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해왔던 것을 중단할 수 있는 용기
미국의 자기 계발서들, 예를 들어 뭐 4시간만 일하라던지, 추월 차선을 타라던지 등등을 보면 좀 짜증이 나는 부분이 있다. 뭐만 하면 지금 하는 지루한 회사일을 관두고 사업을 벌이란다. 뭐 예를 들어 글을 쓰던지, 발명을 하던지, 뭔가를 유통하던지 하면 무. 조. 건. 지금보다 돈 많이 벌거라고 그런다. 좀 어이가 없다. 지(?)야 그렇게 해서 돈 벌었으니 책을 썼겠지만,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벌여서 그게 성공하기가 쉽냔 말이다. 그리고 지도 운이 더럽게 겁나 좋아서 된 걸 수도 있는데, 운 따윈 하나도 없고 그저 지가 겁나 잘나서 다 된 거란다. 솔직히 재수 없다.
내가 무조건 옳아요. 나처럼 하면 성공해요.
그렇게 확신적으로 쓰면 사람들이 훨씬 더 좋아하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쉽다. 사람들은 진실의 불확실성보다는 뭔가 확실한 동아줄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베스트셀러를 읽은 모든 사람이 다 성공했게?? 아 물론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 작가들은 그러겠지, 책 대로 제대로 따라 하지 않아서라고. 그럼 책을 따라 할 만하게 쓰던가....... 아무튼 나는 그런 무조건 성공, 그리고 성공은 무조건 당신의 노력에 달려있을 뿐!이라는 말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나는 무조건 사업 등등으로 성공하기 위해 지금 하는 일을 관두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보다, 올바른 방향을 찾고 싶을 때 관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쉽게 성공에 휘둘리는 것도 현재 하는 일에 대해 납득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현재의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이유모를 그 답답함이, 자꾸 다른 어떤 새롭고 신나는 길로 가고 싶은 갈증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자기 계발서들은 그 갈증을 먹고사는 것이고.
한국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버티는 것에 참 능하다.
아무리 요즘 세대는 예전과 다르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정말 열악한 근무환경과 극악의 노동강도에서도 버틸 만큼 버티고 버티다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그만두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어서 관두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 몸이든 마음이든 병 하나 없이, 약 한 번 안 먹어본 직장인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니 입학하기도 전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길은 정해져 있고 그 길을 무조건 남들보다 빨리 꾸준히 뒤처지지 않고 앞서 나가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라고. 그렇게 다들 오로지 그 목표만을 위해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사립 초등학교를 다니고, 선행학습을 힘들게 하고 그 외의 모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대학 뒤로 미루면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다. 청소년 동안 배운 것이란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조금도 쉬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지나 성인이 된다. 참, 너무나 슬프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른다. 그저, 버티고, 버티고, 안 되면 이 악물고서라도 버티고, 내가 지쳐 쓰러지고 죽을 것 같아도, 그런 나약한 스스로를 다그치고 비난하면서 버틴다.
누군가는 그러면서 '세상이' 일컫는 성공을 하고, 누군가는 그냥저냥 만족하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간다. 세상은 성공을 한 사람의 노력을 보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라고 말한다. 그게, 그 이유가 아닌데.
우리는 지도를 보지 못한다. 아니, 지도를 차근차근 볼 시간도 없다고 어렸을 적부터 세뇌되었다.
그냥 그저 앞으로 나가기만 하라고, 여태까지 달려온 길 따윈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의 방향 따위 생각하지 말고.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이 길이 맞는 건지, 진짜 내가 이렇게 이 일에 목숨을 걸고 그냥 앞으로만 나가도 괜찮은 건지. 대부분은 뭔가 직감한다. 예민한 사람은 조금 빠르게, 무딘 사람은 조금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뭔가 '이건 좀 아닌데......'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 작은 직감은 수 없는 세상의 압박 (가족, 친구, 애인, 언론, SNS 등등)에 눌려 곧 흩어져버린다. 그러고선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렇게 이상하게 내가 불편한 상태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 점점 내가 원하지 않거나,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 목적지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제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춥고 눈보라가 몰아쳐져,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나는 따뜻한 열대지방에서 햇살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기 위한 목적지를 찾아가고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대로는 에베레스트산 정상이 목적지로 설정된 길 같다. 나에게 찾아올 일광욕을 생각하며 더 힘을 내서 올라가 보지만, 오히려 열대지방으로부터는 더 멀어지게 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것과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간다.
뭔가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느꼈던 것들을 무시하고 그저 앞으로만 가면 이런 일이 생긴다. 처음에 운이 좋아 얼결에 방향을 잘 잡았다면 내가 원하는 열대지방에 도착했을지도 모르나, 운이 없게 처음에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노력해도 점점 더 추워지고 힘들어진다.
이때다, 제발, 지금이라도 잠시 멈춰 서고 목적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보기 위해 지도와 나침판을 꺼내야 할 때가.
