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설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고군분투
계획상으로는, 나에게 2020년은 세계여행의 해가 될 예정이었다. 그 계획에 맞춰 퇴사를 준비했고 2020년 3월부터 치앙마이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이탈리아, 미국 서부, 캐나다의 여행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바로 그 나라들이!
오랫동안 여행용으로 모아 온 적금과, 5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며 벼르고 별러온 나의 여행들만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되어 온 세상을 만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퇴사 전 휴가를 못 가게 되었어도 슬프지 않았다. 어차피 내년에는 계속 해외에 가 있을 텐데 뭐.
그 결말은? 모두 다 알다시피 코로나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 모든 여행들은 하나둘씩 취소되어, 작년 초에는 매달 쓰는 카드값보다 취소되어 들어오는 카드값이 더 커서 매달 돈이 더 입금되었었다. (돈이 들어오는 데 이렇게 슬프기는 또 처음이었다.)
맹렬히 세계여행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왔는데, 아예 그 목적지가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제 아무리 정신승리를 잘하는 편인 나라도, 멘붕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여행을 위해 퇴사를 했는 데, 여행을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거다.
납득할 수 없었지만, 납득해야 했고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퇴직 후 첫 1달 동안, 나는 부정하던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우울해져 갔다.
4월이 되어 그렇게 좋아하던 벚꽃이 피었는데, 보러 나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꽃이 다 져버리기 일보 직전, 이렇게 못 보고 지나가면 오히려 더 우울해지진 않을까 걱정하는 남편을 따라 억지로 나가서 본 벚꽃을 보고 든 생각은 '벚꽃이 피었네' 이게 전부였다. 꽃이 있고, 피었구나, 그 이외에 아름답다 가슴이 뭉클하다 봄이구나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메말라 갈라진 논처럼, 파삭파삭 해진 상태가 되어버린 내 존재만 남아있을 뿐.
역설적이게도, 그 상황이 멍하게 늪에 잠겨 들어가던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구나'
지금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도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코로나는 어떻게 보면 자연재해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고, 내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나의 삶을 바꿔놓았다.
마치 공룡이 지배하던 지구에 빙하기가 몰아닥친 것처럼.
원래는 참 따뜻했었고 살기 좋았고 자유로웠는데 라고 한탄해봤자 지금 갑자기 추워져 버린 온도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코로나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고 억울해해 봤자,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있는 지금 현재의 상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부정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해 봤자, 나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도태되어 멸종될 운명이었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큰 씨앗을 먹지 못해 사라진 작은 부리 핀치새처럼.
이과생 출신인 나는 자연선택설을 떠올리고선 내가 처한 현실과 나의 상태를 완전히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깨달은 순간, 뭔가 불끈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아니 나는 멸종되기 싫은데? 이대로 도태되기 싫은데?
코로나라는 빙하기가 왔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슬퍼하다 얼어 죽기는 싫은데?!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시기가 얼마나 힘들고 길어지든, 하다못해 영원하더라도 나는 꼭 여기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신적으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이 코로나라는 빙하기에서.
일단 첫걸음은, 무엇이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해보는 거였다.
그게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무기력하게 지낼 수는 없으니.
큰 씨앗들이라는 현실을 바꿀 수 없으면 그에 맞춰서 내가 큰 부리를 가진 핀치새가 되어 적응해야 했다.
이렇게 새로, 혹은 또다시 코로나 루틴을 채우게 된 일들의 특징들은
첫 번째, 코로나 시대에도 할 수 있는 일일 것.
두 번째, 코로나 시대여서 할 수 있는 일일 것.
세 번째, 코로나 시대 이후에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하기 힘든 일일 것.
이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건 코로나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임과 동시에, 그 이후에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고, 또 하는 걸 좋아했던 일들이지만 코로나가 아닐 때는 일하거나 여행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며 열심히 바깥으로 다니느라 못 했던 일들을 '지금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해보는 것'의 보상심리가 마음에 들었다.
이 일들을 지금 미리 즐겁게 열심히 해놓는다면, 나중에 해외로 바깥으로 사람들을 맘껏 만나러 돌아다닐 때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아 그때 코로나 시절에 시간 많을 때 이런 것 미리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
아무리 외향적이고 여행을 좋아했던 나지만, 지금 이 시국에도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들 중에서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새롭게 좋아하는 일을 발견한다면 금상첨화이고.
그래서 난 이 코로나 빙하기의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작은 일들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내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일상의 활력소와 비타민들을 찾아내기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매번 집 밖으로만 돌아다니던 내가 모르던 집순이로서의 나의 취향도 발견하고, 새롭게 발달시킨 분야도 있었다.
나는 조금씩 나만의 '코로나 루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루틴은 지금까지도 내가 코로나 시국을 보내는 데 있어 정말 큰 힘과 뿌듯함이 되어주고 있다. (물론 사람이니 여전히 가끔은 코로나에 좌절도 하긴 하지만)
정신적으로 도태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따릉이 타기였다.
