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개굴 Mar 13. 2021

저는 골프 안 하고 싶은데요

남들이 다 좋다면 더 하기싫은 청개구리 심리




나이 서른이 넘고 중반즈음 되어가면서 꼭 들어오는 간헐적 압박이 있다. 왠지 나이가 들수록 그 압박이 더 세질 것 같아서 불안함에 떨고 있다. 


그놈의 골프 안 하니? 라는 질문에서 오는 압박이다. 

골프 하게 되면 같이 라운딩도 가고 함께 시간도 즐겁게 보내고 사교생활에도 좋고 사회생활에도 좋고 나이 들어서 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아 돈은 좀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뭐 그래도 할 만하고.......



청개구리 기질은 이럴 때 아주 여지없이 발휘되서, 남들이 하라고 그러니까 더 더 하기 싫어진다. 

모든 사람이 나이 30 중반쯤 넘으면 골프를 해야하고 골프가 재미있어지는 생체학적, 호르몬적 사이클이라도 있는 것인가. 뭐 사춘기, 가임기 등을 이어서는 골프기 같은? 나이 어려서는 공부 해서 좋은 대학가라 그러지, 대학가면 취업하라 그러지, 취업하면 결혼하라 그러지, 결혼하면 애 나라 그러지...... 거기다 더해서 여가 시간에 하는 스포츠마저도 골프하라 그러지....... 와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함께 나랑 똑같은 걸 하기를 강요하는 걸까? 



골프 예찬론자들의 이유는 참 많다. 일단 사교 생활에 좋고, 사회 생활에도 좋다고 한다. 내 생각에 가족들과 어울리는 거 아니고서야 사교 생활과 사회 생활에 골프보다 더 좋은 건 '인성' 인 것 같고, 골프 안 해서 멀어질 사이면 그냥 멀어져도 인생에 크게 아쉬울 것 없는 관계들일 것이다. 나는 골프를 안 하는 나 자체로서도 좋아해주고 기꺼이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죽겠다. 사회 생활에 골프가 도움되는 직업은 아마 영업관련 직책들이겠지. 근데 내가 봤을때는 원래 영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 골프하면 도움이 될 순 있어도 못하는 영업을 골프로 만회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아 그리고 전국민이 영업직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고. 뭐 사장님과 측근들이 밀담하기에는 아주 좋은 스포츠라고 하긴 하던데,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치는 경우는 거의 없어보인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한다. 아 그래 재미있는 거 인정한다, 재미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예를 들어  동물의 숲이 재미있다고 해서 내가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그런식이라면 내가 재미있는 걸 추천했을 때 본인도 하던가. 도대체 골프 재미만큼은 꼭 같이해야겠다며 그렇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권유를 한다. 세상에 그 어떤 재미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100%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없다. 게다가 그 재미를 맛 보기위해서 수십, 수백만원이 깨져야한다면 더군다나 그렇다. 


나는 책 읽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데, 내가 책 추천하면 10권도 채 못 읽을 거면서 골프 재미는 왜 그렇게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책은 10권 읽어도 10만원 정도 밖에 안 든다. (도서관이나 전자책을 이용하면 무려 무료로도 가능하다.) 




그러면서 돈과 시간은 또 엄청 많이 들어간다. 내가 봤을 때 골프는 진짜 가성비가 떨어지는 스포츠다. 

 특히 한국은, 산이 많고 평지가 별로 없어서 골프장을 지으려면 산 1-2개는 깎아야 한다. 그마저도 골프장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회원권과 이용요금이 매우 비싸다. 세계에서 골프에 드는 비용이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가 한국으로 선진국에 비해 국민소득 대비 회원권 분양가는 4배, 골프장 이용료는 6배나 된다. 아 근데 명품등 가격을 올려야 더 사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생각해보았을 때는 뭐 오히려 이 점이 한국에서의 골프 인기에 오히려 한 몫을 하는 것 같기도 같다. 다른 나라처럼 골프 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비싸지 않았으면 오히려 인기는 덜해졌을지도. 


