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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굴 Mar 21. 2021

꼭 결혼을 해야 할까?

누가 남의 인생에 참견할 수 있을까



나는 결혼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이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것이고, 삶의 선택은 오로지 그 본인만이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다. 타인이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해 멋대로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자신일 확률이 높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타인이 간섭하는 것은 엄청난 무례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짬뽕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상사가 아니야 너는 짜장면이 먹고 싶을 거야, 라며 내 몫으로 짜장면을 시키려고 한다. 

아니, 저는 짬뽕이 먹고 싶은데요?라고 말해도 

내가 짜장면 먹어봤는데 맛있어, 그러니까 너도 짜장면 먹어. 아 물론 난 짬뽕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라고 말하며 억지로 강권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생각만으로도 속이 답답해진다. 


그런데 결혼에 있어서는 다들 이렇게 한다. 

내가 해봤더니 괜찮아. 그러니 너도 결혼해. 나는 결혼 안 한 삶은 잘 모르지만 별로 일 것 같아. 너도 속으론 결혼하고 싶을 거야.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짬뽕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건 안하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이니까. 


결혼은 삶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선택은 각자 개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두 번째, 결혼을 안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혼을 안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일을 떠올려봐도 별것이 없다. 다들 말하는 외로움? 노후 걱정? 아플 때의 문제? 일단 이 3가지 모두는 결혼을 해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지금 현재 독거노인, 노후가 불안정한 경우, 아프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노인분들은 결혼을 했던 분들이다. 오히려 확률적으로는 결혼 안 한 사람이 더 그런 일을 겪을 확률이 낮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겠다고 결심하면, 위의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미리 대비하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 양육을 하지 않으면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자금 마련이 훨씬 더 쉽다. 혼자 살 때 돈을 모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면 된다. 가까운 친구들이 결혼을 해서 육아를 한다면 잠시간은 만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녀들이 대학교에 가게 되면 그분들도 다시 친구를 찾는다. 어머님들끼리 얼마나 잘 만나고 놀러 다니시는지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여러 가지 커뮤니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고 출가시키고 나니 노후에 외로움을 느끼는 기혼자들이 많다. 외로움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 결혼 유무가 문제가 아니다. 


아플 때 주변에 가족이 없는 것은 분명 서러울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그 점이 무조건 해결되지는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가족이 계속 상주하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병원의 입원실을 가보면 내내 서로 싸우는 배우자들도 정말 많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결국 늘 내 옆에서 일관된 케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간병인뿐이다. 가족은 적당히 들를 때 가장 반갑고 좋은 존재이다. 


결혼을 안 해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혼해도 생길 수 있는 일들이다. 






내가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남에게 조언하는 건 의미가 없다. 

사실 나는 결혼을 했다. 아니 이렇게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놓고 본인은 했다고?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결혼이 괜찮았다고 해서 남들에게 꼭 좋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연애를 처음 시작해봤다고 가정하자. 나는 남자 친구와 하는 모든 일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서, 연애를 마구 추천하고 다닌다. 연애는 꼭 해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알다시피 나의 연애와 남의 연애는 완벽한 독립변수다. 나에게 주는 연애의 의미와 남이 느끼는 연애의 의미는 절대로 같지 않다. 반대로 내가 쓰레기 같은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해서, 남들의 연애가 다 별로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한 경험이 다른 이에게 조언하는 데 있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결혼에 있어서 만큼은 다르다. 자신의 단 한 번 (아 혹은 두세 번?)의 경험이 마치 인생의 진리인 마냥 떠든다. 게다가 결혼한 지 5년 미만이라면?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내 결혼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에게 결혼을 조언하지 않는다. 

남과 나는 모든 조건이 다르며, 배우자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도 다르고 감정도 다르다. 

나의 결혼은 다른 이의 결혼과 완전히 다르다. 






결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굉장한 무례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매우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남의 개인 영역에 대해 침범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런데 결혼은 다른 이의 사생활 그 자체이다. 


다른 사람이 입은 속옷 색상에 대해 물어보고, 왜 그 옷을 입었으며, 앞으로는 무엇을 입는 게 좋을지 조언하는 건 미친 짓이다. 남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눈은 어떻게 하라 하고, 코는 수술해보라 하는 건 정신 나간 오지랖이다. 


그런데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완벽한 사적인 영역에 대해 남이 멋대로 판단하고 권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참견하고 싶어도 꾸욱 참는 것이 맞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모두 다 말할 수는 없다. 






결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당사자뿐이다. 

다른 이들은 정말 아무런 책임도 가지지 않는다.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발언권도 없다. 어떤 결혼의 결과에 대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당사자뿐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불행에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상하고 도와줄 자신이 있으면 조언하라.  

하지만 대부분은 조언은 조언대로 실컷 하고, 불행은 불행대로 또 조롱한다. 당사자는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결혼을 안 할 땐 안 해서 고통, 이혼할 땐 또 이혼해서 고통. 



부모라고 해도 자녀의 결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녀의 결혼으로부터 생기는 결과를 부모가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간과 순간에 대해 부모는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 결혼 생활은 자녀가 살아가는 시간이지 부모가 대신 살아가는 것이 아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꼭 해야 하는 일이란 건 이 세상에 없다. 

각각 개인의 삶과 자유는 일반화되어 똑같아질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나쁜 선택일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선택 혹은 모든 사람에게 나쁜 선택은 없다. 


게다가 결혼은 인류에게 문화가 발생하면서 생긴 제도이다.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 이는 문화적, 제도적, 법적으로 만들어진 공언된 약속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의 대부분은 결혼 없이 지내왔다.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은 인공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인공적인 발명품을 모든 사람이 꼭 해야 하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결혼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가 아니다. 






반대로, 결혼 한 사람을 불행하게 보는 시각도 문제가 있다.

정확히 같은 원리로 결혼을 하기로 선택한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 결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시댁을 방문하고 제사를 지내고(본인이 괜찮다면) 아이를 낳는 것을 구시대적이라고 매도하는 것 역시 무례한 일이다. 


내가 결혼의 여성차별적인 면에 대해 분노했다고 해서, 다른 이의 결혼이 무조건 희생과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럴 권리도 없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나의 상황과 다른 이의 상황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 상황과 생각을 바탕으로 남의 결혼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느 쪽이든 잘못되었다. 








20대 중반에는 우리가 결혼에 대해서 많이 자유로워진 줄 알았다. 

하지만 30살이 넘고 나니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았다. 

직접적, 간접적으로 결혼에 대한 압박과 선을 넘어선 참견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결혼을 하건, 하지 않았건 모두 온전히 자기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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