어쩌다가 날씨가 좋은 주말에 자전거를 타게 되면, 온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그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한강이 가깝다는 것은 우리 집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다. 따릉이는 한강공원 입구에 있어 오르막길에 있는 집까지 힘들게 끌고 오지 않아도 됐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 매우 합리적이었다. 인터넷으로 자전거 안전모도 구입하고 라이딩용 장갑도 비싸지 않은 걸로 장만했다. 비록 내 자전거는 없지만, 나만의 자전거 물품이라도 준비해 놓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의욕도 샘솟았다.
일주일에 두 번, 어느 정도는 정기적인 간격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만 있으며 누적되었던 답답한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시원한 강바람은 내가 다시 자유로워진 느낌을 갖게 했고, 따뜻해지는 햇살은 딱딱해진 내 마음을 많이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다.
라이딩을 다녀오고 나면 뿌듯한 마음과, 기분 좋은 피로감, 가벼운 허기짐이 있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나의 일과에 활력소가 되었다. 몸을 쓰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돌아오면,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덜 울적했다.
항상 자전거를 타면 좋다고는 생각했는데, 일하느라 휴가 때는 여행 다니느라 날씨 좋으면 또 놀러 다니느라 실제로 타는 건 일 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대신 많아진 시간을 이용해 자전거를 맘껏 타고 누릴 수 있었다. 2020년도 봄, 개나리가 잔뜩 핀 성수-강변 라인의 한강을 달리던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와도 늘 그대로인 아름다움도 있는 것이다.
그다음 시작했던 건 스트레칭이었다.
자전거를 자주 타게 되면서 간헐적으로 고관절의 통증이 있어 정형외과를 찾아갔는데, 근육이 조금 늘어났다고 염좌 진단을 받았다. 그 후로 물리치료를 몇 번 더 받았는데 병원의 물리치료사가 나의 운동 일과를 묻더니, 유산소만 하지 말고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고관절의 통증이 있으므로 당장 근력운동을 시작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고, 어디 센터를 등록하기도 그래서 스트레칭을 먼저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스트레칭으로 치면 가장 상위에 올라오는 분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루틴 그대로이다. 다노 님의 눈 뜨자마자 스트레칭과 강하나 님의 자기 전 스트레칭을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매일 꼬박꼬박 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고 안 하고의 컨디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챙겨 할 수밖에 없었다. 입면이 잘 안 되어 고생하던 나에게 자기 전 스트레칭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자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침대에 누우면 거의 30분 이내에 바로 잠들었고, 중간에 잘 깨지도 않았으며, 자고 일어나면 아주 개운했다.
이 두 가지 스트레칭은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하고 있으며, 그 외에 다른 스트레칭들도 종종 한다. 몸이 예전에 비해서 정말 많이 유연해졌다. 근육 뭉침도 많이 줄어들었고 뻐근한 느낌도 거의 없다. 보통 한 달에 한두 번은 몸이 너무나 뻐근해서 스포츠마사지나 타이마사지를 받지 않으면 못 견뎠는데, 매일 스트레칭을 한 이후로는 그 정도로 몸이 뻐근했던 적이 없었다.
스트레칭 다음은 필라테스였다.
스트레칭을 알려주는 유튜버 영상들을 보게 되면, 다른 연관 동영상에는 꼭 근력운동 영상이 같이 따라왔는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동작들이라 하고 나면 통증이 있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동작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그 정형외과와 같은 건물에 있어 눈여겨보았던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가격 때문에 고민하다가 여행 못 간 대신 쓰는 마음으로 1:1 10회로 결제를 하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누군가 1:1로 직접 내 몸을 봐주면서 운동 수업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이 장점이 컸다. 나는 평균보다 마른 몸이기는 하나 근육이 정말 부족했고, 굽어있는 등과 거북목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평소 유산소 운동을 그래도 꾸준히 해온 편임에도 불구하고 몸의 균형이 많이 흐트러져 있는 상태였다. 균형이 무너져 있으니 혼자서 운동 자세를 취해도 정확히 하기 어려웠는데, 선생님이 옆에서 같이 봐주면서 잡아주니 운동의 효과가 훨씬 컸다.
사실 경험해보기 이전에는 그 누구보다도 필라테스 수업료에 회의적이었던 1인이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1회에 8만 원은 너무 비싸서, 10회가 끝나고 집 근처 다른 곳들 시범수업을 듣다가 지금의 선생님을 만났다. 이 곳은 위치가 대로변이 아니고 동네 골목이라 여러 회로 끊었을 시 1회당 가격도 6만 원 정도로 이 주변에서는 나름 합리적이었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정말 근골격계 지식이 넓으셔서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내가 어떤 곳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면 바로 그 문제점을 찾아내시고 적절한 스트레칭 및 강화 운동을 해주셨고, 지금 30회가 거의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운동법을 알려주신다. 집에서 하는 폼롤러, 요가 링, 마사지볼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셔서 집에서 혼자서도 몸을 잘 풀어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내가 올해 여행을 갔다면, 필라테스에 이 금액과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