아무튼 나는 가성비를 꽤나 중시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하는 채로,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 몇백만원의 돈을 쓰기는 영 내키지 않는다. 돈 내줄 것도 아니면서, 자꾸 은근히 같이 하자는 압박 혹은 나는 골프한다는 자랑(?) 하는 걸 들으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겉으로 말은 못 하지만. 



그리고 자연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가 얼마나 좋은 지에 대해서도 또 다들 강조한다.

아 그런데 그 자연이요, 제가 진짜 할말하않입니다만....... 직접 말은 못 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 대나무 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치듯이 외쳐본다.  






내가 생각하는 골프의 최대 단점 중 하나. 환경에 극악무도하게 최악인 스포츠라는 것. 

(아 뭐, 스크린골프는 덜하겠지만)


한국에서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위에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산이 훨씬 많고 평지가 매우 드문 나라이다. 골프장은 보통 산을 깎아 만들고, 그 면적만큼의 서식지와 생태계를 파괴시켜버린다. 게다가 다들 알다시피 잔디가 그렇게 잘 잘라는 땅도 아니어서 잔디를 키우기 위해 수 많은 농약을 써서 병충해를 박멸시킨다. 이렇게 수많은 농약이 끝없이 뿌려지는 골프장의 흙은 너무나 오염되어서 거의 산업폐기물에 가깝다고 한다. 근처에 강이나 습지가 있는 경우 이 농약이 유입되는 경우도 있다. 잔디는 물을 엄청 많이 필요로 해서 골프장에서 지하수를 많이 쓰다보니, 지하수 고갈의 문제도 있다. 또한 골프장으로 인해 나무가 없어진 잔디밭은 홍수에 매우 취약하며, 비가 많이 오는 경우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 



위와 같이 골프장은 환경에 최악이며, 환경 기념일 중에서 4월 29일은 무려 골프 없는 날로 지정될 정도이다. 



환경을 즐기기 위해서 환경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즐기고 누리는 그 모든 숲 속의 상쾌한 공기와 기분 좋은 잔디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태계가 없어진 것인지. 마주하기 싫은 진실이지만,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한다.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보면 채식을 하고, 플라스틱을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야외 골프장에서의 라운딩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어떤 환경보호가 다른 환경보호보다 우선하거나 앞서나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친환경과 자연보호가 현대적 흐름인데 반해서 골프는 그 단점을 조용히 감추고 더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하게 느껴진다. 






아 그리고 진짜 신기한거, 아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떻게 대다수의 사람이 30-40대가 되면 골프가 좋아질까? 유전자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 당연히 아닐 것 이다. 사회에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쳐주고, 또 그것으로 인해 소수의 모임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소속감과 과시감을 얻고, 그러면서 또 재미있고, 그러니까 그 나이쯤에 다들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럼 그 골프를 좋아한다는 나의 취향이 정말 '나에게서 기원한' 취향이 맞을까? 나라는 사람이 무인도에서 있었거나, 아니면 다른 시대에 태어났어도 골프를 좋아했을까? 아마 승마와 폴로가 취급받던 시대와 나라에 태어났으면 그걸 좋아하지 않았을까? 

물론 진짜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이 있겠지만, 골프를 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기엔 말도 안되게 특정 나이군에서 숫자가 확 늘어난다. 나는 이 사회적인 영향이 없을리가 없다고 본다. 



세상이 좋다고 하고, 세상이 그럴듯한 스포츠로 여겨줘서 골프가 더 만족스러운 마음이 전혀 없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살면 편하기는 할 것 같은데, 나라는 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없다. 세상이 좋아하는 것만 따라하는 것일 뿐. 




