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지만, 코로나에도 좋은 점이 있다?
이제 코로나라는 3글자마저도 참 지겨워졌다. 처음 우한에서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딴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일상의 모든 부분이 코로나 시국의 영향을 받은 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간다.
인간의 정의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생물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는 참 익숙해지기 쉽지 않았다.
지금 현재도 코로나가 침투한 현실에 내가 익숙해졌구나 싶다가도, 시시때때로 울컥- 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이 코로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고난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은 사람이 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고난 그 자체로 괴로워하고 끝나는 사람이 있다. 마냥 행복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보다, 억울하고 힘들고 지지부진할 때 인간은 오히려 더 성숙해질 수 있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어려운 만큼 값진 깨달음이다.
코로나로 인해 내가 깨닫고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은 무엇이 있었을까.
백해무익해 보이는 코로나이지만 한번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최악의 경험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인간성을 잃지 않았으며,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로고테라피라는 자신만의 정신치료기법을 정립한다.
최소한 코로나는 나치 강제 수용소보다는 덜 참혹하고, 덜 힘들며, 더 희망적이다. 힘들었고 지금 현재도 힘든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분명히 코로나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
첫 번째, 세상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없고, 삶은 전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경제학 용어로 요즘 많이 들어본 말 중에 '블랙 스완' 이 있다.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너무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일수록 오히려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전쟁을 무서워하지만, 진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다들 죽지 않을 것처럼 매일을 살아간다.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극단적으로 커서 그렇다.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인생에서 그런 '블랙 스완'을 제대로 겪어본 일이 없다.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독재 시대에서 민주화 항쟁을 했던 나이도 아니다. IMF가 있었긴 하나 그 당시 많아봐야 학생이었을 테고, 이는 사회인으로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때 생긴 일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닥친 일이었다.
코로나는 완벽한 블랙 스완이다. 역사적으로 일어났었던 일들을 글로써, 영상으로써 간접 체험하는 것과 그 시작의 순간과 모든 과정 속에서 직. 접. 체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이는 나의 삶에 실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2019년 10월 경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아마 내가 이렇게 될 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 은 세상을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제대로 깨닫게 해 주었다. 이 세상에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 이 것은 이성적인 머리만으로는 완전히 체감하고 깨달을 수 없는 진리이다.
이를 통해 얻게 된 다른 진리 또 하나는, 삶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결과가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가 떠나간 것은 내가 집착했기 때문이야' 라던지,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야' 등이 있다. 다른 방향으로는 '내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것은 똑똑하고 영리했기 때문이야' 혹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등등이 있다.
특히나 요즘 MZ세대는 억울한 것을 못 참는다. 즉 내가 하지 않은 일로 고통을 받거나, 내가 겪지 않아야 될 일을 겪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것은 어떠한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으면 그 결과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실제로 MZ세대는 '내가 한 일' 이 '내가 겪는 일'로 치환되는 경험만 해왔다. 공부 잘하는 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스펙을 쌓은 만큼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선천적으로 예쁘고 잘생기게 태어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꾸미면 어느 정도는 후천적인 미모와 매력을 가질 수 있었다.
나도 사실은 그러했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그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분명히 나는 무언갈 얻을 것이고, 내가 잘못하지 않는다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코로나는 달랐다. 고작 나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노력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던 것과는 별개로 취직이 쉽지 않았고(운이 좋아서 취직은 되었지만, 코로나 이전보다는 훨씬 더 어렵게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세계여행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너무나 억울했고,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인류가 탄생해서 농경사회를 이루고 역사라는 것을 이어온 이래 모든 게 한 개인의 맘대로 되는 삶이란 얼마나 드물었을까. 당장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했었고, 그 이전에는 무려 조선시대였다. 도대체 어느 세대가 지위와 계급의 차별 없이 고작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단 말인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 역시 당연히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높은 정도를 넘어 99%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것은 내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부분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팩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을 구별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분노를 멈추는 것. 이는 내가 코로나를 통해 깨달은 정말 큰 교훈 중 하나이다.
두 번째는, 나이가 들었을 때, 그때 했더라면 좋았을 걸- 의 예비 체험이 된다.
사람들은 모두 나이를 먹으며 죽음에 가까워진다. 이는 인류가 발생한 이래, 아니 발생하기도 전부터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몇 안 되는 '참'인 진리이다.
하지만 고작 40-50년 '아파트는 값이 오른다'라는 진리보다도 사람들은 훨씬 더 체감하지 못하는 진리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었을 때의 상황을 완벽히 상상할 수 없다. 진짜 그 순간이 오고 나서야 체감한다. 아 나이가 들어보니 이렇구나, 젊을 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면서 후회한다. 이런 후회를 하지 않고 나이를 먹는 것은 모든 사람의 꿈이지만, 막상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번에 코로나로 인해 '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코로나 이전에 무언가를 할걸-'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나이 듦에 대한 예비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가고, 스탠딩 콘서트를 가고, 결혼식을 마음대로 하고, 친구들과의 파티를 열고, 미세먼지가 있어도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자유가 영원할 줄 알았기 때문에,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나중으로 미뤘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언제나 아무 때나 할 수 있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나는 해외여행을 갈 수 없고, 스탠딩 콘서트를 가기 어렵고, 마음대로 마크스를 벗고 다닐 수 없다.
