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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굴 Jan 13. 2021

성형, 찬탄과 부러움과 경멸과 혐오가 공존하는

성형에 대한 여자들의 양가감정





여자들은 성형에 대해 매우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기도 하고, 한 사람들을 비난하면서도, 가끔은 부럽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복합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억울함 마음이 든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극단적인 반감이나 극단적인 맹신까지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성형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안 드는 여자는 거의 없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어디만 하면 더 예뻐질 텐데라는 말을 듣게 되면 특히나 더 그렇다. 



나는 어쩌다 보니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술이나 수술을 할 계획은 딱히 없다. 


이렇게 언급하면 내가 무슨 성형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거나 안타깝게 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와는 조금 핀트가 다르다. 

나는 어떠한 생각이나 확고한 신념으로 안 한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냥저냥 좀 못생겼어도 살아가지 뭐라는 느낌으로 지내다가 안 하게 된 케이스다. 



사실 그래서 별 생각이 없었다. 성형을 해서 놀랄 정도로 예뻐진 케이스를 보면 순수하게 감탄했다. 성형 전이 더 개성 있었던 경우를 보면 속으로 살짝 안타 까웠다. 특별한 관점이나 생각 없이, 성형에 대해 정말 보이는 결과 그대로 단순히 생각했었다. 뭐 할 수도 있고, 근데 어쩌다 보니 안 한 상태였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나이를 먹고 30살이 넘어가면서부터 오히려 성형에 대해서 조금씩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꾸 주변에서 성형이나 시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면서 자꾸 부추기는 소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성형수술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주변 사람이 성형 수술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뭐라 할 권한이 없다. 당연히 각 개인의 결정을 존중한다. 


같은 측면에서, 나도 성형을 안 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존중을 받고 싶어 졌다. 

성형 수술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수술을 하지 않는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이에 대해 한 번쯤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싶었다. 



성형을 해서 얻는 득에 대해서는 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테지만, 안 해서 얻는 득도 나름 있다는 것은 듣기 쉬운 이야기가 아니니까. 







첫 번째, 수술하면 정말 무.조.건. 예뻐지는 걸까?

사람마다 미에 대한 취향은 모두 다르다.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얼굴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 다 똑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수수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쌍꺼풀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외꺼풀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성형을 추천하는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외모가 나랑 다를 수 있다. 다른 이의 취향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되고 싶은 나의 외모이다. 그러니 나의 취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외모에 대한 취향이 아예 '없는' 것은 드물다.)


결론적으로, 나는 개성이 묻어 나는 얼굴을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이건 나의 본능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에이 여자들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이목구비 뚜렷하게 예쁜 스타일 되고 싶어 하는 거 아냐? 그러면서 질투하는 거지.”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진짜 진심으로 나는 자신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얼굴을 더 좋아한다. 


(서구적인 얼굴이 안 예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개성 있는 스타일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그걸 내가 남자가 아니니 들이댈 수도 없고 증명할 방법이 없을 뿐이다. 

아마 내가 남자였다면 난 정말 그런 여성들에게 열심히 구애했을 것이다. 




갑자기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추구하는 취향의 얼굴은 성형으로 쉽게 만들기 어려운 스타일이라는 거다. 

(대중, 다른 사람들, 혹은 이성이 아닌 '나의 취향'에 밑줄 쫙- 긋는다)


그래서 성형 후 대중적으로는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왔어도, 나에게는 비싼 돈 주고 수술받아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서 멀어진 셈이다. 

이 세상에서 내 얼굴 가장 많이 보는 사람 1순위는 단연코 나 스스로이다. 그런데 굳이 돈을 들여서 다른 사람이 원하는 얼굴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성형해서 이전보다 덜 매력적으로 바뀔 수 있다. 






두 번째, 개인적인 ‘수술’에 대한 거부감이다.

사람마다 수술을 받는 것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정말 개인적인 이유인데, 어차피 이 글은 개인의 나름 논리적인 ‘야매’ 정신승리 논리이지, 공인된 학설이 아니기 때문에 가감 없이 적어본다.


일단 나의 본업이 의료보건분야임을 밝혀 둔다. 실제로 환자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사전 검사를 하고 마취를 받고 째고 하는 것에 대해 참여했었고, 그 과정을 전부 돕기도 했다. (참고로 난 외과 의사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술은 ‘환자’가 받는 극단적인 치료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왜 극단적이냐면, 수술은 1차 치료가 아니다. 

질환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질병의 치료 과정은 

경과 관찰 -> 생활 습관 및 일상생활 교정 -> 약물 치료 -> 의료 시술 -> 수술의 단계를 밟는다. 


그 이전의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수술을 들어가는 경우는 응급한 상황 혹은 정말 수술이 아니면 안 되는 경우 외에는 드물다. 


