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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굴 Feb 27. 2021

코로나 빙하기, 나는 공룡처럼 멸종되지 않을 테야 2

모닝 루틴뿐만이 아니라, 코로나 루틴이 필요하다



이전 글에서는 코로나라는 세계적 대재앙에서 멸종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코로나 시국에도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 즉 코로나 루틴에 대해 적었었고, 따릉이 타기, 스트레칭, 필라테스를 언급했었다. 








코로나 이후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내 몸의 코어 근육들이 조금씩 잡혀가고 자세와 균형이 탄탄해지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다른 일들을 할 때도 근육과 자세가 이전보다 나아지니, 이전과 같은 일을 해도 덜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중간중간 확진자수가 큰 폭으로 증가할 때마다 방역 단계는 올라갔고, 실내 스포츠 센터는 종종 문을 닫았다. 1:1 수업을 받는 시간이 평일 오전 일찍이라서 다른 누군가와 겹친 적은 거의 없었고 그게 운동을 유지하게 해 준 큰 요인 중 하나였지만, 지침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겨울에 거의 1달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금지되어있던 기간에는 그나마 약간이라도 생긴 이 근육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했다. (내가 근손실이라는 걸 걱정하게 되다니!) 




그러면서 홈트라는 것을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튜브는 거의 스트레칭을 위해서만 봤었는데, 집 안에서 유산소 및 근력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혼자서 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건 '땅끄부부'의 걸쭉빠 (걸으면서 살이 쭉쭉 빠지는 운동) 시리즈였다. 너무 피곤하고 손 하나 깜짝하기 싫은 날에도, 딱 20-30분 정도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영상이다. 일단, 집에서 하는 운동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나 혼자' 한다는 것인데, 땅끄부부의 영상에서는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 함께 하기 때문에 단체 운동을 하는 느낌이 든다. 이 점은 영상을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중간에 관두고 싶은 유혹에 홀리지 않고 끝까지 잘 따라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또한, 가까이 있는 사람의 감정은 전달되듯이, 부부의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가 나의 기분도 끌어올려 주었다. 다 마치고 나면 기분 좋은 상쾌함과 뿌듯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아주 어렵지 않아 꾸준히 하기 좋다. 홈트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은 지속이 어렵다는 것이다. 땅끄부부 분들은 이 문제점을 정확히 인지하였고, 이 지속 가능성에 대해 특화된 채널이라 따라 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효과는 좋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동네 산책마저도 귀찮은 날에도 홈트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가끔은 홈트도 빡세게 운동하고 싶은 날이 있는 법. 게다가 실내체육이 모두 금지되었을 시점에는 더 군다가 그런 불태우는 근력 운동이 그리웠다. 그럴 때는 스트레칭으로도 매일 자기 전 만나고 있는 '강하나'님의 요일별 운동을 했다. 체력이 좀 괜찮다 싶으면 중급자 요일별 운동을, 약간 피곤하지만 근력을 하고 싶으면 초급자 요일별 운동을 했다. 




나름 필라테스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따라 하다가 자꾸 강하나 님이 숫자를 늘리실 때마다 입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원망의 소리가 나오곤 했었다. (댓글에 보면 나와 비슷한 반응이 꽤 많다) 이도 계속 반복하다 보면 또 그래도 저번보다는 조금씩 나아져갔다. 코어를 위주로 단련했던 필라테스는 전체적으로 내 몸이 단단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어떤 부위를 하는지 정확히 내가 바로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었다. 반면에 강하나 님의 운동은 한 부위를 확실히 타겟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그 부분을 하고 나면 일시적이지만 근육이 펌핑된 느낌이 드는 것이 또 재미이자 보람이었다. 그 재미에 힘들어도 어느 정도는 꾸준히 운동할 수 있었다. 



사실 코로나는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시작된 재앙이었기 때문에 더 억울했다. 갑자기 도대체 왜, 여행을 가려고 했던 내가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는지, 친구들을 전처럼 편하게 만나지 못하게 된 건지, 울컥하고 올라올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피해를 받는 다고 생각하면 두 배로 화가 났다.


