다.
사람은 푹 쉬고 기운을 차리고 여태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그. 럼. 에. 도 불. 구. 하. 고’ 다시 도전하고 싶고 노력해보고 싶은 길을 가야 한다.
평생의 열정을 어떤 길에 쏟을 예정이라면,
그런데 돈 때문에, 혹은 사람 때문에, 체력 때문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면,
번아웃이 와서 모든 걸 완전히 놓아버릴 지도 모른다.
일부러라도 최소한 한 번은 쉬어가면서 한 번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여전히 그 길이 내 길이고,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 다신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이전보다도 좀 더 목표를 명확히 할 수 있고, 매진하는 과정도 훨씬 덜 힘들다.
속으로는 쉬어야 함을 자각하고 또 휴식을 갈구하면서도
마지못해 지금 현재의 경력을 다시 쌓는 일이 두려워서 쉬지 못하면,
계속 달리고는 있지만 속도는 매우 느릴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푹 쉬고 다시 목적지를 점검하고 달린다면? 처음에는 뒤쳐져 있지만 마라톤이라는 인생에서는 결국 역전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달리는 과정도 힘들지만 즐겁게 달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쉬고 싶은 데 그 시간을 잘 보낼 용기가 없어서 못 쉬겠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솔직하게 팩트 폭력을 시전 하자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조차 스스로 운용하지 못할 인생이라면 그것이 당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아가면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런 것 마저도 용기를 낼 수 없다면 도대체 용기는 어디다가 쓰라고 내고 있는 건가.
그냥 세상이 하라는 일 꾸역꾸역 해낼 용기?
그건 용기를 내서 하는 게 아니고 용기가 없으니 고생하며 버티기라도 하고 있을 뿐인 거다.
다른 사람을 다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용기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마음대로 쉴 몇 개월의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자문해봐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자유에 대해 따라오는 무게를 단 1g도 지지 못하겠다는 자기 고백이요, 부끄러운 고해성사다.
목숨 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거나 불의에 맞서 싸울 용기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살아내 보겠다는 그 용기조차 못 낸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나.
그렇게 그냥 아무것도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나라는 개인의 DNA에서 오는 특질은 내 삶에서 단 하나도 없다.
그냥 이 시대의 평균적인 삶이라는 바이러스의 숙주로, 바이러스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삶일 뿐, 나라는 사람만이 가진 특질 따윈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쉬면 불안해서 못 쉬겠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또 되묻는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살아가는 건 두렵지 않냐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나의 삶을 위해 쉬어보지 못하고
그저 학업, 시험, 일, 결혼, 육아만 하다가 노후를 지나 임종에 다다르는 삶이 더 불안하지 않은가?
나는 그런 삶을 그저 살아나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그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게 더 불안하다. 그리고 불안해서 못 쉴 사람 중에, 일상에서 이미 평온함을 갖춘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타입의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에서도 불안할 이유를 찾아내고 걱정한다.
쉬어서 생길 일들, 즉 아직 오지도 않았고 올 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는 사람은,
그냥 늘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 사람들이다.
솔직하게 말하자. 그런 사람들은 불안해서 아무런 ‘도전’ 도 못할 것이다.
오직 할 수 있는 선택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면 좋다고 말하는 일들 뿐이다.
결혼 안 하면 불안해서 결혼할 것이고, 애 안 가지면 불안해서 애를 가질 것이다.
집 안 사면 불안해서 집 살 것이고, 주식 안 하면 불안해서 주식할 인물들이다.
본인이 스스로 그런 사람임에 대해 자각하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보통은 병식(insight)이 없다.
그 막연한 실체 없는 불안이라는 줄로 스스로를 꽁꽁 둘러매고서는 갑갑해하지도 않는다.
너무 지나치게 몰아붙였나. 하지만 나는 쉬고 싶지 않은 데 억지로 쉬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데 그러지 않는 핑계들에 대해,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친구들의 수다 처럼 그냥 그러느냐 남의 인생이니 뭐~ 하고 넘어가지 않고
솔직한 마음으로 꼬투리를 제대로 잡아보았을 뿐이다.
결국 쉬는 건 각자 스스로의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쉬어 보지 않은 사람이 쉼을 걱정하는 경우는 있지만, 쉬어 본 사람이 쉼을 후회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