주변 친구들이 전부 다 골프를 시작하고 다들 주말에 만나서 라운딩을 하거나 아니면 최소 스크린 골프를 한다. 아마 내가 골프를 하지 않으면 나를 부르지 않을 것 이고 친구들의 모임으로부터 소외될 것 같은 경우, 음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있는 골프를 시작하는 이유가 되겠다. 솔직히 나도 이런 경우까지 이르게 된다면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이 정도까지 되면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어쩔 수 없는 만큼 강제로 골프를 시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속으론 외치면서 말이다.

아니 도대체 왜 사람들이 이 나이대 즐기는 스포츠가 특정하게 정해져 있는 거냐고! 






건강에 좋아서 골프를 한다. 으음....... 골프는 분명 건강에 도움을 준다. 특히나 나이 들어서도 하기 쉬운 운동이라는 것에는 나도 꽤 좋은 장점이라고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 하기 힘든 운동은 지금 미리 해놔야하지 않을까? 골프는 나중에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다며, 그러니까 나중에 못 할거를 지금 열심히 해둬야지. 



그리고 또 하나, 골프는 허리, 어깨에 정말 나쁘다. 계속 한 방향으로만 몸을 회전해서 쓰는 것이 허리에 좋을리가 없다. 골프는 체계화된 근력 운동이나 필라테스랑은 다르게 '스포츠'에 가깝기 때문이다. 

골프는 몸을 쓰기는 하지만, 이는 몸 전체의 근육을 고르게 발달시키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다. 몸을 쓰는 목적은 공을 잘 쳐서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과하게 하면 근골격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허리나 어깨가 튼튼한 사람에게는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골프를 열심히 하다가 허리 수술을 받는 경우는 꽤나 흔하다. 근육이나 다른 운동을 통한 몸 만들기가 전혀 없이 골프만 열심히 치는 것은 여러 부상을 줄 수 도 있다. 특히나 골프를 일주일에 두세번 하니까 난 이미 운동을 하고 있고, 다른 운동은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골프를 오래 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골프가 분명 유산소 효과 등 몸에 좋은 점이 있기는 하지만, 몸에 좋기 위한 목적으로 골프를 선택하는 건 좀 글쎄다? 라는 느낌이다. 그러기엔 금전, 시간대비 효과가 너무 낮다. 그 유산소 효과의 대부분도 라운딩 할 때 '걸어야' 생기는 거라서, 난 몸에 좋으려고 골프 쳐......라고 하면 그게 이유의 메인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아무튼, 각설하고 결론을 말하지면 나는 골프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과도할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적으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사교를 하려면 골프를 해야하고 돈을 써야한다고 압박하는 상황이 매우 싫다. 특히나 거기에 더해 골프라는 걸 한다는 데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자만심과 자부심을 느낄 때면 더더욱 청개구리의 심정이 된다. 왜 여가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 조차 쉬운일이 아닌가. 남이 정해주니까 더 하기 싫은 느낌이다. 객관적으로 사교라는 항목을 빼고 나면 골프가 난 그 정도로 매력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재미는 뭐 그럴 수 있겠는데 그 돈 쓰고 재미 없으면 추천한 사람 멱살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나이가 들어도, 아니 나이가 들 수록 세상이 나를 남들이 다 하는 걸 하게 만드는 압박이 참 크다고 느낀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제발 골프 강요 좀 그만합시다. 

(같이 해야한다는 특징 때문인지, 유난히 추천를 빙자한 강요가 많은 스포츠다)

본인이 좋으면 거기까지 하고 말아요. A부터 시작해서 Z까지 가지말고. 골프 하라는 소리 듣는 것도 꽤나 스트레스거든요? 

본인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게 골프라고 해서 남들도 다 그런거 아니에요. 해봤는데 아니면 책임져 줄껍니까? 돈은 물어줄 껀가요? 


아니면 내가 추천하는 책 10권은 읽고 오던가. 

그쯤 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휴. 





이전 19화 애를 낳는 건 괜찮은데, 키우는 게 안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