이럴 때 운동이 참 큰 도움이 된 게, 운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인해 바뀌는 내 몸의 변화는 정말 정직하다. 내가 노력하고 공 들이면 그만큼 변화하고 발전한다. 내가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 그만큼의 성취가 보장된다는 것은, 자연적 재해에 무너지는 멘탈을 단단히 만드는 데 특효약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어'라는 무력감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무너뜨린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바닥을 경험하는 순간은, 진짜 절망이 닥쳤을 때가 아니고 내가 뭘 해도 바뀌는 것이 없을 때다. 코로나는 내가 뭘 해도 이 팬데믹은 끝나지 않겠구나 이 상황은 변하지 않겠구나라는 절망을 준다. 그 절망 속에서 내가 꾸준히 땀을 흘려 지속한 행위가 느리지만 확실한 보상으로 돌려받는 경험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본디 나는 굳건한 '종이책' 파였다. 안구 건조증이 심해지면서 30분 이상 모니터를 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이든 액정으로 뭔가를 읽거나 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또한 매우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서 유튜브도 운동 영상 이외에는 보는 것이 없고 (구독하는 채널이 없음) 넷플릭스는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왓챠는 남편이 가입이 되어 있어 접근은 가능한데, 1년 동안 본 영화가 5편이다. (그마저도 남편이랑 같이 봤다.) 신종 핸드폰엔 관심 없이 약정 지난 갤럭시를 4년째 들고 다니며, 영상을 안 보니 데이터를 안 써서 요금제가 3만 원 미만이다. 아이패드 등의 태블릿은 누가 선물로 준다고 해도 다른 걸로 바꿔달랠 사람이고, 새로운 전자 기계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블루투스 이어폰도 없다. (이효리의 줄 달린 이어폰이 화제가 돼서 도리어 내가 놀랐다. 아니 나도 아직 그거 쓰는데.......) 



또한 미니멀리즘을 지향....... 하긴 했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되도록은 빌려서 보거나 혹은 사서 보더라도 주변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줘버리곤 했다. (그래도 집에 책이 많은 편이라는 건 함정) 보통 일 년에 40-60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그걸 다 살 수는 없어서, 도서관을 애용하는 편이었다. 도서관 특유의 그 한적하고 학구적인 나른한 분위기도 좋아했다. 낮에 할 일 없고 갈 곳 없으면 습관처럼 도서관을 찾던 시절도 있었다.



이 또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본 책을 내가 또 본 다는 사실 자체가 썩 내키지 않았고, 도서관도 문을 닫으면서 아예 빌리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책을 사서 봤지만, 돈도 돈이었고 무엇보다 책장이 거의 다 차서 책을 더 보관할 공간 자체가 없었다. 



책은 읽고 싶은데 아날로그 적인 종이책이라는 한 루트만 고집할 수는 없는 상황, 아날로그 적인 나로서는 쉽지 않았지만, 전자책을 책을 읽는 메인 루트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기종은 크레마 사운드업. 화면이 큰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가장 작고 가벼운 것으로 구입했다. 처음 써보고 눈이 아프지 않아 안심했다. 그리고 검색과 주변의 추천을 받아 밀리의 서재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전자책과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의 주변의 반응은, 아니 너 같은 아날로그 인간이 그 정도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다니!! 였다) 



일단 한 번 시작하니, 정말 새로운 신세계였다. 나에게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서 집 안에서 새로운 책을 무한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라웠는데,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는 이 장점이 빛을 발했다. 다들 이래서 정기 구독, 정기 구독하는구나 싶었다.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져서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권 이상씩 읽었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고 여러 가지 책을 그때그때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기 때문인 듯싶다. 



