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드라마 주인공은 정의롭고 착하고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의리도 있고 잘생기고 예쁘기까지 하다.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응원하고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을 극도로 싫어하는 악역은 있다. 아니 오히려 주인공만의 그 올곧은 캐릭터가 있기 때. 문. 에. 그 주인공을 싫어하는 악역이 존재할 수 있다.
악역 같은 사람이 날 좋아한다? 그건 오히려 더 기분 나쁜 일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좋지 않은 인성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서 어떠한 자신과 공통되거나,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내가 기분 나빠해야 할 일이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봤을 때 정말 별로인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게 맞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만큼, 누군가는 나를 더 깊이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건 어떤 극명하게 드러나는 나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고, 호불호가 갈리는 특징에는 분명 마니아층이 있다.
민트초코가 바로 그 예다. 싫어하는 사람이 극명한 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더 극명하다. 그래서 민트초코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된다. 호불호가 확연히 갈린다지만,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민트초코 음료를 판다. 하다못해 민트초코 치킨, 민트초코 돈까스, 민트초코 햄버거(...) 도 있다.
민트초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가득하지만, 그 어떤 애매한 맛보다도 민트초코는 그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민트초코만의 맛이 가진 특징이 확실해서 그렇다. 바로 그게 민트초코의 매력이다.
연예인도 그렇다, 매력이 있고 인기가 많아질수록 안티도 극심해진다.
아이유를 싫어하는 사람도 아마 아이유가 진짜 무매력이라면 싫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움의 다른 말은 관심이고,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던가. 자신만의 매력이 넘치는 사람은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이유에 대해 팬도 아니고 안티도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를 좋아하지만, 정말 딱 차트에 올라있는 노래 정도만 순위 재생을 하면서 듣곤 한다. 따로 곡을 찾아 듣거나,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챙겨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아이유는 존재감이 있다. 그래서 왜 안티가 많은지도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이해는 된다. 그녀는 재능이 넘치고, 늘 적절한 선을 유지한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만한 것들을 많이 지녔다.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성공했으며, 인기도 많다. 이러한 그녀의 존재감이 더 극명한 안티를 만든다.
가끔 누군가 나를 이. 유. 없. 이. 싫어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보자. 나는 누군가에게 아이유 같은 존재라고.
그 누군가가 보기에 내가 너무 매력 있고 잘나고 얄미워서 나를 싫어하는 거라고. 다른 이에게 아이유 같은 존재가 되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나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것이 미움받는 것보단 훨씬 낫다.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의견을 모두 지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쁨 받기 위해 애쓰다 보면 더 우울해진다.
민트초코가 미움받는 걸 신경 써서 자신의 그 맛을 지우고 평범하고 무난한 맛이 되었다고 하자, 그것은 이미 민트초코가 아니다. 자신의 핵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매력이 없어져버린다.
아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안티 때문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바꾸지 않았다. 자신의 안티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그 매력을 더 뽐내는 그녀는 개인적으로 참 멋지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고 무난한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고 가정해보자.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을, 누군가 그녀를 미워하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매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 스스로를 남을 위해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건, 본디 자연적인 나를 미워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
내 삶의 모든 순간,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1분 1초까지 모두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스스로이다.
나에게 사랑받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내 존재로서 사랑받는 것이다. 가장 크고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 안에서, 내가 나를 아껴주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나의 존재는 시작된다.
누가 민트초코를 싫어하더라도, 민트초코는 너무나 매력 있는 맛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극도로 싫어하건 말건, 싫어하는 사람이 많든 지 말든지 민트초코는 그 자체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가진다. 내가 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 누가 뭐래도 바뀌지 않는 진실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를 싫어하더라도, 나는 분명 나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를 극도로 싫어하더라도, 내 본질이 나 스스로에게 사랑받도록 해야 한다. 아니, 나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먼저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고, 이유 없는 미움에 휘청거리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단단히 붙들어 잡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내가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할 사람들에게만 시간과 관심을 쓰기에도 부족하다.
우리는 나를 좋아해 주는 10명의 사람보다 나를 싫어하는 1명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 사람을 너무나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고 미워하느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써버 린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신경하게 넘기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도 열심히 받아야 한다. 내가 더 감사해할수록 그 마음들은 나에게 더 큰 힘을 준다.
좋은 마음은 당연히, 늘 그대로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아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잠시든 오래든 받았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고 늘 존재해서 잊기 쉬운 공기 같은 선물이다. 나를 숨 쉬게 만들어주고 살아있게 만들어준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데도, 이렇게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자.
게다가 그 사람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더더욱 기적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보다 적어도 상관없다. 내가 얼마나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상관있다. 내 삶에서 각각의 비중을 어떻게 둘 것인지는 내가 정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100명이고 싫어하는 사람이 1명이라도, 온종일 그 1명만 생각한다면 내 삶은 싫어하는 사람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100명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1명이지만, 그 1명을 소중히 여기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내 세상은 날 좋아해 주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말자.
미움 따위에 기죽지 말고, 나만의 고유한 매력을 사랑하자. 민트초코같은, 아이유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