그래서 내가 수술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내 몸의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환자가 되는 것이다. 그 부분이 외모가 된다. 그럼 나의 외모가 질병, disease가 되는 것이다. 


난 쌍꺼풀도 없고 코는 낮고 입술도 얇고 광대뼈도 조금 돌출되어 있다. 하지만 눈뜨고 보는 데 지장 없고 숨도 잘 쉬고 비염도 없는 편이고 잘 먹고 잘 씹는다. 


안검하수가 심하거나, 비중격 만곡증이 심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리적 기능적으로 이렇게까지 건강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좀 과한 처치로 느껴진다. 내가 수술을 받을 정도로 외모가 질병 상태라니......?








세 번째, 성형을 한 번만 하고 멈출 수 있을 자신이 없다. 

나는 나 스스로의 자제력을 믿지 못한다. 당장 핸드폰을 하루 1시간만 하라고 하거나 밀가루를 먹지 않는 것을 지킬 자신이 없다. 나는 유혹에 약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동양적인 느낌의 이목구비가 흐릿한 얼굴이다. 

아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목구비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로인데 다 작고 흐릿해서 존재감이 크지 않아 전체적인 조화가 그럭저럭 눈에 거슬리지는 않는 느낌이다. (뭐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느낌이라는 거다. 본인의 외모를 100%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한 번 성형을 해서 예뻐졌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말 내가 그 단 한 번으로 멈출 수 있을까? 

사람은 정말 나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나약하다. 


다들 그러하듯 주변인에 칭찬에 약하다. 나는 주변 시선을 신경 안 쓸 자신이 없다.

수술을 더 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추가적인 시술이라도 받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아마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디를 하면 어떨 텐데 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계속 내 얼굴을 성형외과 코디네이터의 눈으로 스캔한다. 내 얼굴이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교정할 대상이 된다. 안 그래도 여성들은 거울을 볼 때마다 단점을 먼저 본다. 그 단점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100%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나는 내가 그럴 가능성이 높고, 그 상황이 겁이 난다.) 


왜냐면 나는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예쁘지 않다. 이 와중에 어느 것 하나가 독단적으로 예뻐져 버리면 조화가 깨질 것이다. 연예인들을 보아도 딱 한 부분만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주식해서 처음 어떤 종목을 사서 돈을 벌었는데, 그것으로 바로 만족하고 주식판을 떠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 






네 번째, 나 스스로를 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성형’의 관점을 배제하고 싶다.  


어떤 이를 볼 때 외모가 보이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이며 본능적인 일이다. 


이미 내재된 본능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성적으로 그것을 조절하려 하고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성형을 하게 된다.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과 나에 대해 평가할 때 외모에 대해 가치관을 덜 두게 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더 외모에 대한 가치관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외모 평가에는 성형의 관점이 들어가게 된다.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부분은 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피부가 신경 쓰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피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구 건조증으로 이한 눈의 충혈이 신경 쓰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만 보인다. 

머리숱이 없는 사람은 머리숱이 보이고, 체형이 맘에 안 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몸매만 보인다. 



그럼 내가 성형수술을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이고, 그에 덧붙여 수술을 했을까 안 했을까가 눈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말이지 그렇게 되기가 싫다. 


나는 다른 이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다른 이들의 얼굴에만 더 집중하게 되고, 마음을 보는 하는 그러한 능력이 줄어든 든다면, 큐빅을 얻으려고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사람이 될 것이다. 보석을 알아볼 수 있는 심미안이 성형의 선글라스에 가려진다. 



나는 얼굴이 예쁘지 않은 상태보다, 마음의 예쁨이 줄어드는 일들이 더 두렵다. 






나는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외모가 전부야. 외모는 정말 중요해.라고 생각하는 사람, 분명히 많다. 엄청난 외모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 힘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얻는 것이 작다고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야기하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다 외모를 최우선으로 중요시하는 건 아니라고. 


그런 말이 다 거짓말 같다면, 그건 당신이 속으로는 외모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어디 가서 결국엔 외모지, 결국엔 외모가 중요해 라고 지적 혹은 한탄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미 당신 스스로는 외모를 가장 최우선시함을 드러내는 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외모 말고 다른 면을 소중히 여기며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흔들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권한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기 있기 위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더 사랑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고, 성형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은 나의 선택이고, 그 누구에게도 지적받을 권리가 없는 나의 몸이다. 

다른 사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최소한 나의 몸의 주권은 나에게 속해야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성형을 권유하는 것은 지극히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그 사람의 가치관을 맘대로 판단하는 일이다. 



또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혹은 사회로부터 은근히 주입되며) 성형에 대해 고민일 많은 여성들에게,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오로지 당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당신으로 귀결되는 선택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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