정기 구독 서비스로 제한되는 책의 종류가 제한적이고, 특히 메인에 걸리는 책들을 아무래도 선택하게 되는 큐레이션의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전자책은 분명히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와의 컨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접근 가능한 책은 무제한이라는 것. 아직도 종이책을 종종 보고는 있지만, 집콕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방역 단계가 올라갈수록 전자책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나의 마지막 코로나 루틴은 바로 '브런치' 이다. 평소 바깥을 다니면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성격으로, 일주일에 최소 한 두 번은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곤 했다. 이상하게 나는 분야 불문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 상담해주는 역할이 되곤 했는데, 아마 나름의 이성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두루뭉술하고 감정적인 공감 대신, 딱 떨어지는 답변을 주곤 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독서 토론도 좋아해서 트레바리 포함 모임을 몇 년 이상 했었고, 그 깊은 의견 나눔이 나에겐 큰 활력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개진하는 걸 좋아했고, 그렇게 말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고 확립되었다. 그 생각들은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었고 세상에 대한 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독서 토론은 뭐 물론이요 친구들을 이전처럼 자유롭게 만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꼬박꼬박 다른 이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살았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까 말까 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게 처음 2-3월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길어지니까 생각보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꽤 컸다. 뭔가 말로써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서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감정은 있는데 이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이나 생각이 파편처럼 흐트러져 논리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이 늘어났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생각과 의견과 논리를 말하면서 나 스스로의 중심을 잡아가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이를 잃어버린 것은 나의 철학을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나는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파편들을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해결되지 않는 그 욕구는 점자 답답함으로 변해갔다. 



가장 처음은, 아마 주식이었을 것이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주식을 하라고 하는 데, 나는 주식을 하기 싫은 거다. 그에 대한 근거들이 둥둥 떠다녔으나 누군가에게 정리해서 말할 수 없었으니(카톡으로 주식하라는 사람한테 안 하는 이유를 장문의 답장을 보낼 순 없었다.....) 그냥 속으로 답답하고 화가 났다. 



이 생각을 누군가에게, 아니 나 스스로에게라도 정리해서 털어놓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정말 써야겠다, 그래야 내가 살겠다는 마음으로 적어갔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길어졌다. 이 이야기도 하고 싶고 저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러한 플랫폼이 있으면 더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이전부터 알고 있던, 하지만 내가 신청하게 될 줄은 몰랐던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주식 글을 덧붙여서. 



결말은 아시다시피,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나름의 논리로 나의 의견과 생각을 쓴다. 반응도 반응이지만 생각을 써서 풀어낸다는 자체만으로도, 어지럽던 집안이 말끔히 정리된 듯한 쾌감을 준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의 나보다 훨씬 더 나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내 감정을 정리하고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해서, 내 삶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고 태도를 변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절망일지라도 아주 내 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진짜 마음과 생각을 털어놓는다는 것, 아마 안네가 일기를 쓰면서 얻었던 용기와 힘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상이 코로나 빙하기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얻어낸 나의 소중한 루틴들이다. 사실 지금도 가끔은 울컥하지만, 그래도 나를 아직 지탱하는 것들도 있어 이전보다는 든든하다.



처음에는 맨 몸으로 남극에 떨어진 것 같았다면, 이젠 한 칸씩 쌓아 올린 나의 이글루에서 바람을 피해 몸을 녹이며 힘을 다시 재충전할 방법을 알아낸 것 같다. 아직 바깥은 춥고, 빙하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저 추워만 하며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슬퍼해도, 코로나는 당장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이자 '현실'이다. 



처음 얼음 조각을 하나 덜렁 갔다 놓으면 이게 뭔가 싶을 거다. 이게 어떻게 추위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까 영 미덥지 않다. 벽돌 조각은 운반하기 쉬웠지만 얼음 조각은 차가워서 만지는 것도 어렵다. 예전 같았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억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서 어떤 벽을 만들고, 공간을 만들면 그것은 나만의 집이 된다. 벙커이고 보호소가 된다. 



발걸음 하나 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겠지만,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일상에서 발견하고 꾸준히 루틴으로 지속해나간다면, 이 빙하기를 견뎌낼 힘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그래도 가만히 서서 떨고 있는 것 보단 조금이라도 덜 추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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