일단, 멈춰 선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한 없이 칭찬해주자. 이 세상에는 본인이 다 스러져 가면서도 가족을 위해, 주변을 위해, 그리고 세상의 눈치를 위해 차마 멈추지도 못하고 평생을 살아간 수많은 인류가 있었다. (아마 인류의 역사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멈추는 것이 가능한 시대라는 것이 운이 좋았고, 그렇지만 너무나 하기 힘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이다. 우리의 운과 용기를 한 없이 칭찬하자.
충분히 지도를 살펴보자. 내가 처음 시작했던 곳부터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내가 지금 현재 있는 곳을 확인하자. 물도 한 모금 좀 마시고 잠시 쉬어가면서. 내가 목적지로 삼았던 곳은 어디였는지, 왜 목적지로 삼았었고, 그 이유가 나에게 잘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이 정말 이 길이 맞는 건지 확인해보자.
아무리 지도를 봐도 도대체 길을 모르겠다면, 그리고 목적지를 모르겠다면, 혹은 가는 방향을 모르겠다면 나침판을 써보자. 이 나침판은 정말 예민해서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마냥 흔들려서 방향을 알기 어렵다. 내가 쓸 수 있는 나침판은 단 하나이다. 바로 나 자신이다. 오로지 나 자신만 나 스스로의 나침판이 될 수 있다. 내가 힘든지, 내가 원하는지, 내가 행복한지, 내가 성취감을 느끼는 지의 여부는 그 누구도 대신 방향을 잡아줄 수 없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도, 나의 배우자 혹은 연인도, 나의 선배나 스승님도, 그리고 세상과 책도 절대 정확히는 모른다.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절대 대신할 수는 없다. 오로지, 오로지 나의 마음과 생각이 이끄는 방향과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오직 나만히 그 미묘한 방향의 떨림을 인지할 수 있다.
지금은 좀 힘들지만 내가 원하던 길이 이 길이 맞는구나,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구나.라고 납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스스로의 납득을 위해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을 쓰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하다. 처음 가보는 길, 헤매는 길은 실제로는 같은 거리라도 훨씬 힘들고 훨씬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납득해서 인지가 된 길은 같은 거리라도 훨씬 맘 편히 쉽게 갈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콧노래도 흥얼거리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원래 가던 길을 그대로 가게 되더라도 내가 왜 이 길을 가는지, 제대로 납득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해도 지금 이 길이 도저히 아닌 것 같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알아봐야 한다. 알아보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귀찮고 겁이 난다고 해서 그냥 현재의 길을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언뜻 빠른 길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가장 돌아가는 것이다. 틀린 방향으로 더 많이 갈수록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더 멀고 고난해진다. 너무 고난하고 막막해서 포기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면, 정말 오롯이 내가 나침판이 되어 결정한 길로 방향을 틀게 된다면, 이제는 다시 길을 잃게 되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다. 지도를 보고 나침판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니, 또 길을 조금 잃게 되더라도 금방 다시 방향을 찾아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길치라도 지도를 열심히 보면 조금 늦더라도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지만, 길을 잘 찾는 사람도 지도 없이 무턱대고 걸어 나가면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앞서 자기 계발서를 비판했듯, 나도 알고 있다. 이렇게 잠시 멈춰서는 것만으로도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모든 용기를 끌어모으고 모아 쥐어짜야지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용기를 모으고 모아도 이 힘든 걸음을 멈추지조차 어려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시작 전이 가장 무섭고 두렵다, 만약 정말 너무 겁이 나면 그냥 '시작'까지만 해본다고 생각하자. 진짜 멈추지 말고, 그냥 멈추는 것을 시작하는 것만이라도 상상해보자. 만약 멈추면 어떻게 될까, 일단 잠시 쉬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뭘까, 나에게 그런 기회가 혹시나 주어진다면 난 뭘 하고 싶을까. 그냥 그런 가정과 상상만이라도 열심히 해보자. 멈춤을 상상하는 스스로를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비난하지 말고, 그 용기를 칭찬해주면서 목표를 '시작' 정도까지만 잡아보자.
만약 내가 나침판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땐, 일단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자. 정말 아무런 자책감 따위 느끼지 말고 그냥, 제발, 쉬자.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도 쉬어야 한다.
내가 지금 어깨가 너무나 아픈데 계속해서 어깨를 쓰는 일을 한다면 근육과 인대는 끊어져버린다. 그렇게 되면 회복하는 데 정말 오래 걸리고 후유증이 평생 남을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어깨를 영영 잘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어깨를 쓰는 일을 멈추는 건, 나 스스로가 나약하고 정신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다. 제발, 꼭 필요한 일이다. 남에게 주는 피해 그런 건 일단 나중일이다. 나 스스로를 파괴시키면서까지 남에게 도움을 줘야 할 필요는 없다.
뭔가, 지금 현재 이건 좀 아닌데, 라는 걸 느낀다면,
하지만 돌아가는 게 무섭고 여태까지 해온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게 무서울 때,
인생에서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그런 고민이 들 때.
돌아가는 걸 겁내지 말자. 여태까지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되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 대신 다른 사람이 납득해주는 길을 갈 순 없다. 그런 건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도 해줘서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가는 길은 내가 납득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