나이를 듦과 마찬가지이다. 나이를 들어서 만약 시간과 돈과 무엇보다 건강과 자유시간이 없어진다면, 내가 지금 현재 할 수 있고 하고 싶지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에게 밀려 그 언젠가로 '미뤄둔 '일' 들을 못하게 될 수 있다. 이는 부정적인 가설이 아니고 실제로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이는 사례들이다. 우리는 그 얼마나 '젊었을 때 OO 했더라면 좋았을 걸-' 이란 말을 많이 듣고 사는가.
하지만 그에 대해 깨닫는 속도보다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조금 더 빨라서, 늘 그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지만, 반면 이번 코로나를 통해서는 짧은 시간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당장 몇 개월 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깨닫지 않으래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천천히 바뀌어서 문득 돌아보니 그랬구나-가 아니고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렸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분명히 있다. 나이는 들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지만 코로나는 언젠가는 끝날 가능성이 높다. (나는 높은 확률로 분명히 언젠가 끝나리라고 믿는다. 수천 가지 질병 중에서 여태까지 백신이 나온 전염병 중 이 정도로 일상의 제한을 두게 만드는 질병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 코로나가 생겨버림으로써 내가 미뤄두었던 아쉬운 일들을 다시 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나는 이 상실과 박탈과 제한의 시기를 통해 내가 지금 현재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고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과거에 후회했던 일을 되돌리려 시간여행자가 된 것처럼, 코로나가 끝나게 된다면 코로나가 있었을 때 후회했던 일,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는 어떤 타이밍을 놓치면 영영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나이를 먹어 시간이 흘러야만 깨달을 수 있었던 미래를 잠시 다녀오게 해 주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람은 얼마나 사람에게 중요한가. 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중요한 줄은 몰랐다.
나에게 사람과 사람이 맞닿아서 만드는 그 교감과 대화가 나의 삶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그 접촉이 박탈되면서 내가 얼마나 허전함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는지.
좀 외로울지는 몰라도, 나는 가끔씩 이 지긋지긋한 인간관계들을 내려놓고 어느 시골에서 한적하게 일상을 보내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풀숲이 가득한 숲 속이거나 혹은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의 평화로운 생활.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건 나를 괴롭히는 번뇌가 없다는 것의 동의어처럼 보였다. 특히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때문에 괴롭던 시절에는, 사람만큼 이 세상에서 무섭고 지겹고 짜증 나는 것이 없었다. 정말 그냥 아무도 없이 혼자 일하고 혼자 지내는 게, 맞지도 않는 사람과 억지로 지내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낫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지지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주는 우울과 분노가 너무 컸었다.
아니, 더 크다고 내가 느꼈었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의 존재는 마치 공기 같아서, 늘 내 곁에 머물러있었고 그리고 내가 마음먹으면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소중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마치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특히나 소중한 것 일수록 더욱더.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는 것,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픈 일을 겪었을 때 함께 슬퍼해주는 것,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내 마음을 훨씬 더 아프게 했고, 허전하게 했다.
미세먼지가 생기고 나서야 맑은 공기가 얼마나 쉽지 않고 소중했던 것인지 깨달은 것처럼,
코로나도 인해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도 어쩔 수 없는 물리적 단절을 겪고 나서야 그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마음껏 만나, 다른 것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활짝 웃고 이야기하고 놀러 다니며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사람이 날 아프게 하더라도 사람이 주는 행복은 더 컸다는 걸 이번에 코로나를 통해서 느꼈다.
코로나의 장점을 3가지 언급해보았다.
단연컨데, 코로나는 장점보다 단점이 수백 배 수천 배 많은 전 세계적 대재앙이 맞다. 무엇보다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이니, 무조건 없어지는 것이 좋다. 그것은 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코로나는 실존하며 내 삶에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쳐왔고 끼치고 있으며 당분간은 끼칠 것이다. 이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지만 즐기는 것 까지는 못 하더라도, 이 코로나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교훈을 통해 코로나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며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통 속에서 무언 가를 깨달으면 우린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최악의 연인을 만나 사귀는 기간 및 이별 기간 내내 고생을 하였다면, 그 이후에는 그 전의 연애를 통해 깨달은 것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죽도록 괴로워해 놓고서는 그 고통을 통해 깨달은 것이 없다면, 결국 같은 후회가 반복될 뿐이다.
코로나는 분명 끝날 것이다.
지금 이 시국에서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무엇이고,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이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지, 그 깨달음을 잊지 말고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 그 이전과는 다른 기쁨과 행복과 희망을 찾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